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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글]크라운산도와 사과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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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승 [forcedeux] 쪽지 캡슐

1999-09-15 ㅣ No.357

크라운 산도와 사과주스

 

 

 

 남편과 결혼하기 전 데이트할 때 내 마음을 여리게 한 것은 그가 어릴 때 경험한 먹을 것에 대한 추억이었다. 우리 시부모님은 학생 때 일찍 결혼하셔서 올망졸망 많은 아이들을 두고 계셨다. 쥐꼬리만한 수련의사 월급으로는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데이트할 때마다 언제나 음식과 연관된 기억들을 찾아내서 들려주곤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사과주스에 얽힌 이야기였다. 어릴 때 병약해 우유를 제대로 먹지 못하던 그의 동생을 위해 어머님은 자주 사과주스를 장만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차지까지 올 리는 만무해, 그는 주스를 만들고 남은 과즙 찌꺼기를 탐내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어릴적 소원은 사과주스를 실컷 먹어보는 것이었다고.

 

 그것을 말할 때의 그의 표정이 너무도 애잔해서 결혼 후 내가 그를 위해 맨 처음 한 일은 사과를 강판에 갈아 삼베천으로 싸서 실컷 사과주스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가 군의관으로 강원도 전방에 가 있던 시절 면회를 갈 때면 역시 그 사과주스를 가장 먼저 챙기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영락없이 <당고>니 <솜사탕>이니 <또뽀기>같은, 그때 좋아하던 군것질거리들이 먼저 생각나곤 한다. 이따금 그때의 맛을 찾아 헤매보기도 하지만 과거는 이미 나름대로 채색이 되어 있는 탓인지 현실의 맛은 그때의 기억을 따라잡지 못한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인기작가는 단연 [얄개전]을 쓴 조흔파 선생이었다. 그분 소설 중에 <깍두기 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 있다. 도시락 반찬으로 싸오는 것이라고는 유일하게 깍두기뿐인 어린 소녀에 관한 내용이었다.

 

 몇몇 부잣집 아이들이 싸오는 화려한 반찬. 그래봐야 계란말이나 김, 어쩌다 장조림 정도였지만-하긴 그 시절 그것이 얼마나 폼나는 먹을 거리엿는지 전세대들은 기억하리라-아무튼 그것이 부러웠던 소녀는 점심시간이 제일 괴로웠다.

 

 도시락 뚜껑을 아주 조금만 열어놓고 남들이 볼세라 잽싸게 깍두기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소녀는 집에서 깍두기 국물에 밥을 비벼 마음껏 그 맛을 음미하며 먹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장면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지금도 깍두기를 보면 이따금 ’아, 깍두기 공주’ 하며 그때 생각을 하곤 한다.

 

 못 먹고 못 입고, 그저 가난하기만 한 시절을 견뎌온 전세대가 요즘 세대보다도 먹는 것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더 풍성한 것은 대체 무슨 조화일까? 아마도 <먹는 것>에 대해 일종의 한이랄까, 슬픔이랄까 하는 것을 품고 있어서일 것이다.

 

 얼마 전 가까운 지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화제가 예전의 먹을 거리에 대한 추억으로 옮아갔다. 요즘 경제난국으로 다시 먹고사는 것이 어려워진 사람들, 특히 어린 학생들에 대한 걱정을 나누다가였다.

 

 그 자리에서 한 지우가 역시 눈물겨운 추억담 한가지를 털어놓았다. 그가 어릴 때 가장 고급과자가 <크라운 산도>라는 거였는데 그것 한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먹고는 싶고 그 갈등과 원망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당에 뛰어나가 밤하늘에 대고 몇 번이고 "크라운 산도야! 크라운 산도야!"하고 외쳤다. 그때 놀라서 뛰어나온 어머니는 한참을 조용히 그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책상위에 그처럼 원하던 크라운 산도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집안 형편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웬일인가 싶어 알아보았더니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담요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머니가 그 담요를 팔아 과자를 사오신 것이었다. 눈물 범벅을 해가지고 과자를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그는 요즘도 TV에서 그 과자를 광고하는 것을 볼 때마다 눈물겹고도 반갑다고 했다.

 

 아마도 그런 식의 추억거리 한두 가지쯤 갖고 있지 않은 어른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 과자회사에서 표기법에도 어긋나는 일본식 <산도>라는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어른들의 그런 향수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해 그처럼 추억과 그리움을 갖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단순히 먹는 것을 뛰어넘어 이미 지나가버린 날들에 누렸던 작은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작고 힘업슨 존재임을 알고 있던 어린날, 그 작은 존재에게 사랑하는 부모와 주위 사람들이 나누어주고 베풀어준 사랑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그 기억을 안고 사는 것이다.

 

 

좋은 글 같아서 올려 봅니당.......    정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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