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대한민국 法治와 종교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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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4-01-02 ㅣ No.1011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한경직(1902∼2000) 목사, 성철(1912~1993) 스님, 김수환(1922∼2009) 추기경. 종교 지도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평생에 걸쳐 행동으로 보여준 대표적 인물들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천근의 무게를 지녔던 이들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도 권위를 잃지 않았다. 구체적 발언뿐 아니라 삶 자체가 종교적 또는 사회메시지이고 교훈이었다. 각각 개신교·불교·천주교의 원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등불’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어 국민적 추앙이 지금도 여전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 종교 지도자 일각이 국민의 존경은커녕 우려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사회에 절망을 안겨주기까지 하고 있어서 더 그렇다.

일부 개신교 지도자의 일탈은 대한민국 성직자 최초로 근로소득세를 자진 납부하고, 청빈·겸손·
사랑을 일관되게 실천해 ‘종교계의 노벨상’인 템플턴상을 1992년에 받은 한경직 목사의 생애를 떠올리기조차 민망하게 한다. 불교 일각의 위선적이고 경박(輕薄)한 처신은 조계종 제7대 종정에 1981년 추대되고도 서울 조계사의 추대식에 참석하지 않은 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는 법어(法語)만 보냈던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욕보이고 있다. ‘중이 도시의 번잡한 집회에 나서기 위해 한때나마 산중을 벗어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취지에서 가야산 해인사를 떠나지 않았던 그가 행동으로 전한 가르침을 배반하는 승려가 적지 않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지켜주면서 민주화 등에 큰 족적을 남기고도 스스로 ‘바보’라고 부르며 ‘모든 잘못이 내 탓’이라고 한 김 추기경이 선종(善終) 직전 마지막으로 “(모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당부한 말까지 까맣게 잊은 듯한 가톨릭 성직자 역시 적지 않다.

전국철도노동
조합의 불법(不法)파업을 두고 종교 지도자들이 보이는 처신만 해도 그렇다.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은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 경내로 숨어든 하루 뒤인 지난 25일 버젓이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그 배경이 무엇이겠는가. 어느 스님의 말대로 최근 몇 년 동안 천주교 명동성당은 범법자의 은신처가 되기를 거부해온 상황이어서 조계사를 도피처로 삼고 조계종을 우군(友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계산 외에 달리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박 부위원장이 “종교계가 나서서 중재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핑계로 삼아 종교 지도자들이 불법을 사실상 비호(庇護)하고 있지 않은가. 개신교의 대한성공회 신부 3명은 범법자를 찾아간 뒤 “불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지지하고 기도하는 마음이다. 여론도 지지하고 있으니 힘내라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행정 수장(首長)이 자승 스님인 조계종 또한 “조계사는 24시간 기도와 수행을 하는
신성한 공간이어서 정치적인 행위·집회 등 집단 이기적인 장소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면서도 도피중인 범법자에게 거처를 제공했다. 범법자를 꾸짖고 최소한 자수라도 권유해야 마땅한데도, 그러진 않고 ‘중재’를 하겠다면서 코레일 사장을 오게 만들어 범법자와 어색하게 악수를 하게 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이런 행태는 종교 시설이라고 해서 치외법권(治外法權)지대일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법치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노조가 도와달라고 찾아왔는데 사회적·인간적으로 내칠 수는 없다”고 둘러댔지만 본질적으로는 불법을 감싸다시피 한 것이다. 이는 국민 혈세(血稅)를 매년 5000억 원 안팎씩 지원받으면서도 ‘성과급 잔치’는 거르지 않는 식의 어이없는 기득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 “그냥 이대로”를 외치는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에 휘둘리는 것이기도 하다. 지도자는 영역을 막론하고 국민적 존경까진 아니더라도 손가락질은 받지 않아야 한다. 성직자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법치를 조롱하는 행태로, 그것도 일상화하다시피 하며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성직자가 드물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행태도 더하면 더했지 뒤지진 않는다. 종북(從北) 언행까지 일삼는 사제(司祭)들도 있지 않은가. 개신교·불교·천주교 등 주요 종교의 지도자가 범법을 감싸며 ‘대한민국 법치(法治)’를 무시하는 행태로 국민의 걱정을 키우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김종호/논설위원-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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