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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114: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31 - 궁극의 현자,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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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28 ㅣ No.372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14)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31) - 궁극의 현자, 솔로몬

“온 힘 다해 주님을 사랑하라”… 솔로몬이 터득한 지혜

 

■ 솔로몬의 치적

솔로몬은 다윗 왕과 밧 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밧 세바가 정식으로 후처가 된 다음 태어난 합법적인 왕자였던 셈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그 아이를 사랑하셨다”(2사무 12,24). 지난 글에서 언급되었듯이, 마침내 다윗은 하느님의 이런 뜻을 받들어 솔로몬에게 왕좌를 물려주었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카리스마로 솔로몬의 통치를 후견하셨다.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이 보는 가운데 솔로몬을 높이시고, 그 앞의 어떤 이스라엘 임금도 지니지 못한 왕권의 위엄을 그에게 베풀어 주셨다”(1역대 29,25).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솔로몬은 이스라엘에 어떤 치적을 남겼을까? 후대의 역사가들은 대체로 세 가지를 꼽는다.

우선, 건축 사업이다. 7년에 걸친 성전건축에 이어 솔로몬은 궁전건축에 13년의 열정을 더 쏟았다. 이 대사업은 한편으로는 불세출의 업적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국에 대한 조공의 강요, 동원 노역 및 강제 노역의 문제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기도 했다.

다음으로, 영토 확장이다. 다윗은 주로 전쟁을 통해 영역을 확보했다. 하지만 솔로몬은 하늘이 내린 지혜를 발휘하여 외교력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우리 아버지는 아날로그였지만 나는 디지털로 간다!” 요즈음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략결혼이다(1열왕 3,1-3 참조). 이리하여 그가 왕으로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평화와 안정, 번영을 누리는 황금시대를 보낸다.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필리스티아 땅까지, 그리고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를 다스렸다…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유다와 이스라엘에서는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마음 놓고 살았다”(1열왕 5,1.5).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국내정치에서도 비상한 통치력을 발휘했다. 12지파 중심의 조직에서 탈피하여, 12행정구역으로 분할 개편하고 지배하기 쉬운 중앙집권국을 만들었던 것이다(1열왕 4,1-19 참조).


■ 일천 번제로 얻은 지혜

알다시피 솔로몬은 지혜로 통치했다. 여기서 잠깐, 솔로몬이 그 비교불가의 지혜를 받게 된 경위를 짚어보기로 하자.

솔로몬이 등극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일천 번제였다. 산 제물 천 마리, 곧 소 천 마리를 한꺼번에 번제로 올렸던 것이다(1열왕 3,4 참조).

천 마리의 제물! 이는 확실히 물량공세다. 하느님께서는 ‘물량’에 혹하실 분이 아니다. 그 물량에 질이 따라오지 않았다면, 그 제물은 그렇게까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을 보셨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날 밤 그의 꿈속에 임하시어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1열왕 3,5)

솔로몬은 먼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7.9).

여기서 ‘듣는 마음’이 바로 그 유명한 ‘지혜’를 가리킨다. 원어로 ‘레브 스메아’라고 되어 있다. 레브(leb)는 ‘마음’이고, 스메아는 ‘듣는다’는 의미의 샤마(shama)에서 온 말이다. 직역하면 ‘듣는 마음’인 이 표현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지혜’로 옮겼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청원을 흡족히 여기시어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내려주신다.

“너는 나에게 장수나 부를 청하지 않고 지혜를 청하는구나.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 그리고 장수까지 한꺼번에 다 주겠노라”(1열왕 3,11-14 참조).

이 말은 따로 준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원리가 있다.

“너 말이야, 너 제대로 얘기했다. 지혜 하나 잡으면 다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지혜 속에 다 담보되어 있어.”

바로 이런 말씀인 것이다.


■ 궁극의 지혜

과연 솔로몬의 지혜는 비상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지혜를 들으려고 그를 찾아왔다”(1열왕 10,24). 이에, 솔로몬은 듣는 마음으로 깨달은 지혜를 잠언 형식으로 엮어 지혜의 책을 남겼다. 열왕기에는 “솔로몬이 지은 잠언은 삼천 가지가 넘고, 노래가 천다섯 편이 넘는다”(1열왕 5,12 참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궁극의 지혜는 ‘한 마디로’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 물음의 답을 코헬렛(전도서)에서 밝힌다. 요지는 이렇다.

“나는 행복이 무언지 알아보려고, 별별 것을 다 탐닉해봤다. 온갖 향락에 다 빠져봤다. 세상의 온갖 술도 다 마셔봤다. 안 해본 사업이 없다. 영토로 말하자면 아버지 다윗보다 큰 땅을 가져봤다”(코헬 2,3-8 참조).

하지만 인생 말년에 돌이켜 보니 솔로몬의 뒷맛이 쓰다.

“이게 다 괴로움일 뿐이었다”(코헬 2,22-23 참조).

바로 이 말이 그의 잠정적 결론이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글 코헬렛 서두에서부터 외쳐댔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코헬 1,2 참조).

하지만 솔로몬은 결코 회의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직 반전의 결론이 남아있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코헬 12,13).

이것이 솔로몬이 괴로움으로 터득한 궁극의 지혜였다.

만일 오늘의 우리가 솔로몬에게 지혜의 한 말씀 청한다면, 그는 과연 어떤 슬기를 전해줄까? 물음을 던지기가 무섭게 그의 촌철살인 인생레슨이 들려오는 듯하다.

으쓱대지 마라.
영재, 수재, 천재….
다 부질없는 자랑거리니라.
부귀, 명예, 장수….
다 덧없이 지나감이라.
여기, 영원의 놀음터엔
천하를 얻고도 제 한 목숨 구하지 못하여
가슴 치며 통곡하는 영혼들이 수두룩하다.

뼛속에 사무치게 새겨두어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이것이 하늘 아래 궁극의 지혜!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면 ‘기분이다, 옜다 다 받아라’ 천심(天心)을 얻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면 영생의 수(壽)를 얻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면 하늘과 땅의 세(勢)를 얻는 법.
아무리 많은 진리를 깨달은 자도
이 한 마디 깨달은 자를 감당하지 못한다.

거듭거듭 자녀들에게 들려주어라.
저 말씀 직접 읽어주고, 풀이해주고, 외우게 하여라.
나 천하의 솔로몬도 이것을 놓쳤다.
야훼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 아내’에게 교육을 맡겼다가
자식농사 다 망쳤다.
낭패 중 낭패, 후회 중 후회,
그것은 저 궁극의 지혜를
직접 자녀들에게 전수하지 못한 것!
그러니 일어날 때에도, 길을 갈 때에도, 잠자리에 들 때에도
거듭거듭 자녀들에게 들려주어라.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26일,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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