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Re: 교황님의 역할.. - 이단인 단의설에 대한 설명과 함께.. [교리학습_이단] free_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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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18.236.113.*]

2005-04-17 ㅣ No.512

 + 찬미 예수님!

아래의 답글2 에서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단성설(Monophysitism) 및 단의설(Monothelitism)이 이단으로 단죄되는 부분까지를 다루었습니다. 여기까지의 이단 논쟁의 핵심 내용을 잘 파악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아, 많은 시간을 들여서 자료를 이해하기 쉽게 재배치하고 또 추가설명을 하였습니다.

게시글 내용 중에 혹시 미흡한 부분 혹은 틀린 부분을 발견하신 교우님께서는
satinirt@hanmail.net로 전자메일로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이단인 단의설은 주로 동방 교회측에서 대두된 문제이였기에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부분도 있는 듯 합니다만, 궁극적으로 이들 이단 논쟁에 대한 학습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역할을 잘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고, 또 요즈음 돌아다니는 "이상한 운동"에 대하여 우리가 대적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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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제목: [질문] 4/13일 매일 미사책에..


>.. '단의설' 이라는 말이 나오던데..
>
>성 마르티노 1세 교황님이 라테라노 공의회를 통해 이단으로 단죄한 설이고,
>단의설 주의자이던 콘스탄스 황제와의 대립을 불러와 마르티노 1세 교황님이 순교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고 하니.. 넘 궁금해서요.
>
>
>
>아시는 분 설명 좀 해 주세요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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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1:

+ 찬미 예수님!

교황님의 역할과 관련된 주신 질문에 대한 답글을 드리는 것이,

(i) 요즈음의 이곳 분위기로 볼 때에 한편으로는 본의 아니게 이곳 게시판 자체를 시끄럽게 할 수도 있기에 (적어도 당분간은) 가톨릭 신자로서 (최근에 선종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마땅히 자제하여야 하나,

(ii)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예를 들어, 말씀하신 "단의설"과 같이, 한자로 표현된 (그러나 그 의미를 여전히 알 수가 없기에 사실은 우리말이 아닌) 우리말 단어의 자구해석으로 부터는 가톨릭 성교회의 핵심 교리내용을 제대로 알 수 없음이 너무 안타까워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한동안 망스리다,

다음의 영문 사이트를 알려 드리오니, 시간이 있을 때에 방문하시어 전체 내용 (특히 첫 번째 Section의 내용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단인 "단의설"에 대한 영문 사이트 설명으로 바로가기.. (클릭하세요)

참고: 위 내용을 읽으실 때에 혹시 필요하실 것 같아 다음의 영영사전을 알려 드립니다.

메리암 웹스터 온라인 영영사전으로 바로가기..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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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2:

 

+ 찬미 예수님!

 

그동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추모 기간이었던 관계로 읽기에 편한 답글을 드리는 것을 미루어 왔습니다.

 

한자말인 "단의설"을 한자로 밝혀 주지 않으면서 그냥 언급한 2005년 4월 13일 수요일자 매일미사 책의 설명을 읽으시고는 "단의설"이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 궁금하여 올린 질문인데, 우리와는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에, 국내 인터넷 사이트들을 뒤져서는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지중해 지역의 역사 및 철학적인 면을 우선적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 대백과사전에 서술된 설명을 읽어 보더라도 일반 교우님들께는 그 내용이 상당히 난해하여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유감스럽게도 "단의설"에 대한 분명한 설명도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글쓰기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길어지기에 우선 요지를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 혹은 중재자 (Mediator, 주: 성인 아우구스티누스께서 말씀하심.)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하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원죄없이 이 세상에 오셨기에", 신성과 인성 모두를 다 가지고 계시며 또한 하느님의 의지 (Divine will)와 인간의 의지 (Rational will)로 불리는 두 의지 모두를 가지고 계시고, 또 이 두 개의 성과 두 개의 의지는 어떠한 경우나 상황에서도 융합되거나 소멸됨 없이 이 세상에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단 한 분을 통하여 작용하므로 (즉, 단성 혹은 단의설이 아니라 양성.양의설),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 있는 동안에) 삼위일체 계시를 완성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우리의 자유의지(Rational will)를 순종적으로 발하여 하느님의 인류 구원의 거룩한 의지 (Divine will)에 스스로 순종.참여할 때 (선행 포함),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제대로 받게 되어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트교 부활 (혹은 내세) 신앙과 구원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이 내용은 구약성서 및 신양성서 그리고 성교회의 전승에 기인하기에, 즉 세속적 철학이나 사상에 따라 변할 수 없는 천주께서 내려주신 계시 내용이기에, 이것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역대 교황님들의 역할에 포함되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신권 (즉, 교황권)과 왕권의 관계는 엄연히 존재하므로, 이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왕권의 신권에 대한 침해도 발생하였고, 또 성교회 내부의 분열로 인하여 자의적 혹은 타의적 아니면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이유로 신권 문제에 왕권이 개입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단인 단성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단인 단의설에 대한 이해는, 지중해 지역, 특히 동로마 제국과 동방교회에서의, 신권과 왕권의 관계를 잘 살펴 봄으로써 우리가 좀 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된 단성설은, 476년에 있었던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 왕권의 입지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었던 동로마 제국측의 동방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주장되었기에 결국에는 또 다른 형태의 이단인 단의설로 발전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6세기 중엽에 이르러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의 옛 영토를 거의 다 회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등, 동로마 제국이 분리 이후 약 1000년 정도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기에, 동로마 제국이 지배하였던 동방 교회의 지역정서에 아직도 이들 단죄받은 두 이설이 많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가톨릭 혹은 개신교 신자로서, 서적 혹은 인터넷을 통하여 동방 교회의 문화 유산을 개인적으로 접하는 경우에 있어, 단성설적 혹은 단의설적 내용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특히 주의하여야 할 부분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록 한없이 부족한 자이나, 교우님들께서 이러한 내용을 편하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지중해 지역에서 오래 전에 있었던 역사적 자료를 순서대로 모아 엮어 드리고자 하오니, 부디 신앙생활에 도움 되시기 바랍니니다.

 

 

참고 1: 다음을 클릭하면, 공의회 (Councils)의 역할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신앙적 순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으니, 천천히 그리고 반복하여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dictionary.catholic.or.kr/dic_view.asp?ctxtIdNum=238 (공의회란? 주: 이 글은, 아래의 공의회에 대한 소개글을 작성시에 주로 참고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참고 2: 그런데, 공의회에는 그 규모에 따라 Council 단어를 (언어에 따라 다르지만 앞에서 혹은 뒤에서) 수식하는 형용사가 달라지고 있으며, 아래의 글에서 B 이후에 언급하고 있는 공의회는, 공의회 중에서 그 규모가 매우 큰 것들 (즉, General Councils) 을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영문 글에서 (또 아래의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순교자 교황 마르티노 1세께서 재위시절에 소집하셨다는 공의회는 General Council 의 규모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추가 설명없이) 우리말로 번역된 성교회의 문헌에 가끔은 애매모호 혹은 알 듯 모를 듯한 번역오류가 있는 점에 대하여, 평소에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즉, 이러한 "번역 작업과 관련된 문제 (오역 포함)"가 말끔히 사라질 때까지는, (라틴어 원본 성교회 문헌과 대조를 하거나) 영문 등 다른 언어로 번역된 성교회 문헌과 우리글 문헌의 내용을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http://www.catholic.org/saints/saint.php?saint_id=80 (4월 13일 순교자 교황 마르티노 1세 기념일에 대한 영문설명입니다)

 

http://www.newadvent.org/cathen/09723c.htm (Pope St. Martin I 에 대한 영문 Bibliography 입니다)

 

참고 3: 다음을 클릭하면, 이단(Heresy)이라는 용어의 정의를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dictionary.catholic.or.kr/dic_view.asp?ctxtIdNum=2810 (이단이란?)

 

 

A. 서론

가톨릭 성교회의 전례력에 따르면, 부활 제 3주간 수요일이 성 마르티노 1세 교황 순교 기념일인데, 이와 관련하여 매일미사 책에 소개 된 내용부터 함께 읽어보도록 합시다.

 

*****

성 마르티노 1세 교황은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의 토디 출신으로, 로마로 온 뒤로부터 그의 학덕과 신심이 널리 알려졌다.

 

부제 때 그는 교황 테오도루스 1세의 교황 대사로서 콘스탄티노플에 갔었고, 649년 7월 21일에 그를 승계하여 착좌하였다.

 

그는 즉위한 해에 라테라노 공의회를 소집하여 이단인 단의설을 단죄하고, 헤라클리우스의 황제 칙령을 견책하였다.

 

그러자 단의설주의자이던 황제 콘스탄스는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끌고 오라고 명하였다. 이때 교황은 병중이었으나 라테라노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황제의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653년 가을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3개월 동안 투옥되었다.

 

그 후 그는 크림 반도의 케르소네수스로 유배를 가서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잔혹한 대우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655년 9월 16일 사망하였다. 교회는 성 마르티노 1세 교황을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다.
*****

 

위 내용을 읽고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하시는 분도 아주 간혹 계시겠지만, 우리 글로 표현되어 있어 읽기는 읽었는데 저 역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위의 답글 1에서와 같이 영문 사이트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영문 사이트들 중에서도 위에서 말씀드린 곳 이외에는 "단의설"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는 사이트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더 나은 사이트를 아시는 교우님께서는 저에게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당연히, 위의 ***** 사이의 글을 읽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시는 신앙심 좋으신 열심신자 교우님들께서는 아래의 내용을 읽으실 필요가 없겠죠..^^

 

그럼 우선적으로 교황님의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A-1. 공의회란? (교황님의 역할 포함)

주: 다음은 한국주교중앙협회의의 사목지에 게재된 교회 용어 해설에 있는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http://222.109.34.30/PDS/period/samok/s2001/11/term.htm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공의회

    공의회(Concilium, σμνοδος)는 전체 교회 또는 일부 교회의 주교들이 모여 신앙과 도덕, 예배와 규율에 관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회의입니다. 공의회는 역사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개최되어 왔는데, 현행 교회법에 따르면, 세계 공의회와 지역(개별) 공의회가 있으며, 지역 공의회에는 전국(전체) 공의회와 관구 공의회가 있습니다. 세계 공의회(Concilium oecumenicum, - generale, - universale)는 교황과 함께 교황의 주재 아래 모이는 주교단의 총회로서 온 세계의 모든 주교와 보편 교회를 대표하는 이들이 전세계 교회에 관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회의입니다. 전국 또는 전체 공의회(Concilium plenarium)는 한 나라나 여러 나라들의 주교들이 모여 해당 지역의 교회 문제들을 결정하는 회의이며, 관구 공의회(Concilium provinciale)는 한 교회 관구의 주교들이 모이는 회의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헌장"에서 "주님께서 정하신 대로, 거룩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의 사도단을 이루듯이, 비슷한 이치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 공의회 모임 자체가 주교단의 단체적 본질과 특성을 드러내 준다. 공의회를 통하여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든 공동으로 결정하고 판단한다. 여러 세기의 흐름 속에서 개최된 세계 공의회들이 그 단체성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주교단이 지닌, 보편 교회에 대한 최고 권력은 세계 공의회에서 장엄한 양식으로 행사된다. 그러나 베드로의 후계자가 세계 공의회로 확인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계 공의회는 결코 인정되지 아니한다.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확인하는 것은 교황의 특권이다."(22항)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 공의회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이 (또는 그 대리가) 소집하고 주재하고 승인 또는 추인하여야 세계 공의회라고 합니다. 교황이 소집하였더라도 그 결정을 승인하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지역 회의로 머물게 되며, 교황이 소집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 이를 추인하면 세계 공의회라고 합니다. 로마 황제가 소집하고 어떤 때에는 교황이 그 소집을 반대하였던 초기의 세계 공의회들은 그 후대에 열린 공의회나 교황이 거기에서 제정된 신경이나 일부 결정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세계 공의회라고 불립니다. 처음 여덟 차례의 세계 공의회는 교회의 보호자로 자처하던 로마 황제가 소집하여 동방에서 열렸으며, 중세기부터는 교황이 직접 소집하고 주재하는 세계 공의회가 서방에서 열려 서방의 군주들이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차례의 바티칸 공의회는 세속 군주들이 초대되지도 참석하지도 않고 온 세계 모든 지역의 주교들이 모인 진정한 의미의 보편(세계) 공의회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외국의 지명에 따른 세계 공의회의 명칭을 여러 가지로 표기하는데, 여기서는 외래어 표기법 또는 표기 용례에 따라 스물한 차례의 세계 공의회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 교황 실베스테르 1세 성인,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아리우스 이단 단죄, 성자와 성부의 동일 본질(Consubstantialitas, "한 본체") 확인, 니케아 신경 반포(니체아 또는 니카이아라고도 쓰지만, "니케아"로 표기. 현재 터키 이스탄불 부근의 소도시 이즈니크).

 

참고: 굿뉴스 교의신학/교부학 자료실에 게재 된 "아리우스 이단과 니케아 공의회" 제목의- 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이연학 신부님의 글 (가톨릭 신문, 2003년 6월 1일)을 꼭 읽어 보도록 하세요.

http://pds.catholic.or.kr/attbox/bbs/attboard/read.asp?maingroup=1&type=gnattboard&gubun=100&seq=198&group_id=10&sub_id=2&id=64 (클릭하신 후에 굿뉴스 회원으로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

 

혹은 다음의 사이트들의 내용 (가톨릭 신문)을 꼭 읽어 보도록 하세요.

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17957 (클릭하세요)

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8176 (클릭하세요)

 

다음을 클릭하면 아리우스파에 대한 네이버 인터넷 백과사전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100.naver.com/100.php?id=104595 (클릭하세요)

이 글에 의하면, 일전에 Credo에 관한 설명을 드리면서도 언급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다 추방당한 아리우스파[Arianism, 즉 아리아니즘]의 주장은 그 논리의 전개 방식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그 이후에 특히 게르만족의 민족신앙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2.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 교황 다마소 1세 성인,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마케도니우스 이단을 단죄, 성령의 신성(Qui cum Patre et Filio simul adoratur et conglorificatur:"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을 확인. 니케아 신경에 성령 관련 조문을 덧붙여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반포(흔히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하지만 이는 영어 표기,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

 

    3. 에페소 공의회(431년, 교황 첼레스티노 1세 성인,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네스토리우스(Nestorianism) 이단 단죄,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성자의 위격적 단일성을 확인, 마리아를 "천주의 성모"(θεοτοκος, Dei Genetrix)로 선언, 펠라기우스 단죄 재확인(그리스의 도시이므로, 에페소스라 표기하여야 하지만, 성서 서간 명칭 등의 관례에 따라 에페소로 표기).

 

참고: 당시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강조가 지나쳐 예수 그리스도가 마치 두 위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그 결과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일 뿐이라고 주장함.

 

참고: http://100.naver.com/100.php?id=181360 를 클릭하면 펠라기우스의 주장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 설명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4. 칼케돈 공의회(451년, 교황 대 레오 성인, 황제 마르키아누스):단성설(單性說, Monophysitism) 이단 단죄, 에우티케스 파문, 그리스도의 두 본성(신성과 인성)을 정의(현재 터키 이스탄불의 한 구역 카디쾨이). 

 

참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결과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지나치게 분리시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아들과 성모 마리아의 아들을 뚜렷하게 구분시켜,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의 중재자(Intermediator)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에 필수적인) "이 두 아들의 단일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와 그 추종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격렬히 반대한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치릴로의 주장을 이어받은 (콘스탄티노플 수도원장) 에우티케스는, 더 나아가 치릴로의 "단일본성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결합후에는 인성이 신성에 흡수 소멸되고 신성만 남는다는 이설, 즉 단성설을 펼침. 단, 치릴로는 에우티케스의 단성설에 반대함을 분명히 하였음.

 

따라서, 단성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네스토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단죄하는 과정에서 반대급부적 성격으로 불과 약 20여년 사이에 급히 전개된 또 하나의 과도기적 이설임을 알 수 있음. (주: 에페소 공의회와 칼케톤 공의회는 20년 시차를 두고 있음).

 

그러나 단성설은, 451년 칼케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동로마 제국에 있던 동방 교회에서는 칼케톤 공의회의에서 채택된 신조 중 일부 표현을 지속적으로 거부하였으며, 결국에는 단의설이라는 이설을 만들어 내게 됨. (주: 아래의 제 3차 콘스탄티노플리스 공의회 참고.) 

 

또 단성설은 451년 칼케톤 공의회의 단죄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티나와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지속되었으며 이후에 "삼장서 논쟁"과 "성화상 파괴 논쟁" 따위를 야기시키는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단성설 관념은 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방면에까지 확장되어 종교와 정치, 교회와 국가를 서로 흡수 융합시키는 동방 교회의 제국 신학으로 발전되었다. 동방 교회의 하나인 아르메니아인, 시리아-야고보파, 이집트(콥트족), 아비씨니아 교회 등은 아직도 단성설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함.

 

    5.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553년, 교황 비질리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네스토리아니즘에 호응하는 이단 단죄(오리게네스 등의 오류 단죄), 앞서 네 차례 열린 세계 공의회들을 추인.

 

    6.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680-681년, 교황 아가토 성인, 레오 2세 성인, 황제 콘스탄티누스 4세):단의설(單意說, Monothelitism) 단죄,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두 의지와 그 작용을 정의.

  

    7.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 교황 아드리아노 1세, 황제 콘스탄티누스 6세와 그 모후 이레네):성화상 투쟁 종식, 성화상 공경을 규정.

  

    8.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869-870년, 교황 아드리아노 2세, 황제 바실리우스 1세):로마 사도좌(교황)의 수위권을 인정. 이후 동방에서는 세계 공의회가 열리지 않음.

  

    9.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1123년, 교황 갈리스도 2세):로마에서 열린 최초의 세계 공의회, (주교) 서임권 투쟁 종식, 교회 기강 확립, 성지 회복 논의(영어식으로 라테란이라고도 쓰지만, 성인명 표기 관례에 따라 라테라노라고 함).

  

     10.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1139년, 교황 인노첸시오 2세):위교황 아나클레토 2세와 그 추종자들, 관련 이단을 단죄, 교회 기강 확립.

  

     11. 제3차 라테라노 공의회(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위교황들의 교회 분열 종식, 발데스 이단 단죄, 추기경단의 교황 선출 규정. 

  

     12.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중세에서 가장 중요한 대공의회라고 불림. 삼위일체 교리, 성체의 실체 변화 등 주요 교리 재확인. 부활 영성체와 고해성사 규정 등 70개 개혁 교령 발표.

  

     13. 제1차 리옹 공의회(1245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 단죄. 새로운 십자군 원정 계획.

  

     14. 제2차 리옹 공의회(1274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동방 교회와 일시적 재통합 성취,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Filioque"(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추가. 교황 선거법 제정.

  

     15. 비엔(1311-1312년, 교황 클레멘스 5세):성전 기사 수도회 폐지, 탁발 수도자들의 오류 단죄, 성직 제도 개혁. 영혼은 육신의 형상이라고 정의

  

     16.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년, 교황 마르티노 5세):그레고리오 11세가 소집하였으나, 마르티노 5세의 교황 선출로 교회 분열 종식, 공의회 우위설 대두, 위클리프와 후스 단죄(끝 무렵의 제42-45회기만 세계 공의회로 인정).

  

     17. 피렌체 공의회(1431-1439년, 교황 에우제니오 4세):보헤미아 종교 분쟁 해결을 위하여 바젤에 소집되었으나(바젤 공의회는 제25회기까지만 세계 공의회), 교황과 이견이 생겨 페라라로, 페스트 때문에 다시 피렌체로 옮겨 바젤-페라라-피렌체 공의회라고도 함. 성체성사를 비롯한 성사들에 대한 정의, 동방 교회와 재통합 합의(Florence는 영어식 지명이므로, 이탈리아어에 따라 피렌체로 표기함).

  

     18. 제5차 라테라노 공의회(1512-1517년, 교황 율리오 2세, 레오 10세):주로 교회 규율에 관한 교령 발표, 십자군 원정을 다시 계획하였으나 루터의 종교 반란으로 무산됨.

  

     19. 트리엔트 공의회(1543-1563, 교황 바오로 3세, 율리오 3세, 마르첼로 2세, 바오로 4세, 비오 4세):최장기간 계속된 공의회로서 이른바 종교 개혁에 대항하여 교회 쇄신 추구, 교리와 개혁에 관한 수많은 교령 발표(라틴어로 트리덴티노, 이탈리아어로 트렌토, 영어로 트렌트라고 하지만, 공의회 당시에는 독일어를 쓰던 지방이므로 트리엔트라고 함. 이탈리아에 합병되기 전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관하 교구였으나 현재는 대교구임).

  

     20.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 교황 비오 9세):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을 정의, 이탈리아 군대의 로마 점령으로 무기 연기, 미완의 공의회가 됨.

  

     21.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교황 요한 23세, 바오로 6세):전례 개혁 등 교회의 쇄신과 현대화 추구. 4개 헌장, 9개 교령, 3개 선언 발표.

    공의회는 일반 국가에서 통치자를 견제하며 대의 정치를 펴는 국회나 의회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이 소집(단, 교황권이 왕권 아래에 있었던 초기에는 로마 황제가 소집), 주재, 승인(추인)하는 공의회만이 세계 공의회로 인정되고 모든 신자가 그 결정에 따릅니다. 교황이 승인하지 않은 회의의 결정은 거기에 참석한 교회 권위의 관할 지역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입니다.

 

참고: 역대 공의회 중, 가톨릭 교회의 정립기에 열렸던 공의회 (제 1차부터 제 8차까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그러나 잘 요약된 내용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www.cateforum.com/history/H-011.html

 

B. 초대교회 [, early church]

주: http://100.naver.com/100.php?id=746406 (네이버 제공 인터넷 백과사전)에 있는 내용입니다.

 

B-1. 요약
30년경부터 4세기 초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기까지의 기간 형성되었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총체적 명칭.
 
B-2. 본문
이 시기에 그리스도교 경전이 기록되었고, 교회의 신학과 체제가 확립된 기간으로 그리스도교 역사 중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리옹의 주교 이레나이우스가 활약했던 180년경 이전을 구분해서 원시교회로 부르기도 한다.

 

원시교회는 다시 사도시대와 속사도시대로 구분한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방랑생활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던 원시 공동체는 팔레스타인을 넘어 소아시아 지방으로 전파되어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 영역의 확장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 신약성서에서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소아시아 지역 전파는 초기에는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행해졌고, 후기에는 거의 전적으로 바울로에 의해서 행해진 것으로 되어 있다.

 

바울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헬라문화 (즉, 헬레니즘 문화)와 만나면서 다른 경향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당시까지는 유대적 전통을 전제로 그리스도교가 설명되었고, 특히 선교의 대상이 소아시아와 그외 다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의 거주지역이나 회당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2세기 전후에 선교의 대상이 헬라문화권의 사람들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가 유대적 색채를 벗고 헬라적 경향을 띠면서, 세계의 종교로 성장해가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주: 아래의 제 C항의 내용을 참고하세요)

 

3세기에 이를 때까지 그리스도교는 양적으로 놀라울 만큼 급격히 팽창하였다. 이러한 성장의 원인은 그리스도교의 구원에 관한 복음이 당시 사람들이 필요하였던 구원의 도를 가르쳤다는 반증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도교가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사회적 세력으로 등장하는 만큼 기존의 국가체계와 기성 종교들이 느끼는 위기의식도 높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원시 공동체가 겪어야 하였던 박해였던 것이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원형으로 후대 역사 속에서 항상 높은 존경을 받았다. 특히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하였을 때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종교적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C.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

C-1. 예수 그리스도는

(i) 한 위격으로서 불가분적으로 한 분이라는 점과

(ii) 또 그 분은 완전한 하느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을

신약성서 저자들은 제시하고 있다.

 

C-2. 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또 두 본성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위격안에 결합되어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으나, "말씀(Logos)이 사람이 되었다" 라는 것이 초대 교회 그리스도론의 중심 사상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삼위일체적 도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의 의지를 알고 있었다.

 

D. 지중해 지역의 문화.역사적 배경 일반

: 여기서 말씀드리고 있는 내용은 요즈음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에서 다루는 수준의 서양사 (특히 지중해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 하에 펼쳐진 교회사를  주섬 주섬 엮어 보았습니다. 

 

D-1. 기원전 4세기 후반에 그리이스를 멸망 시킨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은 그리이스의 대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

 

D-2. 비록 기원전 2세기 경에 로마가 지중해 연안을 거의 정복하였지만, 그동안 지중해 지역에 뿌리내린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즉 헬레니즘에 녹아든 그리이스 문화는 로마사람들에게 그대로 이어졌고, 지중해 세계를 정복한 로마 제국에 의해 서양의 모든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 

 

D-3.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도 바오로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진행이 된 이방인 전교 (로마 지역 전교 포함) 시절부터, 유대인들의 성경이기도 한 구약성경 내용을 근거로 하는 사유체계만으로는 로마인 및 로마가 지배하던 지중해 근처 거의 전 지역에 살고 있는 비 유다인들과의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화적 충돌을 극복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이해를 비 유다적인 문화 속에서 재 해석을 시도함. 즉, 전교의 과정에서, 구약성서 (혹은 유대교) 및 신약성서 그리고 교회의 전승에 그 뿌리를 둔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역할 그리고 구원론을, 당시 지중해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그리이스 철학 및 사상을 원용하여 (몇 몇 지역교회에서) 학문적인 재해석을 시도함.

 

D-4.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였다. 이로써, 그 동안의 엄청난 박해와 순교의 시대를 거쳐 "단련된 성교회"는 이 때 부터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성교회의 그리스트교적 신권과 세속적 왕권은 예수 그리스도 시절 및 그 이후 지금까지 분리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생각됨.

 

[

참고: 300년 이전의 세례 절차를 많이 복원한 것이 현재 미국의 성당들에서 채택하고 있는 "예비신자 교육과정(RCIA)"이라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교우님 혹은 봉사자께서는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gospelbbs/-/a/6108 (클릭하세요)

 

그러나, 이렇게 짧은 기간내의 엄청난 발전은 신앙적.사상적 혼란을 야기하기에, 325년에 열린 제 1차 니케아 공의회 및 381년에 열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통하여, 구약성서과 신약성서 그리고 교회의 전승에 근거하여 삼위일체 교리가 명문의 형태로 확립되고 또 널리 공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가 위치하였던 지중해 연안의 큰 도시들 중에서, 예를 들어,

 

(i) 안티오키아 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신인양성 대신에)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과 "마리아의 아들"을 너무 뚜렷이 구분하게 되어 이들 "두 아들의 단일성" 결여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네스토리우스 (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이단설을 낳게 되었다.

 

[참고: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은 추방당한 후에 페르시아 지역으로 이동하여 7세기 이후에도 이슬람 권내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다 중국 당나라에까지 경교라는 이름으로 일시 존재하였다고 함.]

 

(ii)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신인양성 대신에)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주장을 하였고, 이러한 주장은 신성과 인성이 합쳐졌을 때에 인성은 신성에 흡수되고 오직 신성만 남는다는 단성설이라는 이단설을 낳게 되었다. (: 위의 451년 칼케톤 공의회 내용 참고)

 

D-5. 교부철학 시대의 성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A., 354∼430)께서는 그리스도교의 체계화와 교회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서 초월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강조한  플라톤 사상을 받아들여, 그리이스 사상과 그리스트교 교리가 학문적·철학적으로 결합하게 된 계기를 마련함. 특히 (인간적인 자유의지에 따라 선행만 열심히 하면 (설사 하느님의 은총이 없더라도)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  펠라기우스의 주장 혹은 학설을 이단으로 규명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함.

 

참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수도자였던 마틴 루터는, 면벌부를 빌미로 삼아 성교회의 전통적 구원관 (연옥교리 포함)과 대부분의 성교회 기도문, 그리고 교황님의 수위권에 대한 순종을 버리고 나가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 중 일부는 가지고 나가,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이탈 이후 약 500년 동안,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인류 구원에 대한 계시 그 자체"를 성교회의 전통과 다르게 해석하는 시도를 함으로써 새로운 구원관을 설립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거룩하신 하느님의 의지(Divine will)에 합당한 시도가 아니었기에 (즉, 처음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이었기에) 여태까지 실패한, 그리고 앞으로도 실패할 시도임. [ttp://dictionary.catholic.or.kr/dic_view.asp?ctxtIdNum=2215 내용을 참고하세요.]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살아 생전에, 고트족 (게르만 (즉, 야만족)의 한 부족)이 410년 8월에 서로마의 수도인 로마를 함락하고 입성한 다음 대학살과 방화와 약탈을 저지르고 퇴각하는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하여 제국내에 거국적인 혼란이 발생하는 시기에 살았기에, 로마의 침탈에 당면하여 `영원한 로마'(Roma aeterna)에 대한 제국 신민 전체의 사상적 붕괴가 만연하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지우들(Volusianus와 Marcellinus)은 이 사건을 이념적으로 감당할만한 대작을 집필해 달라는 부탁을 히포의 주교 (즉 성인 아우구스티누스) 에 하였으며, 이를 받아들여 역작인 "신국론"을 저술하였다고 함.

 

[: 한참 뒤의 일이지만, 스콜라 철학 시대의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Aquinas, T., 1225?∼1274)께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입각하여 신학과 철학을 설명하려고 함.]

 

D-6. 395년에 로마제국의 테오도티우스 황제가 죽은 뒤에, 테오도티우스 황제의 첫째 아들인 아르카디우스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고 둘째 아들은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다. 즉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된다. 이로써, 예를 들어, 동로마 제국의 언어는 그리이스어, 서 로마 제국의 언어는 라틴어로서, 세월이 감에 따라 향후 이들 두 지역의 문화적.신앙적 차이가 점점 더 드러나게 되었다.

 

D-7. 게르만 족의 잦은 침입으로 인하여 서로마 제국이 476년에 멸망하게 됨에 따라, 로마 제국의 정통성은 자연히 동로마 제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세속적 왕권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도 베드로의 로마에서의 순교 이후부터 전통적으로 로마에 있던 지상교회의 수위권인 교황권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비잔티움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D-8. 그 이후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이단으로 단죄된 단성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함) 왕권과 신권을 한가지로 흡수 융합시키는 동방 교회의 제국 신학의 발전과 함께 강력한 통치를 하게 되어, 특히 6세기 중엽의 유스디니아누스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잃었던 (서)로마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되찾고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는 등 로마의 영광을 되살리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15세기 중엽에 오스만 터키의 침입을 받아 멸망할 때까지 동로마 제국은 약 1000년 가까이 지속하게 된다.

 

: 이해를 돕기 위한 지중해 지역에서의 역사적 고찰은 이 정도 하면 충분하다고 보여짐.

 

E. 양성설 및 양의설이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중재자(Intermediator)이며 인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임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 및 역할에 대하여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E-1. 양성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속성 (신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를 할 수가 있고, 인간의 속성(인성)을 가지고 있어야 인간과의 관계를 온당하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이들 두 성이 합쳐져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실체(위격)로 나타나더라도, 이들 고유한 두 속성을 다 가지고 있어야 구원 자체가 가능하기에, 양성설이 가톨릭 성교회의 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E-2. 양의설이란?

하느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흙으로 만드신 후에 당신의 영혼을 우리에게 숨결로 불어 넣어 주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에 하느님의 자유의지 (Divine Will)가 살짝 조금 묻어 들어와 우리 호흡 (혹은 영혼)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 (free will), 즉 이성적 의지 (Rational will) 이다. 즉 우리의 자유의지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무결하신 하느님의 자유의지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즉, 원죄로 인하여 병들었을 경우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자유의지를 거스를 수 없는 태생적 (혹은 선천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의 영혼에 담긴 이 자유의지는,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여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죄에 대한 벌로서 (그냥 있으면 자연히) 악으로 치우치게 되는 (혹은 악임을 알고도 악을 쫓아가려는) 고질적인 병이 들게 되어, 우리들의 자유의지는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가만히 있더라도 악으로 치우치는 (후천적) 속성을 가지게 된 "병든 자유의지"이다.

 

즉,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우리의 자유의지는 하느님의 자유의지로부터 떨어져 나온 상태이었기에 하느님의 자유의지와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원죄를 범한 이후부터 우리의 자유의지는 동질성의 상실, 즉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즉, 완전한 죽음 그 자체는 아니므로),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의 자유의지에 순종하려는 태생적 속성을 가지고 있음에 특히 유의하여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i) "말씀(Logos)으로 오신 분" (즉, 성령의 형상화 혹은 실체화)이기에, 즉 하느님의 자유의지(Divine Will)로 육화한 분이시기에, 하느님의 자유의지를 온전하게 가지고 계시고,

 

(ii) 또 원죄없이 인간으로 오셨기에, 호흡 (혹은 영혼) 속에 병들지 아니한 인간의 자유의지(Rational will)을 온전히 가지고 계시며,

 

(iii) 이 두 의지가 이 세상에서 (행동으로) 발함에 있어서도 (어느 한 의지만 행사함이 아니라) 두 의지를 공히 다 행사하심으로써, 거룩하신 하느님의 의지 (Divine Will)의 표출인 인류 구원을 위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완전하게 다 수행하셨기에 (즉, 부활 신앙 혹은 내세 신앙의 완성),

 

단의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자유의지 (Divine Will)만을 가지고 있다는 설)이 이단으로 단죄를 받은 것이다.

 

즉,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태생적으로 하느님의 자유의지 (Divine Will) 및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병들지 아니한 인간의 자유의지(Rational will)를 다 가지고 계시고, 또 이 두 의지를 이 세상에서 다 행사하심을 믿는 양의설이 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F.  결론 

가톨릭 성교회에서는 선행을 구원의 필요조건으로 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줄로 알고 있다.

 

즉, 구원은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크나큰 은총의 결과이므로, 하느님의 큰 은총을 입지 않은 자가 구원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떤 자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자인지는 직접적으로 알 길은 없으나,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은총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무조건적 사랑이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크게 입은 자일수록 자발적으로 (즉, 저절로 드러나는 인간의 자유의지(Rational will)의 순종적 표출로서) 타인에게 무조건적 선행을 많이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명제와 꼭 같은 내용을 역으로 표현하면 (즉, Conversely), "타인에게 무조건적 선행을 적게 행하는 자 일수록 하느님의 은총을 적게 받은 자"임을 우리가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Only God's Grace, Bible, and my Belief"를 모토로 주장하는 일부 개신교 교회에서는 선행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은총의 결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선행의) 바로 이러한 당연성 때문에 가톨릭 성교회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우리들에게 "자발적 선행 참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려고 노력하는 줄로 알고 있다.

 

[

내용추가일 (2005년 7월 21일): 매우 유감스럽게도 국내 개신교 측에서는 위의 이렇게도 간단한 선행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가톨릭 교회 에페소서 공의회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강력한 도움으로) 이단으로 단죄받은 "오로지 선행을 많이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이단인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가톨릭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음해성 오해를 펼치고 있습니다만, 이것 또한 지중해 지역의 역사를 모르다 보니 가방끈이 긴 듯한 분들께서 선생을 잘못 만나 저지르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아닐까요?

 

또 오래 전에 가톨릭 교회 529년 오랑주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받은 반펠라기우스의 주장을 가톨릭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이상한 억지 주장을 일부 개신교 측에서 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음해성 주장일 뿐입니다.

 

다음을 클릭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읽으실 수 있겠습니다.

 

"펠라기우스 이론 및 반(Semi-)펠라기우스 이론은 이미 오래 전에 가톨릭 교회에서 단죄받은 주장입니다." 요지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게시판 게시글로 바로가기.. (클릭하세요)

 

그러므로, 특히 이 글을 읽으시는 개신교 신자님들께서는 이러한 음해성 주장에 이끌려 들지 않도록 반드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본당 봉사자들이 특히 더 잘 알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무슨 댓가를 바라고 행하는 (봉사나) 선행은 이미 선행이 아니므로, 하느님의 은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러한 점을 우회적으로, 선행에 대한 댓가, 즉 "상선벌악"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내세에 가서 비로소 주어진다"고 표현하는 줄로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그리스트교 신자로서 반드시 외울 교리 2개 중 하나인 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혹은 사도신경))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 단성설 및 단의설이 하느님의 계시에 합당하지 않은 주장"임을 (위와 같은 긴 설명 없이도) 명백하게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명제와 꼭 같는 내용을 역으로 표현하면 (즉, Conversely), "그리스트교 신자 (즉, 세례를 받은 자)로서, 단성설 혹은 단의설을 주장하는 자는 신경을 올바르게 받아 들이지 않는 자"이므로, 이런 자들 중에서 정도가 너무 지나치게 되면 이단(Heresy)으로 분류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의 단성설 및 단의설 이단 논쟁을 내용을 잘 살펴 보면, 특히 20세기 들어와 새로이 고개를 들고 있는 여러가지 이설들 (예를 들어, 종교 다원 주의, 무신론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 등)의 허구성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끝으로, 일전에 선종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뒤를 이어 어제(4월 19일) 새 교황으로 선출되신 라칭거 추기경님 (즉, 베네딕토 16세 새 교황님)께서는 20세기에 들어와 정통 교리를 어지럽히는 이설들에 대하여 매우 우려하고 계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서는 다음의 내용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cateforum.com/history/H-025.html 에 있는 내용 중에서 "현대의 신학사조에 대한 교회의 입장" 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cateforum.com/history/content.html (서강대학교 김웅태(요셉)신부의 저술 내용)

 

 

위의 글 내용에 본인의 무지로 인한 큰 과오가 없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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