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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불매운동'과 '조중동'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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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8-07-14 ㅣ No.6297

               '광고불매운동'과 '조중동'에 대한 생각





신비한 생명력의 장엄한 지속성 같기도 한 '촛불집회'의 장관 속에서 '조중동'이라는 이름도 숱하게 듣는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조중동'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중동이라는 이름은 그만큼 우리 생활 속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를 한 통속으로 묶는 이 보통명사는, 그들이 오늘날에는 위태롭게나마 메이저 신문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앞날의 명운과 상관없이 부정적 이미지를 교훈적 유산으로 남기게 될 것이다. 조중동의 존재가치가 어떻게 변화하든 오늘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는 그 보통명사가 우리 생활 속에 그대로 남게 되리라는 것은 일면 안타깝기도 한 일이다.

'조중동'이라는 글자들이 쓰인 팻말이나 현수막을 높이 든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사옥 앞으로 행진하며 항의와 규탄의 주먹 짓을 날리는 광경을 보면서 분명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저 일제 시대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조선일보가 매년 신년호 1면 상단에 일본 천황 부부의 사진을 싣고 황국 신민으로서 충성을 맹세해도, 그리고 만주 독립투사들을 일러 '비적(匪賊)'이라 불러도 규탄이나 항의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5공 시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조선일보가 광주시민들을 아무리 '폭도'라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중은 그저 공룡 같은 거대 신문의 논조 같지도 않은 논조에 현혹되어 순치되어 갔고, 밤을 지배하는 이 공룡에겐 그저 승승장구의 세월만이 보장되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 놀라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저 일제 시대와 군사독재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오늘날 새로운 역사발전의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대의 인맥과 유습이며 가치관이 사회 곳곳에(특히 그들 보수신문의 습성 안에) 많이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놀라운 현상들 속에서 '광고불매운동', 또는 '광고주압박운동'이라는 이름도 듣는다. 자발적 시민운동, 소비자운동의 한 실체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이름인데, 그 운동을 단속하겠다는 검찰의 '의지' 때문에 그 운동은 오히려 더욱 탄력을 받는 것 같다.

조중동에게 광고를 주는 기업들에 압박을 가하여 광고를 차단시킴으로써 조중동의 운영에 타격을 주려는 이 특이한 운동의 시원(始原)은 놀랍게도 정치권력 쪽에 있다. 1970년대 유신 시절에 '광고탄압'이라는 것이 있었다. 말과 실체가 한 묶음으로 분명하게 존재했다. 유신정권에 비판적이던 동아일보가 어느 날부터 광고 면을 백지로 비운 채 발행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그게 정치권력의 장난 때문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동아일보의 백지광고들은 곧 국민들의 '격려광고'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수많은 국민들이 동아일보 격려광고 대열에 동참했고, '격려광고'라는 이름은 언론자유 수호운동의 거대한 실체, 확실한 대명사가 되었다.

그때가 동아일보로서는 가장 빛나던 시기였다. 그때처럼 동아일보가 고귀하고 장하게 보인 적은 없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결국 정치권력에 굴복하고 말았고, 차츰 언론권력의 맛에 길들여지더니 급기야는 조선일보와 부화뇌동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보이지 않는 정치권력의 손이 기업들을 압박하여 동아일보에 광고를 주지 못하게 했다. 반면 오늘날에는 검찰의 수사가 얼마든지 가능한 사람들, 네티즌들이 기업들에 압박을 가하여 조중동에 광고를 주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70년대 동아일보 광고탄압 시절에는 우리 검찰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연한 범법사실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그저 다만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런 검찰이 오늘날에는 소매 걷어붙이고 스스로 나서서 시민들의 광고주압박운동을 수사하겠다고 한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정권의 시녀답게 그것도 수사 대상이면 수사를 하되, 70년대 그 시절 정치권력의 범법에는 왜 그리도 초연하고 끽 소리도 못했는지, 먼저 그것에 대한 해명과 사죄부터 하고 나서 오늘의 '의지'를 발휘해야 합당한 일이 될 것이다.

그 어떤 과거지사라도 망각하지 않는 것과 반성과 참회는 진정한 역사발전을 위해 참으로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충남 태안의 10일 치 <태안신문>과 천주교계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 8월호에도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


(몇 달 동안 거의 매일같이 '기름과의 전쟁'에 적극 참여한 탓에 과로 누적과 세균 감염으로 말미암아 5월 18일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천안 순천향대학병원을 거쳐 6월 5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종격동 종양과 사지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6월 30일 퇴원하였습니다. 그동안 병실을 찾아주시거나 염려와 격려를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2008.07.14 13:2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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