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시장(준)성당 게시판

1월 13일자 평화신문 김광현교수님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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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angela57] 쪽지 캡슐

2013-01-12 ㅣ No.768

[교회건축을 말한다] <26·끝>제5화 한국 교회건축의 반성과 대안- 한국 교회건축 재고

 
'하느님의 집'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인식과 안목 길러야

▲ 서울 동대문시장성당 내부.


건축 역사를 보면 교회건축은 건축가가 짓는 몇 안되는 중요한 건물유형의 하나였다. 건축사 책에 그토록 교회건축이 많은 이유는 교회건축이 늘 건축 전체를 대표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건물유형이 크게 늘어났고, 교회건축은 이 수많은 건물유형 중 한 가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탓에 오늘날에는 저명한 건축가의 대표작으로 교회건축이 꼽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은 어떤가? 교회건축이 건축문화 전체를 대표하는 건물유형이어야 한다는 깊은 인식 위에서 지어져 왔는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느님의 집'이며 '하느님 백성의 집'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이런 표현에 진정 어울리는 교회건축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물론 진정 어울리는 교회건축이란 반드시 크고 웅장한 성당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음을 넘어 소박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성당을 짓겠다는 높은 '인식'과 '안목'이 정말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뜻이다.


▲ 독일 베젠바흐 성베드로성당 내부.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성당이 지어져 있다. 여기에 매년 50개 정도의 성당이 신축되거나 증개축되고 있다 하니,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당신의 집을 지을 수 있는 기회는 참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성당이 그 지역의 중심적 건축물로 자리 잡고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문 편이다. 또한 전례와 하나가 된 공간, 깊은 영성을 드러내는 공간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예도 허다하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교회건축 이전에, 건축에 대한 깊은 배려와 관심, 그리고 '안목'이 낮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교회건축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건축을 대하는 일반적 관념이 낮은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하느님께 지어 바치는 교회건축은 일반적 건축보다도 수준이 아주 낮다고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부실 건물이 교회건축에 은근히 많다. 이것은 건축주인 사제와 사용자인 신자들의 건축에 대한 '안목'이 낮아서다. 안목이 낮으니, 설계와 시공을 잘하는 사람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건축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교회건축을 얻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성당은 주님 말씀을 듣고 주님 식탁에 둘러앉아 주님의 몸을 영하는 거룩한 곳이며, 주님을 따르는 형제자매가 친교하고 하느님 앞에 나와 조용히 기도하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 곳이다. 그렇기에 성당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와 신자석의 관계다.

 성당의 중심은 제대다. 이때 제대를 향한 모습과 제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따로 나타내지 않고 하나로 통합해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 성당건축은 제대의 공간적 깊이를 충분히 주지 않고, 신자석에서 제대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만 지어지고 있다. 그런 탓에 신자들이 마치 극장처럼 제대를 바라보는 쪽을 우선해 설계된 성당이 제법 많다. 2층 발코니에 신자석을 많이 둔 성당에서는 강당이나 문화공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제대를 바라보는 쪽과 제대에서 바라보는 쪽의 재료와 형태를 제각기 달리 한 탓이다. 그 결과 주님 앞에 나와 찬미하는 백성이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공간이라는 공동체의 건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성당건축이 빛으로 공간을 조형해 건축의 영성을 표현하는 데 많이 부족하다고 자인해야 한다. 성당에서 빛이란 그저 밝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도, 전국의 성당을 다녀 보면 의외로 창을 여기저기 내어 내부가 산만한 성당을 참 많이 본다. 벽과 지붕과 천장이 이루는 3차원의 구조가 변화하는 빛의 영성을 위해 깊이 있게 통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당건축에서는 내부 공간 전체가 천장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성당에서는 천장이 벽체와 하나로 통합돼 있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무미건조하게 그냥 공간을 덮고 있다. 목조구조인 듯이 무늬목을 바른 가짜 구조재를 천장에 붙인 것이 참 많다. 이것은 건축 부재(部材)로 공간을 속이는 것이며, 진실해야 할 성당의 내부공간에 깊이가 없는 얇은 재료로 위장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 독일 베젠바흐 성베드로성당 외부.


 성당건축의 외관은 건축의 바깥 모양만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나라와 그분의 현존을 지역의 어떤 장소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당건축 외관은 로마네스크나 고딕과 같은 교회 건축양식의 일부 형상만을 표면적으로 본뜨고 이를 조합한 것이 너무 많다. '무릇 성당은 고딕식'이라는 단순한 편견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성당을 벽돌로 치장해 육중한 모습을 나타낸다고 해도, 벽에 대한 창의 깊이가 얕다. 구조는 현대건축인데, 표현은 로마네스크나 고딕 느낌을 주려다가 생긴 괴리다. 그리고 적절한 외부공간 없이 건물만 차용한 양식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을 때, 지역 안에서 성당은 고유의 준엄하고 지속적 자리를 얻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성미술은 성당 안팎에서 건축물과 함께하기에 그 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한 탓에, 따로 보면 아주 훌륭한 성미술인데도 건축물의 안쪽 벽이나 외부공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14처 조각이라도 밋밋한 벽면을 만나면 성미술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너무 천장이 높은 성당 안에 놓여 그 형상을 알아보기가 어렵고 왜소하게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성미술은 시공하는 과정이나 다 완성된 다음에 생각해서는 안 되고, 설계 단계부터 건축가와 성미술가의 협력이 정말 잘 이뤄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릎틀은 성당건축 내부의 4면 중 한 면을 결정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바닥 요소인데도 색깔, 모양 등을 건축물과 상관없이 제일 마지막에 따로 정하는 수가 너무 흔하다. 무릎틀은 바닥과 비슷해야 하고, 신앙공동체를 덮고 있는 천장과 벽을 위해 겸손한 모습을 취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건축을 다시 생각하는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두 개의 성당을 살펴보자. 하나는 독일 벤젠바흐에 있는 성베드로성당(2003년)이다. 7세기에 지어진 성당 북쪽에 배 모양의 새 건물을 증축했다. 15m 높이의 목재 블라인드가 이 두 건물을 엮고, 새 건물은 겸손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부의 반투명한 유리가 만들어낸 부드러운 푸른빛이 위로 올라갈수록 옅어지며 내부를 적시고 있다. 바닥과 무릎틀은 천장과 조응하고, 제대를 향해서나 신자석을 향해서나 하나로 통합된 공간을 드러낸다. 무의미한 장식은 없으며, 재료는 구조의 진실에 참여한다. 옛 교회건축을 결코 겉보기로 모방하지 않고, 오늘날만이 만들 수 있는 교회건축을 만들었다. 공간과 구조가 깊고도 투명하게 하느님 백성을 이렇게 자기 지역 안에서 묶어낸다.

 다른 하나는 새단장을 하고 지난 12월 22일에 축성된 서울 동대문시장성당(주임 오은환 신부)이다. 이 성당은 외부공간도 없으며 외관도 없다. 동평화시장 건물 5층 중복도 한쪽에 마련한 성당이기 때문이다. 이 성당은 건물이 아니라 '큰 방' 두 개를 가진 성당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좁은 창고를 개조한 문 너비 정도의 '성모 동산'이 따로 있다. 복도에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대형 유리화도 있다. 제의실은 책상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폭이지만 그 앞에는 회의실도 있고, 함께 앉아 식사할 수 있는 집회실도 옆에 뒀다. 약 90명이 앉으면 꽉 차는 초미니 성당이다.

 이런 성당의 벽면을 대가 없이 고쳐달라고 부탁 받은 나는 결국 내부를 다 고치는 설계를 해드려야 했다. 예산이 없어 벽면만 고쳐달라고 부탁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신부님 허락을 받고, 천장을 올릴 수 있는 만큼 올리고 목조 부재처럼 무늬목을 바른 겉보기 천장을 없애고 평탄하게 했다. 규모가 작아서 자작나무 합판 한 가지 재료만을 사용했다. 그러나 느낌만은 오래된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의 일체된 공간을 닮기를 바랐다.

 이런 성당을 두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축성미사 강론에서 "신앙이 살아 있고 열심인 이 본당이 김광현 교수의 마음을 담아 새롭게 단장한 아름다운 성전을 갖게 됐다. 이 성당은 가장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다"하고 말씀해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작지만 최대의 찬사를 받은 성당이 됐다. 이것은 건물 내부가 아니라, 열심히 믿고 살아가는 이 성당 신자들 마음을 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동대문시장성당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본질을 닮고 지역 안에서, 사람의 생활 속에서, 공동체 위에서 성립해야 할 오늘날 교회건축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새롭게 한국인의 마음을 다해 지어드린 성당, 지역에 충실한 성당, 최고의 예술인 교회건축을 이 땅에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려면 이제까지 우리가 지은 한국의 교회건축을 되돌아보고 깊이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기획책임-김광현>

▲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건축학과 교수, 건축가)


가톨릭 교회건축을 쉽게, 그리고 폭넓게 소개하고자 한 1년간의 기획을 마치게 됐다. 함께해주신 독자와 이 긴 장정을 이끌어주신 집필자 여러분 덕분이다. 훌륭하고 겸손한 교회건축이 만들어지려면 교회건축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을 가진 건축가, 시공자를 더욱 잘 선별해 이들이 자신의 믿음을 건축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줄 교구의 열린 건축행정, 교회건축에 대한 사제의 이해와 안목,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교회건축을 내 신앙생활을 담아주는 그릇과 같은 것으로 늘 인식해주는 일이 절실하다. 한번 지어진 성당은 내가 그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이상,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연재는 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과 평화신문 공동 기획으로 이뤄진 것이었으나, 내용을 보완해 누구라도 교회건축을 깊이 이해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교회건축이 이 땅에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쉽게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기로 했다.
 한편 이 연재를 진행하면서 오랫동안 우리는 교회건축을 짓고 사용만 했지, 이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집단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회건축연구회'를 조직할 예정이며,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허락을 얻었다.

 이 연구회 회원은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와 신자로 하고, △교회건축에 관한 교회 문헌 △교회건축에 대한 이론과 지침 △교회건축 작품 분석 △교회건축사 △한국 교회건축 평가 등을 통해 우리나라 가톨릭교회 건축을 더욱 깊이 정립해가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교회건축을 이 땅에 더욱 충실히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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