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가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성경 용어 Cor/heart는 심장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가성체성혈대축일> 1032_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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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2 ㅣ No.2062

[내용 보강 일자: 2023년 6월 8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2.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SFMs/a_corpus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66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6월 8일자 내용 보강 끝]  

 

 

가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8/가해성체성혈대축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하십시오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2.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가해성체성혈대축일> 가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신명기 8,2-3.14ㄴ-16ㄱ; 요한 복음서 6,51-58; 1코린토 10,16-17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corpus.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Manna, bread (flesh) and wine (blood) are words abundantly used this Sunday when we celebrate the solemnity of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According to Deuteronomy (first reading), Moses says to the people: "Yahweh your God … fed you with manna which neither you nor your fathers had known." Jesus says in the Gospel: "I am the living bread which has come down from heaven. Anyone who eats this bread will live for ever; and the bread that I shall give is my flesh, for the life of the world." For his part, Paul tells the Corinthians in his First Letter to them: "the bread that we break is a communion with the body of Christ" (second reading).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만나(manna), 빵()포도주()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경축할 때인 바로 이 주일에 넘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입니다. 신명기에 따르면(제1독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들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이다." 바오로는, 자신의 견해로, 코린토인들에게 자신의 첫 번째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제2독서).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A. 오늘의 제1독서, 복음 말씀, 그리고 제2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corpus.htm  

 

B.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13-25쪽

 

입문: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Feast of Corpus Christi)은 성체(Eucharist)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공경하기 위하여 제정된 교리적 축일이다. 이 대축일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성체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 신앙(faith), 그리고 경건한 정성/건성(虔誠, devotion)을 가르치는 데에 있다. 이 대축일의 경축은 13세기 및 14세기 동안 서서히 발전되었다. [프랑스 토우르스 지역의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 999-1088년, Berengar of Tours)의 이름을 따라 불리는] 11세기 중엽의 베렌가리우스 이단은 성체가 단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figure)고 가르쳤다. 13세기까지는 영성체(reception of communion, 즉,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가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고 어느 정도까지는 단지 제병(Host, 祭餠)을 뵙는 정도로써 영성체를 대신하게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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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병(host, hostia)’은 희생의 제물(victim),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희생 제물로 간주되는 성체성사의 축성된 빵을 말한다. 이 단어는 또한 ‘성찬례 용도의 빵’, 즉 축성을 위하여 사용되는 둥근 모양의 웨이퍼(wafers)들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위의 본문 중에서는 ‘Host’에서 대문자를 사용하였으므로, ‘(축성된) 거룩한 제병’, 즉 ‘성체(Body)’를 뜻한다.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라:

   참고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r_host.htm (영어 가톨릭 사전)
   참고 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r_hostia.htm (영어 가톨릭 사전)
   참고 자료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e_host.htm (영어 가톨릭 백과사전)
   참고 자료 4: http://ch.catholic.or.kr/pundang/4/summa/4073.htm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참고 자료 5: http://ch.catholic.or.kr/pundang/4/info/hostia.htm (우리말 가톨릭 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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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년에 프랑스 리에제 지역의 율리아나(Juliana of Liege)는 성체성사를 위한 축일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환시를 보았다. 상당한 설득이 있은 후에 이 축일은 1247년에 처음으로 경축되었으며, 그리고 우르바노 4세 교황은 1264년에 이 축일을 보편교회(Universal Church)의 축일로 확장하였다. 비록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위한 미사 예식서(Mass)와 성무일도(office)는 당시에 우르바노 4세의 교황청(Papal court)의 구성원이었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에 의하여 작성되었다는 신뢰할 수 있는 증거는 있으나,(*2) 요즈음 사용되고 있는 성무일도가 그의 문장(pen)으로부터인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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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참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t/thomas_aquina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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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은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첫 목요일 혹은 주일에 지내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일에 지내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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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info/mass2005_05_2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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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제1독서: 신명기 8,2-3.14ㄴ-16ㄱ: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40년간의 방랑이 끝나갈 무렵에, 모압 평원(the plains of Moab)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제 죽음이 임박한 모세(Moses)에게 시나이 산(Mount Sinai)에서 계시를 통하여 그가 받았던 율법(Law, 즉 시나이 율법)을 다시 한 번 선포하는 임무를 부여하셨다. 이 선포는, 히브리어로 하데브 하림[had-deb harim(the words)]으로 불리고 또 칠십인 역 구약성경(Septuagint)에서는 듀트로노미온[deuteronomion(second law)]으로 불리는, 모세 5경(Pentateuch)의 다섯 번째이며 마지막 책인 신명기(Deuteronomy)에 포함되어 있다. 모세는,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이 시작되었을 때에 모두가 스무 살이 되지 않았을,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세대에게 연설하는 중이다. 시나이 율법을 이들이 다시 읽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세대와 맺어진 것임을 말씀하고 계신다(신명기 29,13-14): 이 계약은 영원히 지속되는 계약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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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참고: 이 선포와 관련된 전후 내용은 또한 이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9주일 제1독서(신명기 5,12-15) 입문, 나해 연중 제26주일 제1독서(민수기 11,25-29) 입문, 그리고 다해 연중 제15주일 제1독서(신명기 30,10-14) 입문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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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0.htm

(발췌 시작)

참고 사항: 여호수아기 15,18에 등장하는 칼렙(Caleb)은 유다 지파의 여푼네의 아들로서, 민수기 13,6.30; 14,6-9.24.30.38; 26,65에 등장하는 칼렙, 즉 12지파의 수장들로서 가나안 땅으로 정찰을 나갔던 12명의 정찰대의 구성원이었던 유다 지파의 칼렙 그리고,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시기에, 이집트를 떠나 올 때에 20세 이상인 장정들 중에서 살아 있었던 두 명의 사람들(즉 여호수아와 칼렙) 중의 한 명인 칼렙과 동일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칼렙에 대한 라삐 문헌(Rabbinical Literature)의 설명은 다음의 "유다 백과사전(Jewish Encyclopedia)"에 있으니 또한 참고하도록 하십시오:
http://www.jewishencyclopedia.com/view.jsp?artid=41&letter=C&search=Caleb
 
그리고 다음의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칼렙에 대한 설명 (제1항)을 또한 참고하십시오:
http://www.newadvent.org/cathen/03157a.htm
(이상, 발췌 끝)

 

젖과_꿀이_흐르는_땅을_바라보는_사해_동부_북쪽_끝_느보산_정상에_있는_서쪽을_바라보는_방향판_fixedw_large_4x.jpg

출처: https://www.trover.com/d/1RKh0-mount-nebo-madaba-jordan 

 

게시자 주: 바로 위의 사진을 클릭하면, PC의 화면에서, 방향판에 주어진 설명들이 제공하는 정보들이 크게 확대된 사진을 새 창에서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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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6271.JPG 

 

게시자 주: 위의 사진들은, 파노라마 사진 효과를 내고자,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영역을 분할하여, 이스라엘 성지순례 중 2009년 7월 12일에, 필자가 찍은 사진들입니다. 첫 번째 및 두 번째 사진들에 사헤(Dead Sea)가 보입니다.

 

DSC06274.JPG 

 

게시자 주: 필자가 찍은 젖과_꿀이_흐르는_땅을_바라보는_사해_동부_북쪽_끝_느보산_정상에_있는_서쪽을_바라보는_방향판 사진. 당시에 필자가 방향판을 담으면서 사해가 보이도록 각도를 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느보산_서쪽_지도_from_Google_maps.jpg 

 

게시자 주: 바로 위의 사진을 클릭하면, PC의 화면에서, 오른쪽 중간 부분에 주황색 표지가 된, 모세가 올라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바라본 그리고 모세가 묻혔다고 알려진, 느보 산과 그 서쪽 지역의 지형 지물을 담은 지도를 크게 확대하여 볼 수 있으며, 아래에 발췌된 바는 이 지도의 약도입니다. 특히, (i) 예루살렘, (ii) 꿈란 공동체, 그리고 (iii) 느보 산이, 순서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거의 일직선 상에 위치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814 [주: 옛 주소]

출처 2: https://terrasanta.tistory.com/17464814 [2023-12-27; 새 주소]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루살렘에서 수도 생활을 하고 계시는 작은형제회(프란체스코회)의 김상원 테오필로 수사 신부님의 느보 산 관련 자세한 성경 및 역사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7월 9일]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신명기에서 말하는 모압 평원이 사해 동쪽 및 느보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SinPenExodusHR.htm

(발췌 시작)

SinPenExodusHR.jpg

(이상, 발췌 끝) 

[이상, 2022년 7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오늘 제1독서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기(appreciate) 위하여 우리는 신명기 제8장 전부를 읽을 것이다.

1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계명을 명심하여 실천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살 수 있고 번성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며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도출하고 있다. 하느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라는 주제들과 함께 하느님께서는 과거의 광야에서의 경험을 이스라엘의 교만을 꺾고 또 이스라엘을 시험하는 용도로 사용하신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만나(manna) 이야기(탈출기 16, 민수기 11,16-23)에 대한 일종의 설교(homiletic)로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4  이 사십 년 동안 너희 몸에 걸친 옷이 해진 적이 없고, 너희 발이 부르튼 적이 없다. 5  너희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단련시키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단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아 두어야 한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 7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좋은 땅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곳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샘이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는 지하수가 솟아나오는 땅이다. 8  또 보리포도주무화과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 기름이 나는 땅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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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여기 신명기 8,8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특산 농작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꿀’은, ‘벌꿀’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대추야자나무 열매’(dates)를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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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곳은 너희가 모자람 없이 양식을 먹을 수 있고,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땅이며, 돌이 곧 쇠이고,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이다. 10  너희는 배불리 먹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좋은 땅 때문에 그분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 11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계명과 법규와 규정들을 지키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2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들을 짓고 살게 될 때, 13  또 너희 소 떼와 양 떼가 불어나고 너희에게 은과 금이 많이 생기며,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이 불어날 때, 14  너희 마음이 교만해져,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15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사랍(seraph, 세라프)’이라는 이름은 ‘불타는(fiery)’을 뜻한다. 사랍들(seraphim, 세라핌)(세라핌은 세라프의 복수로서 하느님의 열렬한 사랑에 가장 가까운 최상 등급의 천사들)은 성경 다른 곳에서 날개가 달린 뱀들로 묘사되고 있다(이사야 6,1-7; 14,29; 30,6). 전갈들과 관련지음은 이들에게 쏘였을 때의 결과를 생각나게 한다(suggest).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6) 16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그것은 너희를 낮추고 시험하셔서 뒷날에 너희가 잘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가 기억상실증(amnesia)의 위험에 대하여 어떻게 경고하고 있는지에 유의하고 또, 선량한 역사적 기억과 함께,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회 윤리(ethic)가 어떻게 따라올 것인지에 대하여 유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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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위’(Rock)는 하느님의 이름들 중의 하나이며, 이 구절은 1코린토 10,4에서 성 바오로에 의하여 약간 변형된 형태로 언급되고 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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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너희는 마음속으로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산을 마련하였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18  그러나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그분은 오늘 이처럼,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계약을 이루시려고, 너희가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19  만일 너희가 정녕 주 너희 하느님을 잊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경배한다면, 내가 오늘 분명히 경고하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20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처럼 너희도 멸망할 것이다.” 

 

 

오늘의 복음 말씀: 요한 복음서 6,51-58: (*7)

 

 

          오늘 복음 말씀의 시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약 일 년 전이다. 성경에는 세 번의 파스카 축제(Passover, 과월절) 기간들이 언급되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요한 복음서에 나타난다:


          1. 요한 복음서 2,13-22: 가나의 혼인잔치 직후에 성전의 정화.
          2. 요한 복음서 6,4: 이 생명의 빵의 드러남 바로 이전에,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심과 함께, 오천 명을 먹이심.  
          3. 요한 복음서 11,55: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마태오 복음서 및 루카 복음서 또한 이 사건 이전에 기적의 치유들, 악마를 내쫓으심, 그리고 사천 명을 먹이심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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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늘의 복음 말씀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연중 제20주일 복음 말씀과 동일하고 그리고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요한 6,52-59)와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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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생명의 빵(bread of life)’으로 밝히시는 세 번째 구절이다(다른 두 번은 제 35절 및 48절에 있다). 히브리 수비학(Hebrew numerology)에서 3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완화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으신다. 이 구절은, 상징적(figurative)이거나 혹은 비유적인(metaphorical) 표현이 아닌, 예수님께서 납득을 시키고자(drive home) 하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성체성사의 주제(Eucharistic theme)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이제 이 신비는 드러났다(또한 히브리 10,5-10을 보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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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또한 다음의 히브리서 구절들과 거기서 인용되고 있는 칠십인역 구약 성경의 근거 구절들뿐만이 아니라,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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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대다수의 청중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완미하게(perfectly) 잘 이해하였으며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뜻하고 계심을 이해하였으나,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을 먹으라면서 그들에게 어떻게 내어주실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당신의 팔을 잘라서 나누어 주시기라도 하시겠다는 것일까? 다른 이들은 아마도 ‘어떤 사람의 살을 먹는다’는 표현이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slander) 것(시편 27,2)을 의미하였던 셈어(Semitic)의 수사적 표현(figure of speech) 때문에 헷갈리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예수님을 은유적, 비유적 혹은 상징적 감각으로 이해하였다면, 그들이 말다툼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니코데모(Nicodemus)가 다시 태어난 것을 단순히 신체적인 감각 안에서 생각하였듯이(요한 복음서 3,4), 그리고 야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단지 자연의 생수(natural water)를 생각하였듯이(요한 복음서 4,11), 이제 유다인들은 이 언급을 글자 그대로 예수님의 살로 이해한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기도를 아멘으로 끝내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하신다. 아멘은 ‘진실로’, ‘그리되게 해 주시옵소서(so be it)’, ‘나는 정말 믿습니다’를 뜻한다. 이 구절에서 갑절의 거룩한 아멘(doubled Amen)은 엄숙한 확언인 하나의 서약이다. 신뢰할 수 있는 참된 목격자(witness)는, 거룩한 아멘(요한 묵시록 3,14)이신, 예수님이시다. 어떤 사람에게 사형을 언도하려면 두 명의 목격자들이 요구되므로(신명기 17,6),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금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삶과 죽음에 관계되는 결과들을 가져올 것임에 대한 목격자들 그리고 이것을 그들에게 경고하는 것, 이들 둘 다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지는 중이시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청중들에게 이것이 삶과 죽음이 달린 상황임을 상기시킨 네 번째 시점(time)이다(제26, 32, 47, 53절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사람의 아들’(다니엘 7,13)은, 새 아담(New Adam)으로서 부활을 성취하실(effect) 분이신(에제키엘 37)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에게 적용한 용어임을 상기하라. 예수님의 말씀들은, 당신의 선언(pronouncement)에 대하여 비유적인 이해를 조장하는(encourage) 것이 아니라, 오직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강조할 뿐이다. ‘먹다(eat)’ 동사를 위하여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fag-o)이다. 이 글자의 중요성은 아래의 제54절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만약에 어떤 사람의 살을 먹는다는 생각이 비위에 맞지 않다면, 그들의 피를 마시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다인 관중들에게 있어 이것은 더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율법에 의하여 피는 금지된 음식으로서(레위기 7,27; 17,10-14), 그에 대한 형벌은 부족으로부터의 추방이었다. 피를 마시는 자들은 쫓겨날 것이다(excommunicated). ‘살과 피’는 생명에 대한 통상적인 구약 성경의 표현이다. 이들 두 개가 분리되면, 죽음이 그 결과로 온다. 이들 둘 다를 먹음으로써,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같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분명하다.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죽은 자는 영혼이 없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먹다’ 동사를 위하여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τρ.Ò.γο(tro'-go)의 자구적 의미는 단지 간단히 ‘먹다(eat)’를 의미하는 동사보다 훨씬 더 강하다.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씹다(chew)’, ‘물어 끊다(gnaw)’를 뜻한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말씀 중인 것이 실제로 음식임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상징적으로 말씀 중이라는 소리를 할 여지는 이제 전혀 없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반복하셨을 뿐만이 아니라, 그 말씀을 강화시키셨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장. 만약에 예수님께서 상징적으로 말씀 중이셨더라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명예를 훼손하거나(slander) 아니면 영원한 저주의 고통을 당하라고 명령하는 중이셨을 것이다.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언약(pledge)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만약에 이전에 어떠한 의문들이라도 있기나 하였더라면, 예수님께서 전적으로 글자 그대로 말씀 중이시라는 것에 대한 의문은 이제 있을 수가 없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다시 한 번 먹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강한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네 개의 절(verses)로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반드시 당신의 살을 먹고 또 당신의 피를 마셔야함을 말씀하셨던 네 번째 시점이다(제51, 53, 54, 56절들). 히브리 수비학에서 숫자 4는 온전히 그대로의 이 세상을 나타낸다[네 개의 방위(winds, 方位)들, 네 개의 방위기점(cardinal points)들]. 성체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 전체에 주신 선물이다. 이런 신속한 네 절의 반복으로써, “‘먹고’ ‘마심’의 어느 부분을 너희들이 이해하지 못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중이신 것과 거의 같다. 하느님께서는 어리석은 분이 아니시기에, 청중들이 예수님을 잘못 이해하자,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오해를 즉시 바로잡으신다[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다시 태어남(born again)’에 대한 니코데모(Nicodemus)의 이해를 바로잡으시고 또 그것이 신체적으로 거듭남(rebirth)이 아니라 세례를 통하여 영적으로 거듭남임을 설명하시는, 요한 복음서 3,3-6을 보라]. 여기서는, 아무런 오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잡음이 전혀 있지도 않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이 구절은 계약에 대한 비유적 묘사(covenant imagery)이다. 사람들이 한 개의 공통 계약(common covenant)에 의하여 엮이었을 때, 그들은 같은 가족의 구성원이다. 한 개인이 피를 마심으로 인하여 그가 속한 부족으로부터 추방될 것이지만,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훨씬 더 크고 또 더 중요한 가족인,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게 된다. 예수님의 몸을 먹고 또 예수님의 피를 마심으로써, 그들은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가족 음식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 15,4는 이 구절과 같은 계약에 대한 비유적 묘사를 활용하고 있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성부께서는 어떤 종류의 삶을 영위하고 계실까? 영적이고 불멸의 삶인데, 이것은 하느님께서는 죽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성부와 성자는 하나인데(요한 복음서 14,10-11; 5,21-24), 이것은 이 분들이 성령과 삶을 함께하시기 때문이다(요한 복음서 1,32; 15,26). 이 분들은 공통의 결합[common union(communion), 통공, 하나 됨]이다.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함께 나눌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하나 됨(a communion with Christ)을 함께 나누는 자들이다(1코린토 10,16). 어떻게,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바로 이 통공이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 공동체와 함께 나누어지게 될까? 각 가족이 식사를 함께 함으로써 한 가족이라는 공감대를 나누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공통의 식사(common meal)인 성체(Eucharist)를 함께 나눔으로써 이 통공을 함께 나누게 된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참 생명의 빵인 당신 자신의 몸과 그들의 40년이라는 방황의 기간 동안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던 바로 그 만나(manna)와 비교하시는 이 설교에서 세 번째 시점이다(제31, 32, 49절들). 그 빵은 단지 엷은 형태의, 생명의 성사인(sacrament of life), 거룩한 성체(Eucharist)이었다. 만나가 그들의 생명을 40년 동안 지탱해 주었다면, 거룩한 성체는 그들의 생명을 만세(all eternity, 萬世)에 걸쳐 지탱해 줄 것이다.

 

 

오늘의 제2독서 1코린토 10,16-17:

 

 

          성 바오로는 그의 두 번째 전교여행 중에 코린토 지역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설립하였다(50-52년). 그는 일 년 반 동안, 실라스(Silas)와 티모테오(Timothy)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곳에서 복음을 설교하였다. 그가 코린토를 떠난 후에, 이 도시는 사도들과 친분이 있는 방문자(apostolic visitors)들 몇 명을 맞이하였다. 뛰어난 변론가인 아폴로(Apollos)(사도행전 18,24-26)가 바오로가 떠나고 나서 약 일 년 후에 도착하였다. 비록 기록이 되지는 않았으나, 이 시기 쯤에 베드로가 코린토를 잠깐 방문하였던 것 같다. 오늘의 제2독서를 발췌한 코린토 전서(즉, 1코린토)는 57년의 부활절 바로 직전에 쓰였으며 그리고 코린토인들이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 어떤 영역들에 대한 길잡이를 제시하고 있다. 바오로가 언급하고 있는 문제들 중의 하나는 사교적 동작(social gestures)들이다. 함께 희생제물을 나누어 먹는 것을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또 친교를 맺는다는 생각(idea)은 유다교(Judaism)와 그리스도교(Christianity)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신교(paganism)에서도 뿌리 깊었다(strong). 구약 성경 시절들에 있어, 유다인이 제물을 봉헌하였을 때에, 그가 반하여 죄를 지은 바로 그 하느님과 그와의 일치를 회복하기 위한 한 방식으로서 그는 이 희생제물의 일부분을 먹었다(신명기 12,17-18). 당시 코린토에는, 로마 황제에 대한 개인숭배를 위하여 봉헌된, 다양한 그리스 신(deities)들에게 봉헌된, 혹은 이집트 잡신(gods)들에게 봉헌된, 여러 신전(temples)들이 있었는데, 신전 연회(temple banquets)들에 참석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우상(idols)들을 숭배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나, 그러나 바오로는, 사교적 동작들을 하는 사람들의 속생각(intentions)들과는 무관하게, 그러한 사교적 동작들이 객관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비록 의도적인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받아들이고 또 숭배하는 모습을 그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그는 성찬례(Eucharist)를 일치를 위한 연회(banquet of unity)의 한 예로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돋보이게 한다. 가톨릭 그리스도인(Catholic Christians)들은, 그들이 성찬 전례(Liturgy of the Eucharist) 중에 거행되는 거룩한 영성체 예식(Holy Communion)에서 우리의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으로서 모든 희생 제물이 되심에 참여하게 된다.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성 바오로는 이렇게 공통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그의 주장을 시작한다. 코린토 지역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성체성사의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와 다른 믿는 이들이라는 두 개의 초점들을 가진 결합(unity)인, 하나 됨(communion, common union, 통공), 공통의 일치(shared-union)[그리스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를 도출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 이 구절에서 축복의 잔(cup of blessing)이 파스카 식사(Passover meal)의 세 번째 잔임에 주목하라.

 

“하느님의 말씀에 의하여 축성된, 제대에서 여러분이 보는 바로 그 빵이 그리스도의 성체이시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하여 축성된, 바로 그 잔이, 아니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그 잔 안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성혈이시다. 바로 그 빵과 포도주를 통하여,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죄들을 사하기 위하여 흘리셨던 당신의 성체와 성혈을 우리에게 맡기는 것을 유언으로 명하셨다(willed). 만약에 여러분이 (성체와 성혈을) 가치 있게 받아 모셨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아 모신 것 바로 (성체와 성혈) 그 자체이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aint Augustine of Hippo, 391년경), Easter Sunday Homily, 227].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생명의 원천(life-source)인 그리스도의 성체를 나눔으로써,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데(constitute), 이들의 다양함은 이 몸이 하나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축성된 빵은 한 덩어리의 빵을 구성하는데(constitutes),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몸, 거룩한 피, 거룩한 영혼(Soul) 및 신성(Divinity)으로] 완전히 각 부분(piece)에 현존하시어 그 결과 모두가 한 덩어리의 빵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거룩한 빵(Bread)이 하나이므로, 다수인 우리는 하나의 몸 안에 있다.’ ‘왜 나는 “하나 됨(communion, common union, 통공)”을 말하는가?’ 바오로가 말하기를,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그 거룩한 몸(Body)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빵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다! 여러 개의 몸들이 아니라, 단 하나의 거룩한 몸이다. 이것은 많은 알곡식들로 구성된 빵이 하나로 만들어지듯이, 그리고 알곡식들은 이미 분명하지 않으나, 그들의 결합에 있어 그들 간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 하더라도 여전히 거기에 있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하나의 거룩한 몸에 의하여 자라게 되는(nourished) 동안에 그대가 또 다른 하나의 거룩한 몸에 의하여 자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가 같은 하나의 거룩한 몸에 의하여 자라게 되기 때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aint John Chrysostom, 392년),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24,2(4)].

 

“그대가 제대(altar)에 누워계시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볼 때, 그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 ‘이 거룩한 몸 때문에 나는 이미 흙과 재가 아니고, 이미 죄인이 아니며, 자유로워졌다. 이 거룩한 몸 때문에 나는 하늘/천당(heaven)을 희망하며, 그리고 나는 하늘/천당(heaven)에 있는 좋은 것들, 영원한 생명, 많은 천사들, 그리스도와의 친숙한 대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희망한다.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형을 당한 이 거룩한 몸은 죽음에 의하여 불리어 가게 된(fetched by death) 적이 없었다. ... 이것은 피로 얼룩졌고, 창으로 찔렸던,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는 피이고 다른 하나는 물인, 구원의 샘물들이 세차게 흘러 나왔던, 바로 그 거룩한 몸이다.’ ... 이것은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앞으로도 남겨두어 보관하면서(hold in reserve) 먹게 될, 열렬한 사랑(burning love)에 적합하였던 바로 그 거룩한 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껏(with abandon) 입을 맞추는 분들을 우리는 심지어 가끔은 이빨로 깨물기 때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aint John Chrysostom, 392년), Homilies 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24,4(7)].

 

자매 독서(companion reading)로서, 1코린토 11,23-30을 보라.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C.  16세기 중반에 그리스도교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초판 발행된 "트리엔트 교리서"는, 13세기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마련되고 출판되어 13세기와 14세기에 걸쳐 널리 사용되었던 "교리 교육 치짐들"(The Catechical Instructions)의  문답식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발췌 시작)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한 교리서[주: 통상적으로 "트리엔트 교리서" 혹은 "로마 교리서"로 불림]의 발간을 제안하셨고 또 그 초안을 마련하신 것으로 알려진 성 가를로 보로메오 대주교/추기경님께서는, 13세기와 14세기의 시기에 걸쳐 널리 사용되었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술인 "교리 교육 지침들(The Catechical Instructions)"에 근거하여, 이 로마 교리서의 초안을 마련하셨던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의 글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1: http://www.intratext.com/IXT/ENG0029/__P5.HTM
출처 2: http://www.intratext.com/IXT/ENG0029/
출처 3: http://www.ewtn.com/library/indexes/SOURCES.htm

(발췌 시작)
ST. THOMAS IN THE HISTORY OF CATECHETICS

교리 교수학의 역사에 있어 성 토마스

 
The original and traditional meaning of "catechesis" (from the Greek: teaching by word of mouth) was oral teaching or instruction by word. It is used in this sense in the New Testament (e.g., in Luke i. 4; Acts, xviii. 25). "Catechetical" referred solely to this form of oral explanation of Christian Doctrine. This is the meaning that "catechetical instruction" had in the time of St. Thomas and throughout the Middle Ages. 12 "In this
connection," says one authority, "it must be remembered that the term 'catechetical' was very often applied to sermons and instructions for grown people, not for children." 13 The conception of "catechetical" and "catehism" as referring to the question and answer method of teaching became general only during the Counter-Reformation. Thus, St. Augustine's classic work on teaching religion, "De rudibus catechizandis" (On Instructing the Ignorant), is straight exposition without question and answers. The famed "Roman Catechism" (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is not in question and answer form. Hence, the catechetical instructions of St. Thomas, which are oral explanations of Christian Doctrine, entitle him to a place in the history of catechetics with St. Augustine, Gerson, St. Charles Borromeo, St. Peter Canisius and others. 14
 
The method of explaining Christian Doctrine by giving detailed attention to the Creed, the Commandments, the Our Father and Hail Mary, goes back to the early centuries of the Church. One of the first great works which embody this fourfold division is the "Catechetical Instructions" of St. Cyril of Jerusalem (d. 386). This division became general throughout the medieval period, and the "Creed, Code, Sacraments and Prayer" came to be a formula of the faith. Numerous Synods and Councils of the Church at this time decreed that sermons and instructions must be given the faithful according to this fourfold division. 15 The "Roman Catechism" follows this arrangement, as do most of the Catechisms of modern times.
 
The catechetical instructions of St. Thomas were used generally throughoutthe thirteenth and fourteenth centuries as manuals and text-books forpriests and teachers of religion. 16 "The Explanations of St. Thomas," wrote Spirago, "are remarkable for their conciseness and their simplicity of language; they are especially noteworthy because the main parts of thecatechetical course of instruction are brought into connection with oneanother so that they appear as one harmonious whole." 17 The influence of these works is especially prominent in the "Roman Catechism" which the Council of Trent ordered written for parish priests and for all teachers of religion. Many of the explanatory passages in both works are almost identical.

성 토마스(St. Thomas)교리 교육 지침들(the catechetical instructions)은 사제들과 종교 교사(teachers of religion)들의 소책자(manuals)들 및 교재(text-books)들로서 13세기 및 14세기에 걸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6 Spirago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성 토마스의 설명들은 그들의 간명함(conciseness) 그리고 그들의 단체성(單體性, simplicity) 때문에 두드러지며, 그리고 그들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데 왜냐하면 교육(instruction)에 있어서의 교리 교듁 과정의 주된 부분들이 서로 서로와의 관련 안쪽으로 정렬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한 개의 조화로운 전체로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17 이러한 일들의 영향은,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 1545-1563년)가 본당 사제들을 위하여 그리고 종교 교사들 모두를 위하여 저술될 것을 명령하였던, "로마 교리서(Roman Catechism)"에서 특별히 현저합니다(prominent). 이들 둘 다의 저술들에 있는 설명 구절들 중의 대다수는 거의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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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By the catechism of St. Thomas is generally understood his explanationof the Apostles' Creed, the Lord's Prayer, the Hail Mary, and the Decalogue" (Gatterer-Kruz, "The Theory and Practice of the Catechism,"
1914, p. 47).

13. Spirago-Messmer, "Spirago's Method of Christian Doctrine" (1901), 508.

14. John Gerson, the saintly chancellor of the University of Paris, wrote "On Leading the Little Ones to Christ" in the early fifteenth century. St. Charles Borromeo, Archbishop of Milan, was one of the founders of the Confraternity of Christian Doctrine and one of the authors of the Roman Catechism. St. Peter Canisius, the great Jesuit teacher of religion in the Counter-Reformation, wrote the well-known Canisian Catechisms.

15. Cf. Callan-McHugh, "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Introduction,
xiv and xvi. See also Spirago Messmer, "op. cit.," 507.

16. Spirago-Messmer, "op. cit.," 513-514.

17. "Ibid."
(이상 발췌 끝).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C: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교리 교육 지침들", 일곱 성사들: 복습 (THE SEVEN SACRAMENTS: A REVIEW)에서 성체성사에 대한 기술을 발췌한 것인데,

 

출처: http://www.intratext.com/IXT/ENG0029/__P1A.HTM 

(발췌 시작)

"Holy Eucharist." - The Eucharist is the third Sacrament. In the physical life, after man is born and acquires powers, he needs food to sustain and strengthen him. Likewise in the spiritual life, after being fortified, he has need of spiritual food; this is the Body of Christ: "Except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shall not have life in you "8 According to the prescribed law of the Church, therefore, every Christian must at least once a year receive the Body of Christ, and in a worthy manner and with a clean conscience: "For he that eateth and drinketh unworthily [that is, by being conscious of unconfessed mortal sin on his soul, or with no intent to abstain from it] eateth and drinketh judgment to himself."9

(이상, 발췌 끝)

 

바로 아래의 제D항에 안내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사도신경 해설", 제10항. 성인들의 통공, 죄들의 용서(10.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중의 "성체성사"에 대한 기술과 정확하게 동일함에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s://isidore.co/aquinas/Creed.htm#10 

(발췌 시작)

“Holy Eucharist.”—The Eucharist is the third Sacrament. In the physical life, after man is born and acquires powers, he needs food to sustain and strengthen him. Likewise in the spiritual life, after being fortified, he has need of spiritual food; this is the Body of Christ: “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shall not have life in you “[Jn 6:54]. According to the prescribed law of the Church, therefore, every Christian must at least once a year receive the Body of Christ, and in a worthy manner and with a clean conscience: “For he who eats and drinks unworthily [that is, by being conscious of unconfessed mortal sin on his soul, or with no intent to abstain from it] eats and drinks judgment to himself” [1 Cor 11:29].

(이상, 발췌 끝)

 

D. 그리스도교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에서 인용하고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사도신경 해설"에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84.htm 

(발췌 시작)

3.
사실 가톨릭 교회의 일곱성사들에 대한 가르침들이, 예를 들어, 16세기의 어느 시점에 와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번 항에서는 이에 대하여 간략하게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54.htm [2012년 9월 12일자 졸글]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3-1. 다음은, 교회의 라틴 교부들 중의 첫 번째 교부인 리옹의 성 이레네오(130-200년)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이 개념을 필요 조건으로서 만족시키는, 그가 가르친 가르침들로서, 가톨릭 보편 교회가 이미 수용한 내용들 중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몇 개들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saint/view.asp?ctxtSaintId=2250&Orggubun=101

[출처 추가 일자: 2017년 3월 22일]

출처 1: http://www.mariasarang.net/saint_bbs/bbs_view.asp?index=bbs_saint&page=57&no=1888

출처 2: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5&id=69547&mwtype=S&menu=chtangsan19

출처 3: http://zine.cbck.or.kr/gallery/view.asp?seq=214430&path=131001000070&pageIndex=70&flip=0

[이상, 2017년 3월 22일자 출처 추가 끝]

-. 유아세례의 필요성을 최초로 언급: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며 따라서 어린아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

-. "살아있는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이고, 인간의 삶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다"(이레네우스, '이단논박' VI. 20, 7).

-.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우리는 영원한 부활의 희망을 갖는다"('이단논박' Ⅳ. 18,5).

-.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신구약성서의 저자이시라는 하느님의 유일(唯一)성을 증명하고, 그리스도의 강생을 구원사적으로 설명.

 

-. '그리스도 중심의 수렴사상'을 펼치면서 역사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저술가였다.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수렴되고 그분을 머리로 하여 완성된다는 이레네우스의 그리스도 중심의 '수렴'(收斂, recapitulatio) 사상.
 
-. 로마교회의 수위권을 강조하면서 모든 교회는 로마 교회와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교회 즉 전 세계에 있는 신자들은 강력한 수위권을 지닌 이 (로마)교회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로마)교회에는 그들을 통해서 전해오는 사도전승이 항상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이단논박' III. 3, 2).

 

-. 이레네우스는 '불순종과 순종', '첫 아담과 둘째 아담(그리스도)', '첫 하와와 둘째 하와(마리아)'를 대비시키면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순종은 생명을 가져왔다 라고 설명한다.

 

-. "하와의 불순종이 그녀와 전 인류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지만, 마리아의 순종은 그녀와 전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이단논박' III. 22, 4).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으로 풀렸다"('이단논박' III. 22, 4). "우리는 아담 안에서 상실했던 '하느님을 닮은 모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했다"('이단 논박' III. 18, 1).

 

-. "사도적 선포의 논증"(使徒的 宣布의 論證, Demonstratio doctrinae Apostolicae)에서 우리는 목자로서 이레네우스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이레네우스는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이단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교회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영(성령)이 있고, 하느님의 영이 있는 곳에 교회와 모든 은총이 있기 때문이다"('이단반론' III. 24, 1).

-. 하느님도 한분, 그리스도도 한분, 사람도 하나, 교회도 하나, 신앙도 하나」라는 「단일성」을 천명했다.

-.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

(이상, 발췌 끝)

 

3-2. 특히, 가톨릭 교회의 일곱 성사들은, 16세기 중반에 개최되었던 트리엔트 공의회(1545-1663년)에서 최종적으로 재확인 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 이유 때문에라도, "은총만으로", "성경만으로", 믿음만으로(only faith)" 등을 주장하며 위의 제3-1항에 나열된 가톨릭 교회의 성전에 근거한 가르침들을 거부하는 16세기 초반에 처음 등장한 개신교 교파들의 목회자들은 이들 일곱 성사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교리들을 온전하게 수용하지 않아 왔다고 알고 있는데, 특히 일곱성사들에 대한 재확인의 근거 문헌들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ans, 1225-1274년))"신햑 대전" 및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ans, 1225-1274년)"사도 신경 해설", 제10조에 서술된 이들 일곱 성사들에 대한 전통적 교리들을 온전하게 수용하지 않아 왔음을 의미합니다.

 

3-2-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일곱 성사들에 대한 해설들이 주어진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ans, 1225-1274년)"사도 신경 해설", 제10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1: http://www.corpusthomisticum.org/csv.html [라틴어 원문] 

출처 2: https://isidore.co/aquinas/Creed.htm [라틴어 원문 및 영어본] <----- 영어가 수월한 분들의 필독 권고

출처 3: https://isidore.co/aquinas/english/Creed.htm [영어본]

 

3-2-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어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Sacraments(성사들)"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는데,

 

http://www.newadvent.org/cathen/13295a.htm <----- 영어가 수월한 분들의 필독 권고

 

(i) 이 성사들의 근거 문헌들로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ans, 1225-1274년)"신햑 대전""사도 신경 해설", 제10조가 언급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리고

 

(ii) 특히,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단죄당한 주장들에 어떠한 주장들이 포함되는지 알 수 있는데, 이들 단죄를 당한 주장들은 일곱 성사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들을 온전하게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였던 당시의 여러 개신교 교파들의 주장들이며, 이들을 또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 발췌 끝)

 

E.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F.

F-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돈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이 저자인, (i) 1635년에 초간된, 신약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인, 한문본 "천주강생언행기략", (ii) 1640년에 초간된, 한문본 "천주강생인의", 이들 둘 중의 유관 본문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F-1-1. "천주강생언행기략", 권4_2_논천량지기성체_72-74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요한 복음서 6,22-70(매년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 (2020년 6월 14일) 가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복음 말씀; 나해 연중 제18주일 복음 말씀; 나해 연중 제19주일 복음 말씀; 나해 연중 제20주일 복음 말씀; 나해 연중 제21주일 복음 말씀; 매년 위령의 날(11월2일) 복음 말씀)] [(2016년 7월 28일) 주: 여기서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서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로 번역된 표현이 "의무득 영구지양. 인자자 장여언"로 번역되었음.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즉, 부족함/결핍) 글자에 대하여 고찰하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0.htm. 여기서 "새 번역 성경"에서 "하느님 아버지"로 번역된 표현이 "대부"로 번역되었음. 각주에 "모세"를 언급하면서 "만나"에 대한 설명이 주어져 있음]

 

F-1-2. "천주강생언행기략", 권7_3_입성체_136-137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마르코 복음서, 14,22-24(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 말씀: 나해 성체 성혈 대축일 복음 말씀); 1코린토 11,23-26(매년 성 목요일 최후의 만찬 제2독서)] [주: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 잘 설명되어 있는 양형영성체에 대한 핵심 교리가 해석으로 주어져 있음] 

 

F-1-3. "천주강생인의", 천주강생인의_상권_제7장_강생사적_진부고경예언_17-26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4월 23일) 마태오 복음서에서 취하여지고 있는 (이상, 2020년 4월 23일자 내용 추가 끝) "천주강생" 에 대하여 예언된 구약 성경 본문들의 내용들의 조합 22개가, 다음의 (i) - (xxii)에 나열하였듯이, 각 조합의 구성 성분들로서 사용된 구약 성경 본문들의 출처들의 구체적인 언급과 함께, 제시되고 있음. 혹시하여 말씀드립니다만, 이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본문의 번역 대본은, 1979년에 개정 초간된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이 아니라, 예를 들어,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그 이전 시기까지 가톨릭 교회의 공인 라틴어 성경인,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 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 

(xix) 정립신제: [달미 = 다윗, 묵기슬득 = 멜키체덱, 잡가리아 = 즈카르야] 본문: 시편 109, 즈카르야 [9,11], 각주: 기략 7권3 [마르코 복음서 14,22-24(나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복음 말씀; 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 말씀); 1코린토 11,23-26(매년 성 목요일 제1독서; 다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 짝수해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제1독서)] [(2019년 11월 20일) 주: 제17a쪽에 "신교지제례"라는 표현이 있음.]

[...]

(이상, 발췌 끝)

 

F-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6년-1642년에 초간된, 매년 주일 및 첨례일 전례성경인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 중의 유관 본문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발췌 시작)

"천주강생성경직해", 권9_60_야소성체or성체첨례_171-176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요한 복음서 6,55-58(1969년에 개정된 지금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이상, 발췌 끝)

 

게시지 주 F: 위의 제F항에 안내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이, 18세기 후반부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들에게 유의미한 이유들에는, 다음의 역사적 사실들이 포함됩니다:

 

(1)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조선의 임금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1735-1762년 음력 윤 5월 21일)가 남긴 자신이 읽은 책들의 제목들의 기록 중에 "천주강생성경직해"가 포함되어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07.htm

 

(2) 1782년에 작성된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 소장 도서 목록에 "천주강생언행기략"이 포함되어 있다.

 

(3)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논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최근에 수행한 연구 결과에 의하여, 작문자가 이벽 성조(1754-1785년)로 알려진 한시 "성교요지"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 문헌들에 "천주강생언행기략", "천주강생인의", 그리고 "천주강생성경직해"가 포함됨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증/입증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8.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0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3.htm

 

(4)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논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최근에 수행한 연구 결과에 의하여, 한시 "성교요지"의 작문자가 이벽 성조(1754-1785년)임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증/입증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0.htm

[제목: 성교요지 2,15의 방개方蓋 라는 단어의 출처는 중국이 아니고 우리나라 조선의 악학궤범樂學軌範(1493년)이며 그 의미는 이 문헌 중의 그림(건고建鼓)이 나타내는 바이다; 게시일자: 2019-05-30]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1.htm

[제목: 세 번(1863, 1897, 1910년)에 걸쳐 중국 상해에서 마틴Martin에 의하여 출판된 책 The Analytical Reader의 본문들의 비교분석과 그 결과들; 게시일자: 2019-06-18]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6.htm

[제목: 성교요지 의 외유(外遊)(중국, 미국 등)의 실증적 증거(positive evidences)들; 게시일자: 2019-07-15]

 

(5) 바로 위의 제(4)항에 이어서, 다음에 있는 졸글/논문들도 또한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87.htm

[제목: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19,7에서 口法口利口賽 라는 음역 표기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7-03-0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02.htm

[제목: 1853년 경에 초판된 중국 개신교회 측의 대표역본/문리본 한문본 성경들의 용어들의 출처 문헌들에 포함되는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게시일자 2019-08-18]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26.htm

[제목: 한문본 성경들의 음역 용어들 法利賽/𠵽唎㘔(Pharisee)와 亞伯(Abel)의 창안자는 우리나라 조선의 이벽(李檗, 1754-1785년)이었다; 게시일자: 2020-01-23]

(이상, 게시자 주 F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194.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CCC 946-953, 960


이 표현은 우선적으로 거룩한 것(the holy things, sancta)들에 있어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나누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 거룩한 것들에는 믿음(faith, 신덕), 성사(sacraments)들, 특히 성체성사(the Eucharist), 은사(charisms)들, 그리고 다른 영의 선물(the other spiritual gifts)들이(*) 있습니다. 이 통공(communion, common union, 하나 됨)의 뿌리에는 애덕/사랑(love)이 있는데, 이 애덕/사랑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1코린토 13,5) 열심 신자들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도록”(사도행전 4,32) 이끌고, 심지어 자신 소유의 물질적 재화(material goods)들을 가장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데에 내어 놓도록 이끕니다(엮은이 번역).

 

(*): 성령칠은들과 은사(charisms, charismata)들로 구분되는 ‘영의 선물들’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0.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corpus_c946.htm

 

CCCC 195. 이것들 이외에 '성인들의 통공'이 뜻하는 다른 것들은 무엇입니까?
CCC 954-959, 961-962


이 표현은 또한 거룩한 인격(the holy persons, sancti)들, 즉,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은총에 의하여 결합된 자들, 사이의 하나 됨(communion, common union, 통공)을 말합니다. 이들 중의 일부는 이 세상의 순례자(pilgrims)들이고, 다른 자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친 후에 정화(purification)를 겪는 중에 있으면서 우리의 기도들에 의하여 도움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 중에 또 다른 자들은 이미 하느님의 영광을 향유하면서(enjoy)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고 있습니다(intercede). 이들 모두는, 성삼위(the Trinity)의 찬미(praise)와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가족인 교회(the Church)를 형성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corpus_c954.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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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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