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이제 진정 사람이 된 한 어린 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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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선 [spinoza99] 쪽지 캡슐

2000-01-03 ㅣ No.968

추기경님 안녕하세요.

 

명동성당의 새 영세자 우 영선 프란체스카 처음으로 인사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올 한 해도 늘 건강하세요.

 

저는 1999년 3월 14일에 영세를 받았읍니다. 어제 주일의 복음 나누기에서 <엎드려 경배하였다>라는 말을 깊이 되뇌이며 <이제 진정으로 주님을 내 안에서 느끼는 구나>라고 생각하였읍니다. 명동성당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영세를 받습니다. 이러한 새 영세자들로 이루어진 단체가 <소공동체> 입니다. 새 영세자들이 모여 주일에 복음나누기를 하고 미사의 안내봉사와 그룹을 지어 여러 기관에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제가 따뜻한 아랫목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동안, 24일과 25일, 31일과 1일에 소공동체 봉사자들은 그 많은 인파에 시달리며, 잠을 얼마 자지 못하며, 한복 때문에 추위에 떨며, 겨울을 힘들지만 아름답게 보냈읍니다.

 

잠이 든지 3시간 만인 이 새벽에 잠꾸러기인 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단장을 정갈히 하고 이렇게 학교에 앉아 있는 중에, 카톨릭 홈페이지를 두루 살피다 보니 이렇게 영광스러운 편지를 보낼 은총이 내려졌읍니다. 오랜동안 홈페이지를 이용했는데 오늘에야 발견했읍니다.

논리적이며 실리적인 지식이외에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성공과 권력를 쥐기위해서 자신만을 위해 앞만 바라보았고, 허무에 시달리며 인간과 세계를 멸시하던 지난 날의 제가 엎드려 경배하고, 십자가를 보는 순간 목이 메이는 것은 분명 주님의 행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서 주님은 사람들을 통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삶과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시었읍니다.

 

소공동체를 이끌어 나가시는 신부님과 수녀님,

소공동체의 모든 새 영세자들과 봉사자들,

교리교육을 받았던 제자 모두를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는 수녀님,  

마가렛 공부방에서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하실 두 분 수녀님들,

성직자를 포함한 꽃동네의 모든 식구들,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이러한 많은 사람들을 저는 영세를 받고 난 후 만났읍니다. 몇 번이나 가출을 하고 돌아오는 자식을 부모가 여전히 기쁘게 맞아주시듯, 주님은 끊임없이 저를 집으로 돌리시려 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었나 봅니다. 미천한 제가 추기경님께 이 분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추기경님의 바쁘신 일정 가운데에서, 자그마한 시간을 내어주시어 명동성당의 조해인 바오로 신부님과 마가렛 공부방의 오수녀님, 조수녀님(02-7413029)께 추기경님의 따듯한 격려 말씀 한 마디를 부탁드립니다. 미천한 저의 바램이지만, 그 분들의 삶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저의 소망입니다. 그 분들과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제게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시었읍니다.

 

서점에 들러 전공서적을 사들고 돌아 오는 도중에, 노숙자들을 보고, 희망을 잃어가는 산동네의 아이들과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도시 한귀퉁의 버려진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온 우주 앞에서 절규하고 픈 생각이 듭니다. 평등한 사회와 모든 이의 평화로운 삶에 대한 의지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죽는 날까지 그와 같은 계란이 되고 싶으며, 부딪혀도 깨어지지 않고 살아나 다시 부딪히는 계란이고 싶습니다.

 

계란 이야기하니 배가 고파 오네요. 때가 되면 뭘 먹어주어야 하는 물질적 존재이면서도 또한 희노애락에 시달리는 가슴이 있는 존재인 한 인간으로 우주의 한 순간을 사는 것이 이제는 즐겁습니다. 뭐 우주라는 큰 공간과 역사의 긴 시간에 비하면 먼지와 같은 존재이지만 ....

그래도, 저번에 난로를 피우며 알게 된 것인데, 먼지타는 냄새가 참 좋더라구요.

 

제 안에 있는 모든 희노애락을 종이배에 실어 먼 바다로 흘려보내고 싶은 작은 바램과 함께, 이제 일하로 갑니다.   

 

길고 두서없는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심에 감사드리며 언제나 평화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우 영선 프란체스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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