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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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1-07-07 ㅣ No.2219

어제 어릴적에 살던 동네에 다녀왔습니다. 무슨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어릴 때 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명대사의 동상에는 앞면에 스님들이 왜적을 물리치는 모습을 부조로 새겨 놓았는데 그 부조에는 어떤 스님이 염주를 들고 있는 모습과 활을 들고 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염주의 맨 윗알과 활을 들고 서있는 손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아이들이 그 동상에 올라가기 위해 그 부분을 밟고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빤짝빤짝하게 된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은 제가 이십몇년전에 놀던 모습으로 놀고 있던 것입니다.

 

그 동상의 높은 단에 올라가는 것이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남들보다 내가 더 세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위였습니다. 그렇게 올라가서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그 단에서 뛰어내리면 감히 다른 애들은 내게 대들 생각을 못하게 되고 아이들은 나를 골목대장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십몇년전에 제가 남긴 흔적이 아직 있을리는 없을테니 지금도 어떤 아이들은 나와 같이 그런 놀이를 하며 뻐기는 것이었겠지요. 아! 나의 어린시절 그 치기와 우쭐거림, 그리고 끊임없는 싸움과 말다툼, 그리고 야단맞음의 연속들.. 지금도 어떤 아이들은 그 과정을 밟고 있었구나!

 

요즘 아이들이 버릇없다고 많이들 얘기합니다. 정말 저도 그렇게 느낍니다. 어떤 아이는 너무 떠들고 말을 안들어 주일학교 교사가 야단을 쳤는데 다시는 성당에 안나오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이제부터 하느님을 저주하겠다고 하면서 갔다고 합니다. 어린이 미사 시간마다 싸우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정신이 팔려 어떻게 미사를 했는지 기억이 안날 때가 많습니다. 성당에서 놀던 아이들 중에는 제방에 올라와 정말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려 당황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참 속으로 욕도 많이 했습니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하는 생각을 한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입니다.

 

한번은 서울교구 교리경시대회 준비때문에 성당에서 집중적으로 교리공부를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떠드는 아이들이 얄미웠던지 벌을 주었습니다. 남자애들만.

하긴 여자애들은 그렇게 떠들지 않았으니 남자들만 벌을 주는게 합당하였겠지만,  어린 저는 오기가 발동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차별대우를 한다고 생각했고 너무 부당하다고 여겼습니다. 뒤에서 벌을 받고 다시들어오라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게 되었는데 저는 나쁜 기분을 표출하고 싶어서 책상위로 올라가 큰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았습니다. 당연히 모든 아이들이 저를 쳐다보았고, 선생님은 어이가 없어서 저를 다시 뒤로 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앉으라고 하셨는데 저는 반항심으로 아까와 똑같은 방법으로 큰소리를 내며 우당탕 자리에 앉았습니다. 몇번의 반복..

 

그리고 저의 버릇없음과 반항으로 이성을 잃은 선생님은 저를 "퍽퍽"하고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약 두시간의 싸움과 회유가 시작된 것이지요. 그리고 울음과 소리지름.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왜그렇게 반항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선생님이 계속 교사를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안있어서 저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저의 성당생활은 새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생님께 그 일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부가 되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말입니다.

 

이제 버릇없는 아이들에 대한 미움을 멈춰야 하겠습니다. 그건 바로 저에 대한 미움일테니까요. 그리고 아이들때문에 고생하는 모든 교사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상주실 것이라고. 저를 때렸던 선생님 제자가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정말로 용서를 청합니다. 이제는 저 안그러고 살아요. 용서해 주세요.

 

지금도 똑같은 과정을 밟으며 자라는 많은 아이들아!

철들자

나나 너희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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