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변호인’을 넘어서야 산다

인쇄

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4-01-02 ㅣ No.10121

 

영화 ‘변호인’의 흥행 돌풍이 매섭다. 개봉한 지 14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해가 바뀌어도 그 기세는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이런 추세라면 1000만 고지 달성도 머지않을 태세다.

영화는 1980년대 초 부산에서 한 세무변호사가 ‘부림(부산 학림)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배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런 판에 정치권 인사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특히 ‘노무현 후광’을 노리는 범야권 인사들의 호평은 줄을 잇고 있다.

당시 부림 사건 연루자들은 “전두환 정권 시절 벌어진 고문에 의한 용공조작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중에 이 사건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보수 인사들은 “용공조작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변호인’의 배경이 된 부림 사건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변호인 열풍을 바라보는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의 발언은 지나칠 수 없다.

친노의 맏형 격인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부림 사건이 발생한 1980년대와 비교해 지금의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에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 ‘일종의 공작’이라고 개탄했다.

문 의원의 메시지는 30년 전과 지금 상황이 거의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반민주적 정권이라는 민주당의 정치 공세와 맥이 닿아 있다. 야권은 민주화 세력이니, 근본적으로 ‘민주 대 반(反)민주’ 프레임 전쟁이다. 그래서 ‘야권은 선(善)’이고 ‘박근혜 정부는 악(惡)’이라는 도식이 나온다.

친노 진영이 이제 와서 노무현 바람에 기댄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다. 여권이 한때 박정희 마케팅을 했듯이 정치 세력이라면 정치 마케팅의 한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다. 노무현 바람은 친노 세력을 정치적으로 부활시킨 동인(動因)이었다. 2007년 대선 패배 직후 친노는 폐족(廢族)을 자처했다. 친노가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부활한 배경에 노무현 1주기가 상당한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바람 덕분에 친노는 민주당을 사실상 접수할 수 있었다.

친노가 부활하면서 노무현 정신은 실종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다. 친노 진영은 야권연대라는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달려 노무현 정부가 역점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등 핵심 정책을 뒤집는 데 앞장섰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 파업이라고 비난했던 문재인 의원이 이번엔 그 파업을 옹호하는 장면은 정책 뒤집기의 ‘완결판’으로 비쳤다. 야권 주변에선 “도대체 누가 ‘원조 친노’이고 반노, 비노인지 헷갈린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올 정도다.

친노 인사들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넘어서자”고 외쳤다. 친노의 울타리는 강했지만 표의 확장성이 떨어지는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쇄신과 개혁은 철저히 외면했다. 이불 뒤집어쓰고 만세 부르는 식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했다.

‘변호인’ 흥행 돌풍은 친노에 분명히 또 하나의 기회이면서 위기가 될 수도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이면 세 번이나 바뀔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30년 전 억압적인 정치 지형을 지금 상황에 대입한다고 해서 친노의 지난 이력이 모두 정당화될 수 없다.

연민과 분노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친노는 영화 변호인을 넘어서야 산다. 이제 해가 바뀌었다.

 jyw11@donga.com

 



129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