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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명, 왜 프란치스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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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18 ㅣ No.249

[새 교황 프란치스코] 새 교황명, 왜 프란치스코일까?

현시대 만연한 갈등 · 분쟁 대신 평화 · 청빈의 삶에 대한 의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염두에 둔 것이다.

프란치스코회와 글라라회를 설립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청빈하고 소박한 삶, 평화의 전교자로 유명하다. 온갖 몰이해와 편견이 난무하고, 대화와 화해보다는 분쟁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는 오늘날 세계 상황, 교회 안에서조차 의견과 견해의 차이가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대 세계에서 가톨릭교회를 이끌어갈 교황은 평화와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살았던 프란치스코의 이상이 간절하게 요청되는 것으로 보인다.

고위 성직자로서 스스로 소박한 삶의 표양을 보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재위 기간에도 여전히 이어질 이러한 청빈과 평화의 삶,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자신의 교황명 ‘프란치스코’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동정심도 많았다. 1202년 아시시와 페루자의 전쟁에서 포로가 돼 1년 만에 풀려난 그는 병상에 앓아누웠는데 이 기간에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회개의 삶을 살아갔다.

그는 자신을 회개자로만 여기지 않고 평화의 전도자로도 여겼다. 그는 수도원 안에서만 설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평화를 전했다. 늘 평화 안에 머물었던 그는 설교하지 않아도 그 모습 자체로 설교가 됐다고 전해진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는 소박한 삶에서 드러났다. 그를 가난의 극점에 도달하게 한 동기는 오직 그리스도뿐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가난과 복음 전파에 대한 계시로 알아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것을 누차 강조하며 지상선(至上善)이며 사랑인 가난의 극점을 체험했다.

그리스도를 그대로 닮고자 열망했던 그는 죽음을 2년 앞둔 1224년 라 베르나 산에서 오상을 받았다. 생전에도 이미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받던 그는 1228년 7월 16일 시성, 현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대성당에 안치돼 있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18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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