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성당 게시판

[어른들을 위한 동화]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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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지 [JEJUBLUE] 쪽지 캡슐

1999-08-17 ㅣ No.185

 

 

            어른들을 위한 동화   1편

 

 

            첫눈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읍내’에 난쟁이 아저씨 한분이 계셨습니다.

          이마에는 씨 뿌려 놓은 보리밭 고랑같은 주름살이 골골이 나 있는데도

          어른들 틈에 기어주지 않기 때문에 어린 우리들하고 곧잘 놀았습니다.

            우리가 소꿉장난하기 위해 황토를 파러 갈 때도 곧잘 따라 다녔으며

          소꼽장난할 때 잠을 자라고 하면 정말로 코를 골면서 자버려서 어린 우리들의

          애를 태우곤 하였습니다.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봄이 되면 새싹들이 밟혀

          죽으면 어쩌나 하여 살살 걸어다닐 것도 당부했지요.  그리고 겨울에는

          새들한테 준다고 늘 호주머니 속에 생보리나 조를 넣고 다녔으며.....

 

            그런데 이 아저씨가 장터에 곡마단이 와서 며칠 나팔을 분 뒤에 보니

          우리의 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받고 팔려갔다는 난쟁이

          아저씨의 소문이 한동안 우리 읍내에 자자하였습니다.  더러 아저씨를

          보았다는 어른들이 생겼습니다.  하동에서, 구례에서, 멀리 순창에서도.

          멋진 고깔모자에 말을 타고 가더라고도 했고,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어떤 여자하고 나란히 서 있더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불쑥 난쟁이 아저씨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멋쟁이로

          변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얼굴에는 그늘이 더 짙었고 신발도

          검정 고무신,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한 가지 별난 게 있다면 아저씨가   

          이젠 장터에서 장날마다 일인 굿판을 벌인다는 사실이였습니다.

 

            무지개떡 결 같은 광대의 옷을 입고 회초리 끝에 접시를 얹어 돌렸습니다.

          입으로 불을 삼키기도 하고 내뿜기도 하였습니다.  간혹 밀가루 방귀를

          뀌어서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아저씨의 재주가 한 가지씩 바뀔 때마다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습니다.  나중에 난쟁이 아저씨가 땀을 옷소매로 훔치면서

          절을 하면 앞에 놓아 둔 바구니에 동전들을 던져 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지폐를 놓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저씨의 굿판은 차츰 꽃피워버린 꽃대궁처럼 시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른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한결같이 아저씨의

          굿판을 지킨 것은 어린 우리들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난쟁이 아저씨는

          한 가지의 순서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회초리 끝에 접시를 얹어서 돌리고 입으로 불을 삼키기도 하고

          내뿜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한두 번씩 밀가루 방귀를 뀌기도 하고요.

          구경꾼 중에는 어른들이 없는데도 여전히 절을 하였고 땀을 돌아서서

          닦았습니다.

 

            어린 우리들은 박수를 아기지 않았지만, 그러나 난쟁이 아저씨의

          바구니만은 채워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저씨가 기침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아저씨의 얼굴이 차츰 납빛어럼 하얘져 갔습니다.  기침을 할 때는

          수건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그럴 때면 입을 막은 수건이 봉숭아 꽃물이

          드는 것처럼 불그스레해지곤 하였습니다.

          

            처음 얼마동안 어린 우리들은 그러한 것마저도 난쟁이 아저씨의

          요술이 아닌가 하여 신기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현달처럼

          야위어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이내 알았습니다.  아저씨가 일인 굿판을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어린 우리들은 난쟁이 아저씨를 찾아갔습니다.  안산 아래에 있는 향교,

          그 향교의 문간방에서 아저씨는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인기척을 듣고 난쟁이 아저씨가 나왔습니다.  이때 역시도 아저씨는

          무지개 결 같은 남루한 광대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가져간

          고구마를 받은 아저씨가 우리들을 마루 끝에 나란히 앉히고서 퉁소를

          불었습니다.

      

            아저씨의 퉁소 소리는 오동나무 잎새를 스치고 온 실바람과 어우려졌는데

          그 소리가 뒤꼍 대밭 속으로 사라지면서 어린 우리들을 막연히

          슬프게 하였습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그 옷이 좋아?"

            "응"

            "왜요, 어저씨?"

            "무지개를 판박이한 천이거든."

            다른 누군가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무지개가 소원이야?"

            난쟁이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말을 꺼내려는데 기침이

          먼저 나오나 보았습니다.  쿨룩쿨룩 기침을 하고 나서 간신히

          입을 열었습니다.

 

            "무지개는 제가기 빈 마음으로 층을 이룬거야.  그래서 아름답지.

          그런데 어른들은 무엇이건 채우려고만 해.  돈도, 지식도, 명예가지도.

          그러니 무지개가 이 세상에 오래 서 있을 리가 없지....."

 

            아저씨의 눈에서 작은 별이 양쪽 뺨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것을

          우리들은 보았습니다.

 

            "돌아들 가거리.  나는 이제 구름의 그림자도 느끼는 달팽이별로

          돌아가고 싶구니.  여기 지구는 오래 머물고 있을 만한 별이 못돼.

          우리 고향으로 내가 돌아가면 너희들한테 선물을 보내도록 하지."

 

            이튿날 아침, 우리가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은 첫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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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다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간 열씨미 쉬면서 하나, 둘씩 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앞으로 많은 성원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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