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진 자료실

[성당] 마산교구 문산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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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3-12-28 ㅣ No.1186

 

[믿음의 고향을 찾아서] 마산교구 문산본당

 

 

(사진설명)

1. 진주 문산읍에 있는 문산성당, 한옥 기와집 성당과 서양식 성당이 100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2. 1932년 루르드 성모성지를 본따 만든 성모동굴, 성모성월이면 한달내내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3. 80년된 기와집 성당, 기와와 나무기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기와집 거물은 현재 회합실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와 과거, 한식과 서양식 성당이 공존하는 공간. 마산교구 진주 문산본당(주임 이창섭 신부)에 맞는 이야기다.

 

진주시에서 차로 15~20분 거리에 있는 문산읍 소문리, 성당이 자리잡은 터는 조선시대 감찰방이 있던 곳.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병풍을 두른 듯 자리하고 앞으로 탁 트인 시야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마디로 ’명당자리’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3000평 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 기와지붕 한옥 건물이 눈길을 끈다. 옆으로 아름드리 단풍 나무가 운치를 더해주고, 그 사이 가운데 길로 이어지는 정면에 예수성심상과 하얀색 성당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오랜 신앙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 성당은 진주지역 최초의 성당이면서 한식과 서양식 성당이 함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지난해 초에는 경남등록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됐다. 등록문화재란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보존가치가 큰 문화재를 말한다.

 

진주지역 신앙의 못자리인 문산성당은 마산교구에서 완월동본당(1900년 설립)에 이어 두번째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진주지역에는 교우촌이 성립돼 있었다.

 

타케 신부가 1899년 처음 진주본당을 설립했을 때 24개 공소 가운데 가장 신자들이 많았던 곳이 소촌공소이다. 이 공소가 1905년 5월 ’소촌본당’으로 승격됐는데 현재 문산본당의 전신이다. 초대 주임 줄리앙 신부가 1907년 소문리에 감찰방이 있던 부지 2400여평을 매입했고, 이 터가 지금 성당 자리이다.

 

본당은 1923년 기와집 성당을 신축했다.하지만 신자들이 늘어나 1937년 서양식 성당을 건립하고, 기와집 성당은 유치원 강당으로 이용했다. 현재 회합실로 사용하는 이 기와집 성당은 80년이 흘렀지만 당시 기와와 나무기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성당 앞에는 본당주보인 예수성심상이 오는 이들을 반긴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작은 후원이 보이는데 이곳이 성당보다 더 오래된 성모동굴이다. 루르드 성모성지를 그대로 본따 만든 이 성모동굴 벽에는 설립연도인 ’1932’가 새겨져 있다. 흐릿한 글씨가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매년 성모성월 5월이 되면 신자들은 매일 저녁 7시 이 성모동굴 앞에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는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성모동굴 이후 건립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성당은 건립 당시 1만9000원을 들여 건물 기둥과 벽체 모두를 시멘트 콘크리트로 건축한 서양식 건물. 그래선지 70년 가까운 세월에도 끄떡없이 제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 신자들이 성전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재산의 10분의1을 헌납하기도 하고 논을 팔아 건립 기금을 모았을 정도로 그 열성이 대단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교구 지원없이 본당 자력으로만 성전을 건립했다니 신자들 정성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높이 솟은 십자가 아래 종각의 종은 일제의 시련을 극복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가 교회 종까지 공출을 강요했을 때였다. 당시 주임신부는 종을 내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종각에 있던 종을 밤에 몰래 철거, 성모동굴 뒤 언덕에 깊숙이 묻고는 공소에 있던 무쇠종을 대신 헌납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땅속 깊이 잠든 종을 깨워 제자리에 매달 수 있었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함께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까지 삼종을 쳤으나 지금은 본당신자 선종과 장례미사를 알릴 때만 종을 친다.

 

오는 2005년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문산본당은 최근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일요일 카페’와 주일학교의 동아리화이다. 일요일 카페는 교중 미사후 신자들이 다함께 기와집 성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친교를 이루는 활동이다. 또 주일학교를 성극반, 율동반, 요리반 등으로 나눠 운영하면서 주일학교 학생들도 늘어나 본당 공동체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지난 10월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등 100주년 준비에 착수한 이창섭 주임 신부는 "100주년은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 행사를 통해 우리 공동체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면서 "본당사목회 임원 몇몇이 아닌 본당 신자 전체가 다같이 준비하고 참여하는 100주년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화신문, 제751호(2003년 12월 7일), 조은일 기자/김영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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