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내어줄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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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 [jin0314] 쪽지 캡슐

1999-11-18 ㅣ No.1122

얼마전 TV에서 보았습니다.

열살된 아들이 뇌사상태에 빠졌을 때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모든 장기를 기증하는 그런 내용의 드라마를.

 

아이의 아버지에게서 알 수 없는 경외감 느꼈습니다.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듯 싶습니다.

 

여름부터였습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이라는 엽서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문앞에 둔 사람은 아니였지만, 언젠가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 때, 내 것 중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얼 줄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살아서 줄 수 있는 것은 골수가 있었습니다.

뇌사상태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신장과 안구정도...

사후 화장을 하겠다는 서약도 있었습니다.

 

골수도, 신장도 안구도 모두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후 화장만은 망설여졌습니다.

 

소년에게 모두 내어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그치만 아직은 힘든 것 같습니다.

 

올해 초에 강남성모병원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암 말기의 환자와 그 가족들이 눈 앞에 보이는 죽음 앞에서 어떻게 하는지 여러 경우들이 보여졌습니다.

죽음이라는 상황 앞에서 꼭 절망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울 엄마가 생각납니다.

6년전 아빠를 먼저 보낸 후 힘겹게 살아오신 울 엄마.

기억해봅니다. 뇌사상태의 아빠의 모습.

 

가끔 연도를 가면 아빠생각에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 유쾌한 주제는 아니지만 그저 외면할 것만도 아니기에...

 

내어줄 수 있는 것...

늘 죽음 이후에 줄수 있는것만을 생각해왔습니다.

그치만 힘겨워하는, 외로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주위의 소중한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에 대해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하고자 합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부터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을 내어주고자 합니다.

 

그치만,,, 가진 것이 없네요.

 

그저 조그마한 관심 밖에는...

 

오늘 저녁에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려야 겠어요.

그리고, 조금만 더 고생하시라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겠어요.

사랑한다는 말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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