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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라는 이름, 또는 얼굴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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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경 [sue60] 쪽지 캡슐

2000-02-15 ㅣ No.514

예수라는 이름, 또는 얼굴지우기

 

예수라는 이름은 2천년 전 이스라엘에서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비록 그가 종교의 교주이자 세계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수모(?)를 겪게 되었지만, 오히려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이름을 갖고 싶지 않았던, 아니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자 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예화 하나, 그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왔던 요셉과 마리아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예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를 찾아 나선다.  성전 귀퉁이에서 랍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를 발견하고 이렇게 묻는다.  "너의 부모들이 온종일 너를 찾아 다녔다."  "누가 나의 부모란 말입니까 ? "  신의 뜻대로 사는 자라면 누구나 다 저의 형제요, 가족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그는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여러가지 이름을 부여받았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부활한 엘리야, 모세, 어린양 등등.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칭호를 거절하고, 스스로 인자 - 즉 단지 평범한 사람의 아들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의 이름에 대한 수많은 해석과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는 ’인자’ 이상의 이름을 갖기 원하지 않았다.

 

한편, 그는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로부터 여러가지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칭 유대인의 왕’, ’술과 고기를 탐하는자’, ’창녀와 세리*죄인들의 친구’ 등등.  로마 총독 빌라도로부터 재판을 받게되면서 그에게 질문이 던져졌다.

 

"네가 진짜 유대인의 왕이냐 ? "  "네가 그렇게 여긴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  

그는 명시적인 대답을 회피한다.  빌라도는 유대인에게 외친다.  "이 사람을 보라."  그가 과연 누구냐 ?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 ? " 빌라도는 결국 그의 이름을 찾기를 포기한다.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서로 "도대체 저가 누구냐 ?"고 묻는다.  그에게 붙여진 이름들은 모두 그를 둘러싼 수많은 애증의 관계에 붙여진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처형되었을 때 십자가 위에 붙여진 팻말은 자못 조롱조다.  

"자칭 유다인의 왕".

 

교회의 교리사(Dogmatics)는 어쩌면 그의 이름을 둘러싼 역사이기도 하다.  종교회의에서 예수의 호칭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면서 그에 대한 신성-인성 논쟁으로까지 비화된다. (칼케톤 공의회, 451년).  "그는 누구인가 ?"  신이자 신의 아들이자 인간인 예수.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예수의 신비화를 향해 나아간다.  구원의 모든 통로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집중되고, 그의 삶이 보여준 강렬함은 자신이 거부했던 메시아(그리스도)의 칭호 아래 갇히게 되었다.  예수-신, 예수-그리스도.  

 

하지만 그의 이름을 찾으려는 이같은 노력은 근대 이후 슈바이처를 비롯한 독일신학자들의 ’예수이름 찾아주기 운동’(!)에 의해 파산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이른바 ’역사적 예수’ 논쟁).  슈바이처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예수’라는 이름을 통해 자신의 이상적 인간형을 보증 받으려는 이들의 전유물이 되어왔음을 보여주었다.  예수리는 이름은 그에게 이름을 붙여주려는 자들의 숫자만큼 무수한 자신들의 얼굴들이었던 것이다.  그의 고유함은 오히려 이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삶의 강렬함으로만 남는다.  무수한 예수의 이름들.  얼굴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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