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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674번 이승국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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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욱 [hictos] 쪽지 캡슐

2000-04-17 ㅣ No.675

 

정창욱입니다.

 

먼저 형제님이 서강대생이며 신학과가 아닌 다른 학과의 학생이라고

 

자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성염교수가 현재 근무하는 곳이 서강대이므로 그 분의 강의를 듣는

 

카톨릭 신자학생들의 생각들이 어떠한지 공유해보고자 수도자대학원과 종교학과

 

그리고 몇몇 카톨릭관련 학생동아리에 참여를 구하는 글을 올린적이 있으며

 

그러나 이는 결코 호응을 얻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형제님의 글은 마치 제가 서강대에 존재하는 상당수의 학과들에 도배하며

 

돌아다닌 듯한 인상을 줍니다만 저는 그렇게까지 몰지각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형제님의 글의 내용을 보면 수도자 대학원에 다니시는 분은 아니신듯한데

 

혹시 종교학과 쪽이신지요?

 

첫째, 서강대학교는 재단이 가톨릭이고 총장이 예수회 신부님일뿐 일반 사립대일뿐입니다. 따라서 성염 교수가 서강대 교수로 직함을 밝혔다고 해서, 그것이 가톨릭의 가르침이라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성염 교수는 신부도 아니구요.

 

물론 성염교수는 사제의 신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승국 형제님은 한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계신 것 같군요.

 

이미 그 점을 잘 알고 계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염교수는 현재 서강대 철학과 부교수로 재직하시는 것 이외에도 많은 활동을

 

하고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서강대 교수’라는 직함 이외에 많은 다른 직함들도

 

함께 가지고 계신 분이죠.

 

예를 들어 ’한국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같은 것 말입니다.

 

그 분이 보유하고계시는 무게있는 타이틀 중에 그 신문 기사내용과 관련하여

 

사실상 가장 중요하고 또 연관성이 깊은 직함은

 

’우리신학연구소’(http://www.wti.or.kr/h-main.htm)이사장이라는 타이틀일 것입니다.

 

그 분은 이미 ’우리신학 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신 적이 있고 이어서 소장도 역임하셨으며

 

2000년들어 다시 이사장직을 맡아서 활동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그분의 프로필을 살펴 보면

 

그 분은 철학을 직접 전공하신 적은 없는 분입니다.

 

학부시절부터 대학원까지는 신학이 전공이셨고 이태리 유학시절에는 철학도 신학도 아닌

 

고대 라틴어로 학위를 따신 분이니까요.(그것도 그 분이 강도떼의 소굴 정도로 여기고 있는

 

로마교황청이 설립한 대학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고요.....

 

그러므로 그분의 한겨레 기고를 ’한 일반사립대의 일개 철학교수의 개인적인 글일 뿐’이라는

 

식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고 희석시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형제님이 위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비록 성염교수가 서강대에서 철학강의를 하고 있는 분이시긴 하지만

 

우리는 이 분을 두고 철학자라기 보다는 신학자라고 불러야 옳을 것입니다.

 

둘째, 성염 교수가 사용하였던 표현은 물론 래디컬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사로 가톨릭 교회가 어떤 영향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 기사를 다른 종파에서 사용한다고 해도 과연 그것이(그 구체적인 사안이) 교회 바깥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지 모르겠습니다.

 

형제님은 시종 성염교수의 글이 갖는 부정적인 의미와 그 사상적 위험성을

 

축소. 옹호하려 하시지만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바라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염교수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그리스도교 신학분야의 전문인들에게는

 

무척 잘 알려져있는 분일 것입니다. 또한 성염교수의 글을 읽는 타 종교인들 중에는 이 분야의

 

전문인들로서 자신의 종교내에서는 크고작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분들이 성염교수의 이 같은 글을 읽고 이것이 성염교수 일 개인의 신앙단상일 뿐이라고들

 

생각할까요?

 

이래도 형제님은 성염교수의 그 글이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글이라고 주장하시렵니까?

 

셋째, 성염 교수에 대해, 저는 그 기사 하나만으로 그 분을 반가톨릭적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가톨릭적이라고 생각되는 발언"을 하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가톨릭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사람들일 테고, 다른 하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에 대한 깊은 신앙 안에서 자신의 의사를 ’반가톨릭적 표현’으로 나타내는 사람들이겠지요.

저는 우선 사람을 믿습니다. 그분이 스스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톨릭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는 앞서 말한 두 경우 가운데 후자의 경우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제님의 위와 같은 논리를 궤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성염교수가 번역한 역서들이 몇 권 있는데 이 책들은  우연찮게도 모두

 

아오스딩 성인의 글들에 관한 역서들입니다.

 

아오스딩 성인이야 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카톨릭적인 분이셨지요.

 

이처럼 훌륭하고 위대하신, 우리 신앙의 모범이 되시는 분의 글을

 

성염교수가 도맡아서 번역을 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합니다.

 

깊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무지무지 사랑한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않은 표현일 것입니다.

 

백보 양보하여 "성염교수는 교회를 무지무지 사랑하는 분"이라는 형제님의 주장을

 

설사 제가 받아들였다손 치더라도  

 

어떻게하여 한 분은 ’고백론’등을 통하여 교회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낮추어

 

교회에 대한 자신의 절절한 사랑을 적게되었고

 

또 다른 한 분은 ’교회를 향한 독설’로써 자신의 애절한 사랑표현을 대신하게 되었는지,

 

제 머리로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정말로 교회를 사랑한다면 그런 말을 주고받더라도 우리들끼리 해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TV 스포츠 중계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종종 확인합니다.     

 

어떤 선수가 반칙을 써서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하더라도

 

그 선수가 그 때문에 상대방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고있다면

 

그를 사랑하는 팀의 동료들은 그가 얻어맞고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를 구하러 적진에 뛰어들어 패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보지요.

 

거기에 자기 동료가 잘못했다고 그를 깔아뭉개고 구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그 선수를 아끼는 응원단까지 합세하여 경기장이

 

난투극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도 가끔씩 보게됩니다.

 

이런 경우 패싸움을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지상정아닐까요?

 

저는 성염교수가 그 같은 글을 쓰게된 동기의 중심에는 결국 사랑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며느리가 예쁘게 보이면 며느리 얼굴의 곰보까지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타인들 앞에서 행여 그 사람에게

 

누가되는 말은 할수가 없는 법입니다.

 

 

성염교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분은 위 아오스딩 성인의 글들 이외에도 교회에 대한 사랑이 철철넘치는

 

여러 훌륭한 저서들을 한글로 옮기신 분이시지요.

 

모름지기 번역자는 글에 나타난 원저자의 정신과 잘 부합될 때에만

 

훌륭한 번역을 해낼 수 있는 법인데

 

이와같은 주옥같은 호교서들을 번역하신 분이 한겨레 기고에다가는 어떤 연유로

 

그와 같이 욕설에 가까운 글을 쓰시게 되었을까요?

 

그 신문이 소위 진보를 기치로 내건 신문이라서 그 쪽 기분을 마추어 주시느라고 그러셨을까요?

 

반대로 한겨레의 글이 그 분의 진심이었다면

 

위의 번역서들은 그 분 스스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히신 대로    

"번역이나 저술 또는 교수나 강연 활동 같은 생업도 가톨릭계를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위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요?

 

저는 그 분이 보여주신 극과 극의 이 두 경우 속에서 어떤 것이 그 분의 진의인지 혹은

 

그 분의 진의에 가까운 것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성염 교수의 글에서 가톨릭 교리와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 기사의 첫 번째 구절인데, (공적인 매체에 드러난 것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은 개인적인 표현 이고 문학적인 표현일뿐입니다. 그분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바꾸려는 의도에서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새로운 종파를 만들고자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정 형제님은 그 기사가 공적인 글이지 개인적인 글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이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하셨지만, 형제님의 우려와 같은 파급효과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저의 견해이고, 또 실제로 지금까지 그로 인해 어떤 대단한 문제가 교회에 일어났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형제님,

 

성염교수의 글은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글이지만

 

카톨릭 교회의 신앙교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내용은

 

아래의 두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님의 주장대로 한 구절만이 아닙니다!!!

 

나자렛사람 예수가 요르단강에서 설교하던 기이한 예언자를 찾아가서 세례를 받던 순간,

퍼뜩 깨달은 바가 자기한테 메시아 사명이 있다는 각성이었다.

그런데 민족적 숙원인 메시아의 대업을 이루는 방법을 놓고 그는 번민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악마와 예수가 주고받았다는 `유혹사화’로 전해온다.(성염교수)

 

카톨릭교회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해방자로 오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민족의 해방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해방을 위해서 오셨는데 문제는 그 해방이 그 당시

 

유대민족들을 억압하던 ’로마제국’으로부터의 정치적인 해방이

 

아니라 인류의 더욱 궁극적인 해방인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오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민족을 외세와 부패한 권력의 억압과 압제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역사상의

 

인물들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북한의 김일성, 베트남의 호지민,

 

장정의 주인공들인 모택동과 주은래.등소평, 멘쎼비키와 볼쎼비키들, 특히

 

레닌과 쿠바의 카스트로, 볼리비아에서 죽은 체게바라등 20세기만 하더라도

 

많은 민족해방가들이 있었습니다.  

 

위 성염교수의 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이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형제님은 위 성염교수의 글을 문학적 표현이라고 하셨는데

 

’신’자를 ’문’자로 오타하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지상행적을 민족해방가의 업적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예수님의 신성을 훼손시키는 결정적인 오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주님께서는 그리스도교가 민족의 원수인 로마제국 속에서

 

뿌리내리고 성장하도록 섭리하시지 않으셨겠지요.  

 

물론 이에 대해 성염교수는 그것이 "영악한 제자들"때문이라고

 

그 탓을 돌리고있지만 말입니다.

 

형제님의 말씀대로 위 성염교수의 글은 그 분의 개인적 신앙의 표현일 수는

 

있으되 문학적 표현일 수는 없으며 그 분의 연구소활동을 미루어 볼때 그 글은

 

메시아론에 대하여 성염교수가 정립한 새로운 신학적 해석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신문의 타이틀에는 그 분의 ’우리신학 연구소 이사장’이라는

 

직함은 빠져있었지만 우리는 이 글이 성염교수가

 

신학자로서 쓴 글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형제님,

 

저는 우연히 ’우리신학연구소’의 홈페이지 방명록에서

 

형제님의 이름으로 된 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형제님 본인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씁쓸하더군요.

 

차라리 애시당초부터 형제님이 성염교수를 잘 알고있으며

 

그 분과 생각을 공유하고 지지하는 분이라고 밝히셨더라면

 

우리들의 대화가 더 진솔하게 진척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형제님은

 

"우려와 같은 파급효과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저의 견해이고, 또 실제로 지금까지 그로 인해 어떤 대단한 문제가 교회에 일어났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만 성염교수의 위험한 사상을 옹호하고있는 형제님의 경우를 보니

 

그 폐해를 직접 보는 것 같아서 참으로 마음이 착찹합니다.

 

형제님은 "우리에게 맞는 신학"을 추구하고 계신듯 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려주신 진리까지 희생시켜가며

 

만들어낸 "우리의 신학"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형제님께서 ’우리신학연구소’ 방명록에 글을 남긴 이승국씨와

 

부디 같은 분이 아니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형제님의 마음에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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