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1주일(가해) 마태 9,36-10,8; ’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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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6-07 ㅣ No.5422

연중 제11주일(가해) 마태 9,36-10,8; ’23/06/18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하던 바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주 상심한다고 합니다. 남들은 그 정도면 되었을 텐데 하고 바라보는데도 정작 본인은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느끼면서 더 높고 더 낳은 것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얻어지지 않고 채워지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심각한 것은 실제로 자신의 처지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그 굴레 속으로 더욱 더 깊이 빨려들어갈 때 절망을 느낍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수준이던, 사회적인 신분이던, 개인적인 죄의 차원이던지...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하려고 의도했던 방향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때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하는데 또 반복하게 될 때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자기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고,

어디 하나 마땅히 갈 곳도 없고,

누구 하나 기댈 사람도 없을 때,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과연 이 나락에서 누가 건져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묵주기도의 성월이나 묵주기도를 바치고 나서 이어 바치는 성모 찬송기도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주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처지를 보시고 구해주십니다. 누구 하나 돌봐주기는커녕 잡아먹으려고 덤벼드는 세상 안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이 기댈 곳은 주님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라는 이국땅에서 힘겹게 살아야 했습니다. 인종이 많아진다는 이유로 정당한 처우를 받지 못한 채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심지어는 아들이 태어나면 죽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노예살이가 지겨워 탈출하려고도 했고 독립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모세가 나서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9가지의 재앙을 이집트인들에게 내리면서까지 반항했지만 그들의 독립 소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10번째 재앙을 이집트인들에게 내리면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용기와 새 삶의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 줄 말이다.”(탈출 19,4-6)

 

가끔 어린이들이 묻습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사람들만 사랑하십니까?

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뻐서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에 나오는 대로라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형제인 요셉을 이집트에 팔아버리는 나쁜 일을 저지르고, 자기 농사가 제대로 안되니까 자기들이 팔아버린 요셉 밑으로 살려달라고 스스로 기어들어 온 민족입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처지는 고소하고 벌 받아 마땅하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쌍하고 처량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과거가 어떠했던지, 그들의 행실과 죄과가 어떠했던지,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자승자박이던지 간에, 지금 당장 굶거나 괴로워하면서 자기 생을 힘겨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가련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를 구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러시기에 더욱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6-8)

 

우리가 잘나서도 아니요,

우리가 착해서도 아니요,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도 아니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죄와 악에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지금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주님의 이 커다란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고통과 근심 속에 계시다면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을 위로삼아 이겨내십시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10)

 

그리고 절망과 어둠 속에서 헤맬 때나 그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났을 때 다시 한번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11)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죄와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될 때 예수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마태 9,36)에 하신 말씀에 응답합시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38)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 사랑과 은총을 경험삼아 우리 주위에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형제자매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사도가 됩시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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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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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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