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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수호자, 교황 베네딕토 16세 (하) 그는 세속주의와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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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09 ㅣ No.66

진리의 수호자, 교황 베네딕토 16세 (하) 그는 세속주의와 싸웠다

'이성의 오만'에 맞서 새로운 복음화에 매진



- 2월 28일 교황직에 서 물러나기 직전 카스텔 간돌포에 도착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환영객들에게 인사한 후 돌아서고 있다. 【CNS】


몇 년 전 국내에서도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현대사회의 무신론자들 책이 한바탕 바람을 일으켰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이들의 공격적 무신론을 요약하면, 인간 이성으로 신을 설명하지 못하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 망상에서 창조된 것이고, 인류 분열의 근원이기에 빨리 버려야 새로운 시대의 지식인이라도 되는 양 논리를 전개한다.

독실한 신앙인에게 이들 주장은 하느님에게서 고삐 풀린 '이성의 오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주장에 열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하느님 없이도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 배제하는 풍조 확산

이런 무신론적 태도를 부추기는 것은 세속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이다. 세속주의는 초월적인 것을 세상적인 것으로 끌어내리고 하느님이 배제된 사고방식을 부추긴다. 상대주의는 절대적 복음의 진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다른 세속적 가치와 동일시한다. 아무것도 궁극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러한 시대 조류와 교회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전에 신에게 고대했던 것을 모두 제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과학적 지성 체계는 신앙 문제를 태곳적 일이나 신화적인 것, 또는 지나가 버린 문명에나 속하는 것으로 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종교, 적어도 그리스도교는 과거 유물로 취급된다."(대담집 「신앙의 빛」 208쪽)

1995년 독일 칼스루에(Karlsruhe)에 있는 연방헌법재판소는 "공립학교 교실에 십자가를 거는 것은 종교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려 교황청 관계자들을 경악시켰다. '칼스루에 판결'이라 불리는 이 결정은 공적 영역에서 신을 철수시킨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또 유럽연합(EU)이 유럽 기본권 헌장을 만들 때, 초안에는 회원국이 공유하는 문화적ㆍ인문적ㆍ종교적 유산을 언급했으나 프랑스가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결국 정신적ㆍ도덕적 유산만 언급해야 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교회 입장에서 이런 시대적 조류는 거대한 역풍(逆風)이다. 이 때문에 교황은 서구사회의 신앙 위기 원인이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영향이라고 보고, '새로운 봄'을 재촉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다.

"고유한 역사 속에 내재하는 위대한 도덕적ㆍ종교적 힘을 스스로 절단해낸다는 것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문화의 자살 행위를 뜻한다. 신성불가침의 도덕적 가치를 거부하면 유럽의 양심은 자멸한다. 유럽이 존속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새롭게 인정해야 한다."

유럽에서 그리스도교는 가장 권위 있는 정신문명 체계였다. 그러나 과학혁명과 시민혁명,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이던 하느님을 변방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과학기술문명이 종교를 대신해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사회질서의 토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세기말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한 사상가의 격한 선언이 아니라 당대 사회상의 반영이었다.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도 르콩드는 「마지막 유럽인 교황 베네딕토 16세」에서 "교황은 유럽사회가 하느님 때문에 불편해지는 걸 싫어한다면, 이는 세속주의ㆍ냉소주의ㆍ소비만능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주의에 물들어 쇠약해졌다는 뜻이라고 여긴다. 그에게 상대주의는 종교의 가장 큰 적이었다"고 말했다.

교황이 임기 중 '새로운 복음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한 이유도 이런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다.

"우리 시대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새로운 경청과 새로운 복음화의 시대가 돼야 한다. 그리스도교 생활에서 하느님 말씀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만민을 향한 선교를 계속하고, 세속주의 확산으로 복음에 무관심해진 나라들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준다."(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주님을 향해 새롭게 돌아서라

교황은 교회 미래를 결코 장밋빛으로 전망하지 않는다. 이미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부터 그리스도교는 소수 종교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교회는 가까운 미래에 더 이상 단순히 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삶의 형식이라는 지위를 잃을 것이다.… 교회는 앞으로 다른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거대 사회와 관계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고, 소수인의 교회가 될 것이다. 신앙에 따라 사는 진짜 독실한 신도들로 이뤄진, 작지만 생명력이 있는 모임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교회는 성경 말씀대로, 다시 세상의 소금이 될 것이다."(대담집 「이 땅의 소금」 197ㆍ260쪽)

교황은 인간이 하느님에 매여 있는 끈을 끊어 버리고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이 침몰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늘 새로운 시작을 창출한다고 말한다. 또 교회의 생명력에 기대를 건다.

"교회를 단순화시키면서 동시에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여는 데 도움을 주었던 진정한 개혁자들은 언제나 성인들이셨다. 베네딕토 성인을 생각해보라. 그분은 고대 말기에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안해 교회로 하여금 엄청난 변화의 길을 가도록 하셨다."(「이 땅의 소금」 309쪽)

교황은 새로운 복음화 연장선상에서 지난해 10월 신앙의 해를 선포했다. 신앙의 해는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향해 새롭게 돌아서라는 초대이다. 또한 인류를 향한 간곡한 호소이다.

"오직 주 그리스도 안에서만 미래에 대한 확신과 참되고 영원한 사랑이 보장된다. 이 신앙의 해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맺은 관계가 더 굳건해지기를 바란다."(신앙의 해 선포 자의교서 「믿음의 문」 15항)

[평화신문, 2013년 3월 10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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