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강론]성모의 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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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2-05-29 ㅣ No.2794

사무실 카타리나 자매님의 강권(?)으로

성모님의 밤 강론을 올립니다.

내년에 같은 강론을 써먹기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슬퍼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제 묵상을 나누는 마음으로

강론 글 올립니다.

 

강론은 읽는 글이 아니라 듣는 글이기에

읽을 때와 들을 때의 맛이 조금은 다릅니다.

어쨌든 도움되시기를 바랍니다.

 

피정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강론은 아래에...)

 

 

성모의 밤                                                               2002. 5. 28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모 성월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참으로 아름다운 밤입니다.

성모님께 바쳐진 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시간을 성모의 밤이라 부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짧게나마 성모님의 영성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시간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슬픔을,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성모님께 봉헌하고자 합니다.

거룩하신 어머니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위로와 도움을 아낌없이 주실 것입니다.

성모님은 위로의 어머니이시며 도움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입을 통해 마리아는 나이 든 엘리사벳이 임신하였다는 말을 듣습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진 지 벌써 여섯 달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엘리사벳은 걱정이 태산같았을 것입니다.

"이 나이에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아이는 과연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

"곁에 누군가가 있어 나를 도와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 든 엘리사벳의 걱정이 어떻게 마리아에게 전달되었는지는 몰라도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도와주러 유다 산골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마리아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마리아는 남들의 걱정을 직관적으로 알아채는 놀라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남들의 걱정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만드십니다.

바로 거기에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마리아의 방법이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때에도 그랬습니다.

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못내 걱정스러우셨습니다.

사실 그 걱정은 혼인 잔치를 맡은 사람의 몫이었지만

그네들이 알아채기도 전에 마리아는 당신의 걱정으로 삼아버립니다.

그것은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배려하시는 사랑의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드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포도주가 떨어져가고 있구나!"

그리곤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남들의 걱정을 알아채시고 그들을 차마 어려운 상황에 놓아 두지 못하시는 분!

세상의 어떤 어머니가 자녀들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그래서 마리아의 이름은 어쩔 수 없이 또 어머니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어머니의 이러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게 해 주십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딸입니다.

이 사람은 걱정이 많은 당신의 아들이며 딸입니다.

어머니, 이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

 

그 날 이후로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역시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분"이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기에

이제 우리 모두는 "은총을 가득히 입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러나 결코 인생의 화려한 길을 걸어가신 분이 아닙니다.

평범하고 순탄한 길을 걸어가지도 못하셨습니다.

그분의 길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져야 했던 분,

약혼자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돌에 맞아 죽을 운명 앞에 몸 떨어야 했던 분,

따뜻한 방은 고사하고 찬 바람 들어오는 축사,

가축들의 오물 냄새 가득한 외양간에서 해산해야 했던 분,

 

핏덩이를 안고 머나 먼 타향, 에집트로 피난길을 떠나셔야했던 분,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가슴을 쓸어 내리셨던 분,

그리고 마침내,

그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 고개 떨구셨던 분,

아드님의 시신을 얼싸안고 망연자실 피눈물을 흘리셨던 분,

 

마리아는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보다 더 불행한 어머니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을 잃어버리면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마리아는 영혼에 상처를 입었고 인간의 절망을 체험했습니다.

마리아는 인생의 고통과 슬픔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한 분이십니다.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분 마리아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머니로 내어 주십니다.

"이 분이 당신의 어머니입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우리 슬퍼하는 사람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희망의 길입니다.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있기에 우리는 어머니에게 우리의 아픔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기꺼이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기에

우리는 오늘 밤, 감히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놉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우리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우리 비록 오늘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 일을 해 주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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