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어떤 시골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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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5-11-14 ㅣ No.486

 

 

지난 10월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경기도 북부에 있는 제 고향 연천에서 1년 전부터 본당 신부로 일하고 있는 제자 신부님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내용은 본당에서 국화 전시회를 처음으로 해보는데, 한 숨 돌려 시골 고향 풍경도 볼 겸해서 한 번 다녀가라는 것이었지요. 초대 편지에는 왜 국화 전시회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 지난 일 년 동안 틈나는 대로 국화를 키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신부가 왜 국화를 키우느냐고 물었습니다.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국화를 키운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난 해 제게 연천 성당에 부임하자 많은 분들이 격려 차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연천 성당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많은 이가
모른다고 답하더랍니다. 아시겠지만 연천은 그렇게 크지 않은 곳입니다. 그런데도 성당을 모르는 분이 많다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만큼 전교가 안 된 지역입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성당을 알리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과연 동네 사람들이 성당을 찾아오게 하는 매력 있는 것이 무엇인가? 가난한 분들, 고독한 분들, 이분들과 함께 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사목자 본연의 임무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국화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을 성당에 초대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국화를 키웠습니다. 이번 국화 전시회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성당을 찾아와서 영세를 받은다면, 지난 일 년 동안 수고한 보람과 고생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초대장을 보낸 신부님은 모든 조건이 열악한 시골 본당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사목활동을 한다는 평을 듣고 있었습니다. 경노당에 가서 할머니들과 화투도 같이 쳐주고, 할아버지들 장기 두는 데 가서 훈수도 놓으면서 서로 친근해지려고 노력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화 전시회'를 여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지요.

10월 어느 주일에 연천 본당에 다녀왔습니다. 정말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정성을 가득 담아 마련한 국화전시회였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얘기를 들으니, 이미 많은 분들이 왔다갔고, 한번 왔던 사람들도 다시 온다고 합니다. 물론 비신자분들도 관심을 갖고 여러분들이 오셨답니다. 이렇게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도 좋았지만, 따듯한 가슴을 지닌 본당 사목자를 본 것이 더 좋았습니다.

11월 말이면 올해 7월에 사제로 수품된 새 신부님들이 각자의 임지로 떠납니다. 신학교에서 10년 가까이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따뜻한 마음의 사목자가 되어서 신자들을 많이 생각하고 염려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 만이 아니라 가슴에도 많은 것을 담고 살아가는 사제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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