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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1: 대림 제1주일 - 깨어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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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2-01 ㅣ No.47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 대림 제1주일 - 깨어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행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기다림



평화신문은 이번 호부터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의 주요 내용을 가능한 한 그 주일 혹은 그 주간 교회 전례력의 주제와 흐름에 맞춰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신앙의 해를 맞아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담고 있는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하기를 널리 권장하는 교회 가르침에 부응해 새롭게 시도하는 이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펴낸 우리말 「가톨릭교회교리서」. 보편 교회는 신앙의 해를 맞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새롭게 편찬된 「가톨릭교회교리서」를 공부하고 믿음의 활력을 되찾기를 당부하고 있다.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대림시기 전례의 전체 주제가 기다림이지만 그 중에서도 대림 제1주일에는 '깨어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강조됩니다.


◇ 살펴봅시다

㉠ 기다림 : 기다림이란 말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기다린다는 것은 누군가를 혹은 뭔가를 추구하고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갈망합니다.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갈망합니다. 하지만 행복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 있음을 체험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행복을 갈망합니다. 교회는 그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27항)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끊임없이 진리와 행복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께 창조됐기 때문"(27항)이라고 봅니다.

둘째, 기다린다는 말에는 '찾아온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기다림은 '찾아옴'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이 추구하는 참 행복의 근원, 진리 자체이신 분, 곧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신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을 찾고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자유로이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세상에 드러내시고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알려주시는 것, 이를 계시(啓示)라고 부릅니다. 대림시기의 기다림은 인간을 찾아 만나러 오시는 이 계시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셋째, 기다린다는 것은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희망을 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기인 대림시기는 희망의 시기입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희망의 삶입니다. 희망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덕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이 희망을 거스르는 죄가 바로 절망입니다. "절망은 하느님의 선함과 의로움과 그분의 자비로움을 거스르는 것이다"(2091항). 자만 또한 희망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자만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늘의 도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는 형태도 있고, 회개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용서를 얻고 공로 없이도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를 과신하는 형태도 있다"(2092항).
 
㉡ 깨어 기도함 : 기다리는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참으로 기다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깨어 있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2613, 2863항). 다른 하나는 사고 방식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성과 과학을 통해서 검증되는 것만이 참되다는 생각"이나, "생산과 효용성의 가치만을 높이 평가하는… '이 세상의'사고 방식에 정면으로 맞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2727항).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기도는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2590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들어 높이고 하느님의 은혜를 청하는 것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기도의 초석"입니다.

하느님을 향하도록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을 갈망하지만 하느님께서도 또한 끊임없이 인간을 부르시며 당신 자신을 내어주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호소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호소가 만나는 것입니다."기도는 하느님의 목마름과 우리 목마름의 만남"(2560항)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하느님을 향해 있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맙니다.

대림시기는 이처럼 우리 마음을 하느님 향해 들어 높이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그분 메시아를 깨어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 새겨둡시다

㉠ 인간은 하느님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31~38항)

- 우리는 세계를 통해서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의 운동과 변화, 우연,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통해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인간을 통해서도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열린 마음, 선에 대한 감각, 자유와 양심의 소리, 무한과 행복에 대한 갈망 등을 통해 그 근원이신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 인간은 타고난 이성적 능력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인간은 감각, 상상력의 충동, 원죄에서 비롯하는 그릇된 욕망들로 진리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 있기에 이성적으로 접근 가능한 종교적 윤리적 진리들도 현재의 인간 조건에서 더 쉽게, 확실히, 오류 없이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 계시의 빛이 필요합니다.

㉡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39~43항)

- 인간은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을 지니기에 하느님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들은 하느님과 어떤 유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지닌 다양한 진(眞)ㆍ선(善)ㆍ미(美)는 하느님의 절대적이고 무한한 진ㆍ선ㆍ미를 반영합니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 13,5).

- 하지만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인간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언어가 지니는 한계와 상상과 불완전성을 끊임없이 정화해야 합니다. 인간의 말은 언제나 하느님 신비에 미치지 못합니다.


◇ 생각해 봅시다

- 나는 하느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내가 기다리는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인가?

- 나는 희망하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체념하고 절망하거나 반대로 오만함에 사로잡혀 살아가는가?

※ ( ) 안의 숫자는 「가톨릭교회교리서」의 해당 항목입니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2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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