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10월 로사리오, 선교 기원 미사 ’1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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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10-06 ㅣ No.3667

10월 로사리오, 선교 기원 미사 ’18/10/06

 

10월은 로사리오 성월입니다. 그리고 또 전교의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어쩌면 아주 자주 하루에도 여러 번 기회가 될 때마다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합니다. '장미화관', '장미 꽃다발'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의 로사리움(rosarium)을 우리말로 번역 '묵주', 혹은 '묵주기도'라고 합니다. 묵주(默珠)란 구슬이나 나무 알을 열 개씩 구분하여 여섯 마디로 엮은 염주 형식의 것으로 십자가에 달려 있는 물건이며, 이를 사용하여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부탁하여 드리는 기도를 묵주기도라고 합니다. 전에는 매괴신공이라고도 했습니다.

묵주기도는 도미니코 성인이 선교를 하다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묵주를 주시며 기도하라 하셨다는 데서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또는 12세기에 글을 모르는 신자들이 미사를 드릴 때 시편 구절을 잘 읽지 못하니까, 그 대신 주님의 기도를 3회에 걸쳐 150번 암송하던 관습에서 발전되었다고도 합니다. 초기교회 순교자들은 자신을 주님께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화관을 쓰고 순교당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신자들의 신심을 증진시키기 위해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권장해 왔습니다. 교황 성 비오 5세는 묵주기도의 방식을 묵상기도와 염경기도로 구성하여 표준화시켰습니다.

성모님은 1830년 파리에서, 1846 라 살레떼에서, 1858년 루르드에서 벨라데따에게, 1871년 폰트매인에서, 1917년 파티마에서 6번이나 발현하실 때마다 죄인의 회개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부탁하셨습니다. 묵주기도는 우리가 성모 마리아를 통해 언제나 하느님과 끊임없는 대화 속에 생활하도록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구원의 신비를 묵상함으로써 더욱 우리 자신을 주님과 일치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염경 기도(기도문)를 계속 되풀이 하여 바치면서, 환희와 빛과 고통과 영광의 각 신비마다 제시되어 있는 묵상 주제를 따라 더욱더 깊이 주님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주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주님의 모습을 뵈오며 또한 주님 그 신비에 참여하게 해줍니다.

염경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지어 주신 주님의 기도와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바치도록 기도문을 만들어서 다 함께 한 목소리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 분심을 떨쳐 버리고 신비 안에 깊숙이 들어가기 위하여,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과 영광송과 구원송을 계속 반복합니다.

묵상 기도는 주님의 신비를 생각하고 기려, 자신의 매일 생활 안에서 주님의 뜻과 말씀을 새기고 다짐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의 첫 신비, '환희의 신비'는 주님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고 기뻐하는 천사들의 흥겨운 노랫소리를 기억하게 해줍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기쁜 소식에 대한 설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겸손과 순명에서 시작하여,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서 하느님의 소명을 확인하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데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윽고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구세주의 탄생!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하고, 예수가 하느님 안에 살아계심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환희의 신비를 묵상하며, 1단에서 내가 해왔던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 돌이켜 보고, 주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쓰시고자 하시는지 찾습니다. 2단에서는 주님의 복음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 교회 공동체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자기가 알아들은 뜻이 참으로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공동 식별함으로써 확고하게 받아들입니다. 또한 그렇게 깨닫고 받아들인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성령께 도우심을 청합니다. 3단에서는 하느님의 뜻이신 '말씀이 사실로 된' 구세주의 탄생처럼, 우리가 공동체의 식별 과정을 통해 온전히 깨닫고 받아들인 주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주님과 함께 구원 사업을 수행하는 주님의 협조자가 됩니다. 또한 탄생하신 구세주를 알아보는 표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가 2,12)라는 예언을 기억하며, 아무런 조건 없이 내가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내어줍니다. 4단에서는 마치 우리가 씨를 심고 물을 주어도 씨앗에서 싹이 돋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신 것처럼, 우리가 애써 실천하는 이 일과 그 일이 주님 안에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주님께 봉헌합니다. 5단에서는 우리가 바친 그 열매나 불안한 미래가 참으로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확인되어, 기쁨에 넘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빛의 신비는 우리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 즉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을 말씀과 행적으로 보여주시는 장면을 묵상하게 됩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가르쳐주시고, 실제 현실로 증명해 보여주시고,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한 가치 판단과 방법과 과정을 일러주시고 성체성사에 이르는 헌신적인 희생을 보여주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주님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기도를 바치며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주님의 뜻을 명확히 체득하고 주님의 뒤를 이어 이 땅에 하늘나라를 이루도록 투신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1-12)

우리는 빛의 신비를 묵상하며, 1단에서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나를 버리고 주님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와 인류사회를 위해 희생 봉사하고자 다짐합니다. 2단에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현세적인 어려움에 꿋꿋이 맞서 믿음으로 이겨낼 힘을 청합니다. 3단에서는 성령의 힘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복음을, 죄와 악의 굴레에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오류에 빠진 이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게 해주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청합니다. 4단에서는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현세적인 축복과 은총을 받아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하늘나라를 이루는데 헌신하고자 봉헌합니다. 5단에서는 주님께서 내려주신 생명으로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가 머무는 곳곳에서 주님의 사명을 실현하고자 노력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수난 당하시는 고통의 신비는 이사야 예언자가 언급한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이사 52,13-53,12)를 연상케 합니다. 특별히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이사 53,4-8)는 구절에서 수난 당하시는 주님이 연상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시느라고 음식을 드실 겨를도 없이 바쁘십니다.(마르 3,20;6,31). 지금까지 당신 백성들에게 온갖 정열과 애정을 다 쏟아 부으신 주님은 오늘 마지막으로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주님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주님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명확히 확인하고 기꺼이 받아들이시기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십니다. 마침내 주님은 시기심 가득 찬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 터무니없는 말로 고발당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애정을 쏟아 부었던 백성들은 주님을 거부하고, 제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립니다. 이교 총독인 빌라도는 인간의 권위로 하느님의 권위를 누를 수 없음을 알았지만 자신의 자리 보존을 위해 주님에게 사형 판결을 내립니다. 주님은 온갖 모욕과 머리가 빠개질 듯한 고통을 당하십니다. 주님은 혼자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변함이 없는 것인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시기에, 그리고 진리와 사랑만이 악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기에 꿋꿋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악의 세력들은 마지막 죽음의 현장인 십자가상에서마저 주님의 사명을 포기하라고 유혹하지만, 주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다 이루십니다. 주님을 거부하는 이들을 위해 대신 용서를 빌어주시고, 자신은 다시 생명을 얻어 부활하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자비하신 아버지께 향합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가 23,46)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단지 죄 없는 사람의 죽음과 그에 따른 감상적인 동정을 넘어, 인간에게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백인대장처럼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루카 23,47)

우리는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며, 1단에서 나의 욕심과 의지와 생각을 감정과 함께 벗어 던지고 주님의 뜻을 찾습니다. 2단에서는 갖은 곤경과 박해 속에서도 우리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뜻을 이루기를 다짐합니다. 3단에서는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우리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시되더라도 꿋꿋이 그리고 항구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합니다. 4단에서는 십자가를 무겁게만 하는 우리의 악행과 십자가를 가볍게 하는 우리의 선행을 동시에 바라봅니다. 5단에서는 주님의 사도가 되어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써, 주님께서 남기고 가신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영광에 참여하는 우리를 기억하고 주님의 은총을 구합니다.

 

묵주기도 네 번재 신비인 영광의 신비는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구원을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9.11) 주님은 악의 세력인 죽음을 누르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구세주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도시 갈릴래아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리스도 주님은 주님께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셨던 바로 그 사랑을,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살도록 명하시고 하늘에 올라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마태 28,18-20).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를 그리스도 주님과 일치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교회로 하여금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건설하도록 이끄시고, 우리가 그 일을 하는 데 함께 하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은 교회의 생명이요, 운전사이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는 백성들의 모범을 주님의 모친이신 마리아에게서 발견합니다. 끊임없이 그리고 끝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묵묵히 따랐던 마리아의 삶을 우리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게 "(주님께)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전구기도를 바치며, 성모 마리아를 공경합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몸을 썩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영광스럽게 하늘로 불러 올리셨고, 하늘의 어머니로 모셨습니다. 주님의 교회인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주님과 함께 누리는 영광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누릴 기쁨과 행복을 갈망하며,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며, 1단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려운 이들의 삶으로 들어갑니다. 2단에서는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내 일상과 내 활동 안에서 삶으로 증언하기 위해 확고한 믿음을 다지며, 성령을 기다립니다. 3단에서는 성령을 받아,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는 사도가 됩니다. 4, 5단에서는 우리 교회의 모범이신 마리아를 공경하고 본받아, 우리에게도 주실 영광을 기억하며 주님 사랑의 사도적 열성을 다합니다.

 

우리는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많은 청을 드립니다. 기도가 주님께 청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충분한 도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많이 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청하는 우리를 보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의 은총은 현실적으로 인간에게 복을 주고 고통의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공동체 모두에게 주님의 뜻이 전달되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주님의 은총이 현실적인 축복과 풍요와는 반대가 될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께 청할 때에는 우리가 청하는 것이 주님의 뜻 안에 있기를 빌어야 하며, 주님의 뜻 밖에 있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뜻에 맞추어 변화시켜 주시기를 아울러 청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주님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영 안 들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를 기다리며,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 방향으로 나갈 때, 때가 차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뜻 밖에 있다면, 우리가 기도 생활 안에서 수정하도록 깨우쳐 주실 것이요, 우리가 알아듣지 못했다면,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애정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에페 3,20-21)

 

 

주 하느님께 틈나는 대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우리의 구원을 향한 정성과 노력 그리고 맞갖은 봉헌을 바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현세생활과 미래 구원을 위한 모든 필요를 가득 채워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럼 우리는 그렇게 주님 은총으로 채워주신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선교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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