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묵시록-공포인가 희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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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austin] 쪽지 캡슐

2000-12-28 ㅣ No.4786

 

묵시록 - 희망의 책

 

 

묵시록은 무엇보다도 박해와 격동으로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다. 그것은 신자들이 하느님과 그들 자신 그리고 그들의 사명을 새롭게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메시지다. 즉, 신자들을 박해 속에서 (영적) 싸움에지지 않도록 격려해주며, 더 큰 투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거나 절망감만 더해주는 묵시록 해석은 그 어떤 거시라도 잘못된 것이며 거짓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마치 태양으로 무엇을 적시거나 물로 무엇을 말리려는 것과 같다.

 

 

1. 묵시록은 신자들에게 신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게 하는가?

신앙의 위기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외적 위기와 내적 위기가 그것이다. 외적 위기는 박해와 사회적 격변에서 오고, 내적 위기는 박해받는 신자들 자신이 분명한 전망을 갖지 못하는 데서 온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신자들은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며, 하느님을 실패하시고 상황을 장악하실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한다. 억압과 박해의 권세만이 역사의 주인처럼 행세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외친다. "교회 공동체 안에 우리가 계속 머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묵시록은 사건들의 감춰진 면을 밝혀 드러냄으로써 문제를 직시하게 한다. 그리하여 사건들을 신앙의 빛으로 비추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낸다.

 

가) 발생하는 사건들은 하느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장악하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역사의 전능하신 주님(주재자)으로서 사건들 안에 현존하신다. 따라서 역사는 하느님에 의해서 한 단계 한 단계 계속 전진한다.

 

나) 권력자들의 권력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 세상의 주인처럼 '보이지만' 부수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그들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알건 모르건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로마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처형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불행한 자일 수밖에 없다. 그의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제약을 받는다. 결국 그의 운명은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사건들의 감춰진 면으로, 이는 오직 신앙의 눈으로만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일어날 일들'이다. 꼭 일어난다! 아무도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하느님은 막강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2. 기쁜소식은 신앙의 빛이 비칠 때 사건들 속에서 떠오른다.

요한은 휘장이 걷어치움으로써 사건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쁜소식'을 신자들의 눈에 보이도록 했다. 신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기쁜소식'이란 바로 이것이다. "하느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권능을 예수께 위임하셨다."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 백성을 결정적인 승리로 이끄신다. 그 누구도, 제아무리 힘센 자라도 하느님의 계획의 진로를 변경시키지 못한다. 신자들을 억압하는 자들은 모두 멸망할 것이며 처벌받을 것이다. 예수 부활이 모든 것의 보증이다.

이처럼 강력하고도 확고한 메시지를 통하여 묵시록은 삶의 균형을 가리는 휘장을 걷어치운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박해의 질곡을 벗겨버리고 다른 편에 자리잡고 있는 신앙의 힘을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신자들은 다시 한 번 삶의 균형을 되찾는다. 더 이상 박해가 신앙을 약화시킬 수 없다. 권력자들의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사건들을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새롭게 되고 빛을 받게 된 신앙만이 있을 뿐이다. 백성들은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모든 것을 견디어낸다. 홍해를 건넌 다음 모세의 여동생 미리암이 그랬던 것처럼(출애 15,20~21) 그들은 '새로운 개선가'를 소리 높이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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