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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113: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30 - 다윗의 승계,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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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20 ㅣ No.371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13)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30) - 다윗의 승계, 솔로몬

“네가 세운 이 집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니…”

 

■ 형제들의 권력욕을 제치고

다윗은 일찌감치 주님으로부터 솔로몬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언질 받았다(1역대 22,8-10 참조). 이는 성전을 건립하여 봉헌하기를 열망했던 다윗의 충정에 대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복안(腹案)을 밝히시는 과정에서 계시된 것이었다. 다윗에게 내려진 말씀은 ‘너는 전사였고 사람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내 이름을 위한 집을 짓지 못한다’(1역대 28,3)는 천상적 결정이었다. 그 대사업은 솔로몬의 몫으로 정해져 있었다.

“네 아들 솔로몬이 나의 집을 짓고 나의 뜰을 만들 것이다. 내가 정녕 그를 선택하여 내 아들로 삼겠다. 내가 그의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튼튼하게 해 주겠다”(1역대 28,6-7).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 함은 바로 천자(天子) 곧 왕으로 책봉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솔로몬 외에도 많은 배다른 아들들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왕위를 탐했던 왕자가 없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솔로몬은 어머니 밧 세바의 도움으로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권력욕을 물리치고, 아버지의 왕권을 잇는 임금으로서 기름부음을 받는다. 다윗은 왕권과 더불어 두 가지 당부를 남긴다.

하나는 토라에 대한 충실이다. 요지는 시쳇말로 이랬다.

“너는 어떻게 됐든 야훼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라. 다른 거는 몰라도 나는 그거 하나 충실해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 네가 그렇게 하면 너의 왕국이 대대로 잘되리라”(1열왕 2,2-4 참조).

다른 하나는 공신들에 대한 예우다.

“내가 이 왕국을 통일할 때 세웠던 일등 공신들이 있는데, 내가 죽더라도 절대로 그들을 업수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제대로 예우를 해라. 그리고 내가 아직도 제대로 갚지 못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다 챙겨줘라”(1열왕 2,5-9 참조).

두 가지가 일국의 통치자를 위해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덕목이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게서 이런 탁월한 경륜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셈이었다.


■ 성전 건립

왕좌에 오른 솔로몬은 무엇보다도 먼저 아버지의 숙원이었던 성전 건축에 착수한다. 수백 년이 걸린 위대한 건축 유산에 비견될 7년간의 대공정! 여기에는 주변국들에서 조공으로 보내온 온갖 건축재들과 (전문)인력들이 대거 동원된다.

드디어 준공되고,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 초대된 성전 봉헌식에서 장엄하게 기도를 바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기도문을 읽다가 눈물이 찔끔거림을 억제할 수 없었다. 성전의 존재의의 그리고 기도의 전형이 백성에 대한 끔찍한 연민의 지평에서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통치자라면 이 기도를 성찰의 준거로 삼아봄도 괜찮을 것이다(1열왕 8,23-53 2역대 6,14-42 참조).

솔로몬은 성전 뜰 가운데 제단, 모든 회중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쳐들고 기도의 첫 운을 뗀다(1열왕 8,22 2역대 6,13 참조). 먼저 건축 경위에 대해 감사를 올리고서, 이렇게 부르짖는다.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1열왕 8,27-30 2역대 6,18-21).

이렇게 서두를 연 다음, 이어지는 청원 내용은 그야말로 폭으로나 깊이로나 인간사 제문제를 두루 아우르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하느님 자비를 비는 것들이다. 이웃에게 죄지은 이(1열왕 8,31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어 적에게 패했을 때(1열왕 8,33 참조), 가뭄, 기근, 흑사병, 온갖 자연재해(1열왕 8,35-37 참조) 등의 경우를 나열하면서, 하느님의 측은지심에 호소한다.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개인으로나 전체로나 저마다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며, 이 집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무엇이나 기도하고 간청하면,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어 용서해 주시고 행동하십시오”(1열왕 8,38-39).

이어, 이방인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를 할 때(1열왕 8,41-43 참조)까지 챙기는 한 통치자의 너른 흉금을 토로한다.

“그렇게 하시면 이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의 이름을 알아 모시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당신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1열왕 8,43).

솔로몬의 영적 연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고향 떠난 이스라엘 용사들이 어디서든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하면’(1열왕 8,44 참조) 그리고 이역만리 유배지의 백성들이 회개하며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하면’(1열왕 8,48 참조), 부디 주님의 유비쿼터스 레이더로 증폭시켜 들어주실 것을 간청한다.

기도가 대단원에 이르러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삼키고,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다(2역대 7,1 참조).

백성들은 축제로써 환호한다. 성전 봉헌식이 성료된 후, 하느님은 꿈속에서 솔로몬에게 다시금 말씀을 내리시며 다음과 같은 약속으로 봉인한다.

“네가 세운 이 집을 성별하여 이곳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니, 내 눈과 내 마음이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1열왕 9,3).

참으로 탁월한 수사법이다. 이 얼마나 예술적이며 영성적인 표현인가.

“내 이름을 두겠다. 내 눈과 마음이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크나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하느님이 바로 성전에 당신 이름을 두시고, 거기 계시면서, 당신 이름을 찾는 사람들을 다 만나주신다는 약속인 것이다. 또한 하느님 자비의 눈과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아 주시겠다는 담보인 것이다.

지금,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오너라, 나의 자녀들아
여기 내 이름을 두려고 내가 고른 곳,
천막 성전, 상가 성전, 조립식 성전, 벽돌 성전, 목조 성전, 콘크리트 성전,
가릴 것 없다.
와서 너만이 아는 곡절을 애소하며 원껏 내 이름을 부르려무나.
내가 들으리라.
듣고 응답하리라.

오너라, 나의 자녀들아
여기 내 눈이 있는 곳,
촛불이 켜진 곳이면 좋고, 십자가 걸려 있으면 더욱 좋고, 감실이 모셔져 있으면
가장 좋겠구나.
와서 너희의 통회와 갈망의 눈망울로 보이지 않는 내 눈을 바라보려무나.
내가 어여삐 보아주리라.
보고 미처 청하지 못한 것까지 베풀어 주리라.

오너라, 나의 자녀들아
여기 내 마음이 있는 곳,
구도자의 발심(發心)으로도 좋고, 냉담자의 회심(悔心)으로도 좋고, 신앙문외한의 초심(初心)으로도 좋다.
와서 세상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네 고충과 슬픔을 후련히 털어놓으려무나.
내가 이심전심으로 알아주리라.
알아주고 행동하리라.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19일,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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