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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제안[4147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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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0-09-03 ㅣ No.4153

'장미의이름' 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님의 글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는지 모릅니다.

 

거룩한 교회에 속한 사제의 한 사람으로서, 님의 체험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부족한 사제의 한 사람으로서 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저의 삶을 아픈 마음으로 살펴보고 또 살펴볼 따름이지요.

 

다만, 이 자리에서 님께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까닭은 어머니이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못난 사제들, 부족한 사제들 때문에 어머니이신 교회가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을 그저 넋 놓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교회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교회인 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장미의 이름' 님!

 

님의 아픔에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비록 사제이지만 저 역시 님의 아픔과 같은 아픔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 본적은 없지만, 사제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로 살아가면서 사제답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왔던 제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입니다. 사제만이 교회가 아니라, 신자, 수도자, 사제 모두가 교회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옳지 못한 표양을 보이는 사제들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식으로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잘못한 것은 분명히 비판을 받아야지요. 그러나 이 비판 안에는 사랑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비판'은 단지 '비난'일 뿐입니다. 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을 깊이 묵상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물론 있으실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사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 안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느껴보셨는지요?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나 율사들을 적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해야 할, 함께 하고픈 벗으로 보셨습니다. 이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서슬퍼런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 대한 바리사이들이나 율사들의 '비난'과의 질적인 차이입니다.

 

님께서 사제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지고 비판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지금 보다 좀 더 넓은 안목에서 교회를 바라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릴 따름입니다. '누구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교회'임을 잊지 않을 때, 서로가 주고 받은 상처들을 서로 닦아주며,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바로잡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사제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실명으로 글을 올리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님의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실명으로 글을 올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신뢰심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실명으로 쓸 때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됩니다. 먼저 올리신 글(게시번호 4101)에서 실명이 아닌 필명으로 글을 올리는 이유를 '천주교인으로서 느끼는 가톨릭과 신앙에 대해 그 동안 생각한 것들을 다른 이들의 영향 없이 진솔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이 입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님께서 올리시는 글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용기가 없으면 올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님께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다만 이것이 진정한 용기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논의의 발전을 위해 실명으로 글을 주고 받으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이야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교회와 신앙을 위해 계속적으로 대화를 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님의 벗이고픈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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