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2월호 [생활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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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6-01-19 ㅣ No.44

 

한 남자가 있었다. 사진작가로 부와 명예를 얻은 그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는 소위 ꡐ돈 되는 사진ꡑ만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례식 사진을 찍어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성당에 가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세례식이 끝난 후 성당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ꡒ너는 이제부터 나를 사진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여라.ꡓ

잠에서 깬 그는 하느님의 모습을 담기 위해 그날부터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헤매기 시작했다. 먹는 일도, 잠을 자는 일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 카메라에 담는 것뿐이었다.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그를 사람들은 위선자라 여기며 손가락질했지만, 그런 비난과 욕설도 그를 멈춰서게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수년 동안 세상 곳곳을 다니며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그가 찾던 하느님의 모습은 끝내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병들고 지친 몸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은 듯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을 불렀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부족함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했다. 그런 그에게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ꡒ내 아들아, 내가 없는 곳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너는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과 내가 창조한 것들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너의 사진 속에 잘 담아 주었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었고, 언제나 너의 사진 속에 내가 있었느니라.ꡓ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감격하여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을 찾고자 함이 내 욕심이었나요

당신을 보고자 함이 헛된 꿈이었나요

이렇게 오랫동안 주님만을 바라보며

걸어온 삶이었지만

가려진 주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죠


힘들어 지친 후에야 걸어온 나의 길에

당신이 함께했음을 뒤늦게 깨달았죠

언제나 어디서나 숨쉬는 그 순간마다

내 곁에 계신 주님을

이제 알아요 날 위한 그 모든 사랑을


세상 모든 곳에 함께하시는 분

세상 아름답게 지으신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의 날개 7집 中 ꡐ세상 모든 곳에ꡑ)

2003년 서울 아현동성당에서 그곳 청년들과 함께 뮤지컬을 공연했었다. 어느 사진작가의 이야기는 바로 그 뮤지컬 속 주인공 이야기다. 청년들과 함께 뮤지컬 대본을 구상할 때, 내가 언젠가 ꡐ네 번째 동방박사ꡑ를 읽고 크게 감명받아 눈물 흘렸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 명의 동방박사와 함께 아기 예수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세 가지 보석을 준비했던 또 한 명의 동방박사. 그는 세 명의 동방박사를 만나러 가다가 죽어가고 있는 병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를 도와주었다. 결국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해 그들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떠나지 못했다. 혼자 어렵게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이미 헤로데를 피해 그곳을 떠나신 후였다. 네 번째 동방박사는 다시 예수님을 찾아나섰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외면하지 않고 늘 그들을 도와주었다. 가지고 있던 보석으로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벌거벗은 자들을 입히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갇힌 자들을 위로하며 메시아를 찾아 헤맨 지가 어느덧 33년이 지났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와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만나러 가다 쓰러졌는데 그에게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ꡒ너는 내가 배고플 때 음식을 대접하였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다. 또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옥에 갇혔을 때 찾아보았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니라.ꡓ

그의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어줌으로써 드디어 네 번째 동방박사는 왕(메시아)을 만난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경배 드리려던 메시아는 베들레헴에만 계셨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도 성당에만 계신 것이 아니며, 세상 모든 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뮤지컬 속에 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ꡐ소명ꡑ이라는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청년들과 함께 대본을 쓰고 각 장면에 맞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우리 안에 하느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뮤지컬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던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ꡒ신부님, 저는 그동안 성당을 다니면서 하느님이 제 곁에 계시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하느님이 저의 마음에, 저의 말과 행동 속에 늘 함께하셨다는 걸 알았어요.ꡓ

사제는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목자라고, 누구나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을 그분께로 이끄는 것은 내가 하는 백 마디의 강론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열려있는 그들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신자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체험하며 감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고 나를 이렇게 버려두시는지 모르겠다며 하느님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하느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가 당신을 찾는 것보다 더 애타게 우리를 찾으시고 애처롭게 지켜봐 주신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만 주님을 찾고, 그분은 내 곁에 계시지 않다고 단정지어 버리곤 한다. 내가 닫혀있는 그들의 마음까지 열어줄 수 있는 그런 사제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저절로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우리의 마음을 조금만 열면 지금 바로 내 곁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때로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 부축해 주길 기다리는 지친 사람의 모습으로, 또 어떤 때는 소외된 사람을 돕는 선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에 하느님이 언제 함께하셨는지 한 번쯤 잠시 눈을 감고 돌이켜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삶 속에 늘 함께하셨던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자.

_이철 니콜라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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