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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교황 사임에서 새 교황 탄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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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18 ㅣ No.250

[새 교황 프란치스코] 전임 교황 사임에서 새 교황 탄생까지

교회 · 신앙, 새롭게 성찰하고 쇄신하는 기회



놀라움에 어떤 반응도 선뜻 내놓지 못했다. 곧이어 전 세계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깨어있는 영적 식별력과 용기 있는 결단에 보내는 깊은 존경의 의미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임. 2000여 년 교회역사 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사건이었다. 최측근 성직·수도자들조차 예상치 못했다.

2월 11일 정오 바티칸에서 열린 추기경회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그 이름 앞에는 늘 ‘보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이 결정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진보적인 결단으로 평가받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온전히 자발적인 사임을 발표한 교황은 베네딕토 16세가 처음이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이 역사적인 행보를 교회와 신앙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고 쇄신하는 기회로 삼을 것을 다짐했다.

전 세계에서 기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사임 발표 다음 날인 1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콘클라베 ‘엄정중립’을 선언했고, 25일에는 콘클라베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허용했다.

27일 교황직 퇴위 하루 전, 마지막 일반알현의 장이 열렸다.

수많은 깃발과 플래카드, 꽃다발, 풍선 등을 앞세운 신자 15만여 명이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인파는 광장에서 인근 거리까지 넘쳤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표현한 ‘기쁨과 빛의 시기, 하지만 어려운 순간들’이 빠르게 오버랩 됐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우리를 위해 외아드님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남긴 기원 또한 오랜 여운을 남긴다.

2월 28일 교회 역사에 깊이 각인될 이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로마에 도착한 추기경 144명과 마지막 공식 만남을 가졌다. 추기경들이 교황 반지에 입맞추고 손을 잡고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는 동안 이별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그는 곧바로 헬기를 이용해 교황의 여름 별장인 카스텔간돌포로 이동했다.

앞으로 한 달쯤 후 그는 바티칸 내 봉쇄수도원인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으로 돌아온다. 이후 남은 여생 동안 기도와 신학 연구 등에 헌신할 것이다.

이날, ‘전임 교황’(emeritus pope) 베네딕토 16세 ‘어부의 반지’는 파기됐다.

그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례를 시작하는 소박한 순례자’로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텅 빈 성 베드로 좌(sede vacante).

새로운 교황 선출 과정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선출 과정과는 다소 차이가 많았다. 전임 교황의 선종이 아닌 ‘자진 사임’으로 선출 절차가 갑작스레 진행됐기 때문이다.

3월 4일 교황 선출 콘클라베(conclave) 준비를 위한 세계 추기경회의가 시작됐다. 선거인 추기경은 총 115명이었다. 현재 교황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80세 미만 추기경은 117명이었지만, 2명이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불참했다. 선거인 추기경이 가장 많은 대륙은 유럽으로 총 61명이었으며, 아시아 추기경 수는 11명이었다.

이들은 ‘콘클라베’의 의미 그대로 비밀 유지 서약을 한 후 외부와의 교류를 일절 차단한 채, 시스티나성당에서 새 교황을 뽑는 일에만 전념했다.

12일 시스티나성당의 문이 굳게 닫혔다.

“나를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삼아 나는 하느님 앞에서 당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선거합니다.”

추기경들은 후보는 따로 선발하지 않고, 선거인 각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었다.

하지만 콘클라베 첫날 성당 굴뚝으로 피어오른 연기는 검은색이었다. 115명 중 2/3인 77명 이상의 지지를 얻은 이가 없다는 의미였다. 설렘과 기대에 찬 표정은 아쉬움의 탄식으로 변했다.

다음 날은 오전 2번, 오후 2번의 투표가 이어졌다.

13일 오후, 주룩주룩 내리는 비 사이로 어두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5번째 투표가 마쳤을까?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모든 언론과 각국 국민들의 관심은 시스티나성당에 쏠려있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도 수천 명의 군중들은 광장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시계바늘이 오후 6시를 조금 넘기던 때, 광장에 모인 이들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시스티나성당 굴뚝 위로 흰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흡사 성령이 임하신 듯 한 모습에 일부 군중들은 숨죽여 그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40여 분 간이나 그 자리를 지키던 갈매기가 홀연히 날아가는 순간,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두운 밤하늘을 타고 오르는 연기는 하얀 빛깔을 띠고 있었다. 바티칸 현지 시각으로 13일 저녁 7시 6분, 한국 시각으로는 14일 새벽 3시 6분이었다. 군중들의 환호에 리듬을 맞추듯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광장 인근에 있던 수만 명의 군중들도 성 베드로 광장으로 뛰어 들었다.

이어 장 루이 토랑 프랑스 추기경이 ‘Habemus Papam’(하베무스 파팜,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선언문)을 공식 발표했다. 새 교황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시간 10여분 후, 성베드로성당 발코니의 붉은 커튼이 열렸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였다.

‘교황 만세’, ‘교황이여 영원하라’ 등의 환호성이 하늘을 찌를 듯 울렸다.

교황이 축복을 전하는 ‘Urbi et Orbi’(우르비 엣 오르비, 바티칸 시와 온 세계를 향해)가 이어졌다.

교회 역사상 아메리카 대륙 출신으로도, 예수회 출신으로도 처음 탄생한 교황이다. 비유럽권 출신으로도 그레고리오 3세(시리아 출신) 이후 1282년만의 일이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성 프란치스코 ‘평화의 기도’가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지난 한 달여 기간 동안 이어진 교황 사임과 선출의 역사적 일정은 19일 교황 즉위식으로 마무리된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월 11일 정오 바티칸에서 열린 추기경회의에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소식을 듣고 신자들이 탄식하고 있다.




-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시스티나성당 굴뚝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축복을 하고 있다.




- 자국 출신 교황의 탄생으로 환호하는 아르헨티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의 신자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18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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