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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의 속성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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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peace-maker] 쪽지 캡슐

2009-06-13 ㅣ No.9564

'법치'의 속성과 한계
 
작성자   지요하(jiyoha)  쪽지 번  호   5079
 
작성일   2009-06-12 오후 11:18:36 조회수   197 추천수   14
 
                     '법치'의 속성과 한계





현 집권 세력이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요식(要式)을 거쳐 정권을 잡았을 때 나는 두 가지를 예상하고 우려했다. 하나는 어떤 속성과 약점 때문에 무리수를 많이 두리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 무리수 때문에 '법치(法治)'를 유난히 강조하리라는 것이었다.

이런 예상쯤은 웬만큼 철든 사람이면 누구나 공유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들어맞아 가는 현상은 예상보다 더욱 심각하고 노골적인 것 같다. 정치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서 가장 하위에 속하는 것이 법치다. 약점이 많고 한계가 분명한 정권일수록 법치를 강조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면서도 필연적인 이치다. 법치라는 것이 질서 순응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절대적 가치일 수 있지만, 가장 천박한 통치 수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법치는 자칫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현상을 낳는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식으로 법을 운용한다. 또 법치는 조자룡이 헌 칼 쓰듯 하는 현상도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는 공권력의 사유화 현상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저 70년대와 80년대에 무수히 경험했고, 그에 따라 피 흘리고 목숨 바치며 역사의 질곡과 싸워야 했다.

사실은 법치의 굴절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민주화운동이고 투쟁이었다. 민주주의란 어떤 제도의 개선과 성립으로 완성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제도의 개선과 성립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나 가치인식이 더욱 중요하다. 피 흘리고 목숨 바치며 개선하고 성립시켜온 제도와 법치의 근본 정신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의지, 상식과 양식의 틀을 깨지 않으려는 절제력, 염치와 양심과 정의로움을 감싸 안는 포괄적 가치관 등이 민주주의 성립과 운용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과거의 암울한 독재시대와 싸우며 한 걸음씩 민주주의를 진척시켜온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어렵게 진척시켜온 민주주의의 제 가치들이 너무도 손쉽게 허물어지는 현상에서 뼈아픈 아연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발전은 어려워도 퇴보는 너무도 쉬운 현상은 언덕길에서의 후진 장면을 연상케 한다.

현 정권이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법치는 많은 국민들에게 곤혹스러움과 모멸감 같은 것을 안겨 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법치를 말할 자격과 관련하여 의심을 많이 받고 있는 처지다. 그는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깊이 통찰하고, 가능한 한 법치를 내세우지 않는 쪽으로, 소통과 화합의 길을 취했어야 하지만, 그것은 철학성과 그릇의 크기가 결정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고 자격이 없다고 의심받는 처지에서 법치를 강조하고, 가장 천박한 통치 수단인 그것에 의존하려는 것은 또 다른 속내를 짐작케 한다.

그는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5년 동안의 집권으로 완전히 분장하거나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미 현실 권력으로 부상했던 시기에 'BBK 의혹'을 비롯한 여러 가지 범법 위법 사실들에 '면죄부'를 받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죽은 권력'이 되는 순간 그것들은 재생하여 확실한 '덫'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국민의 관심을 일시적으로 확실하게 돌려놓은 '노무현 죽이기'의 성공을 통해 죽은 권력의 실상을 충분히 확인했을 것이다.

그는 죽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5년 동안의 확실한 치적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 확실한 치적을 위해 온 강토를 삽질로 뒤엎는 토목 건설에 올인하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정권재창출의 기반을 닦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언론(방송) 장악이 필수적일 테지만, 그 일 또한 과도한 삽질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권력은 유한하며, 5년이라는 기간은 덧없는 시간이다. 벌써 3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인생 자체가 유한하고 허무하니,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하느님 앞에 가져갈 것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오랜 세월 애써 가꾸어온 민주주의와 관련하는 이런저런 상식과 가치들이 맥없이 파괴되는 현상은 분명한 퇴보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역주행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역주행은 필경 큰 사고를 유발한다. 시대의 역행은 국가적 불행이 되기 쉽다. 역주행이 자행된다 해서 정방향의 길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방향의 길은 오히려 더욱 분명해지고, 국민의 눈과 귀를 일깨우며 복원 열망을 가지게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ㅣ

이 글은 천주교계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 6월호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5월 7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09.05.19 13:49 ㅣ최종 업데이트 09.05.19 13:49
출처 : '법치'의 속성과 한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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