암사동성당 게시판

하얀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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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식 [kim740510] 쪽지 캡슐

2001-01-27 ㅣ No.5957

온통 새까맣기만 한 새벽에...

동생의 방문 사이로 환히 비친 빛줄기에 눈이 절로 깨었습니다.

평소에 잠이 많기로 소문난 제 동생이 새벽부터 왠일인지 옷을 주섬주섬 입고선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보고선 ’저 잠꾸러기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런

이른 시각에 저럴까?’하는 의구심에 동생을 뒤따라 가보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잠을 더 청해보고 싶었지만 동생에 대한 호기심이 훨씬 앞섰기에 감기는

눈을 비비고 동생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오늘 새벽에는 눈이 내려 하얀 눈위에 나있는 동생의 발자국이 그

여느때보다도 더 선명하게 나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발자국은 평소에 낯이 익어있던 그 길이였습니다.

주일날 자주가던 그 길 말입니다.

순간 전 이른 아침 동생외의 그 누구도 밟지 않았던 흰 눈 위에 나있는 제 동생의

발자국이 그렇게 예뻐보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새벽 미사를 드리고 나서야 오늘이 바로 제 동생의 축일이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나이만 두살 더 많았지 오빠로써 동생의 축일 하나도 기억 못해준 제 자신이

정말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요즘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집에서 시험준비를 하는 동생을 볼 때 오빠로써

무엇하나 도움이 되주지 못하고 가끔 부리는 어리광에도 퉁명스럽게 구박을 하는

제가 너무도 작고 초라해 보일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오빠답고 멋지게 어떤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말 한마디 해주고 싶어도 저 자신의 많은 부족함을 느끼기에 그런 위로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건넬수가 없었더랬습니다.

 

오늘에서야 제 동생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이 힘들어 했길래 저 잠꾸러기가 새벽미사를

드리며 하느님께 절실히 기도할까?

 

그 기도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저도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과신한 채 계획을 세워보지만 그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좌절하고 실망을 느끼며 포기하거나, 그 잘못됨을 남에게 돌리는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그 분께 온전하게 의탁해 봄은 어떨까요?

 

사랑하며 또한 많이 아끼는 암사동 청년 여러분!

 

패기있고 힘있는 우리 암사동 본당을 만들기 위해 새벽의 상쾌함을 그 분께 봉헌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보면 이런 기특한 생각조차 떠오르게 해주신 것도 다 그분의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과거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아침에 미사를 드리게 되면 우리에게는 상상도 못할

만큼의 주님 은총이 내린다는 신부님의 말씀처럼 부족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그러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은 마음에서 몇 줄 적어

봤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다보니 참 산만합니다만 양해바랍니다.

 

저도 요즘 자꾸 나약해지고 나태해져만 가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새벽미사를 봉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제안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신부님들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고자 하시는 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새벽에 부지런한 분들은 신부님과도 친밀해지고 가끔은 따끈한 차도? 후훗... (^^)ㆀ

신부님께서 불편하심 제가라도 끓여드립니다...꼭!!

 

오늘 아침에 제가 느낀 이 황홀하고도 아름답고 성스런 기분을 여러분께도 전해드리고

싶지만 열 번 듣는것보다는 한번 직접 체험해 보시는 것이 더 나으시리라 믿습니다.

 

이른 아침 여러분의 발자국이 하얀 눈 위에 남겨져있는걸 보신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제 동생처럼 재미있고 기교넘치는 글은 아니였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새해에도 늘 댁내 두루 평화가 넘치시길 빕니다.

 

전 오늘 너무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꺼 같습니다.

 

 

* 추신 : 아침부터 썼는데 이제서야 올리네요...역시 독수리타법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아닐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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