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3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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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0-10-28 ㅣ No.1166

                        연중 제30주일(나해. 2000. 10. 29)

                                                   제1독서 : 예레 31, 7 ∼ 9

                                                   제2독서 : 히브  5, 1 ∼ 6

                                                   복   음 : 마르 10, 46 ∼ 5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세상이 화

려한 옷으로 바꾸어 입고 있는 가을입니다.  특히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저

자연의 변신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캄캄한 곳을 어떤 남자가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소경이

등불을 들고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당신은 소경인데도, 왜 등불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소경은 "내가 이것을 들고 걷고 있으면 내

자신이 걷고 있는 것을 눈뜬 사람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탈무드에서)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정상인보다 더 위대하게 된 헬렌 켈러가

정상인에게 주는 충고의 글이 있습니다.  그는 맹인인 자신이 맹인이 아닌

사람에게 주는 힌트라고 했습니다.  "맹인인 내가 맹인이 아닌 당신에게 한

가지 힌트밖에 줄 수 없다.  내일이면 장님이 될 사람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

하라.  다른 감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치 내일이며 귀머거리가 될 사

람처럼 그렇게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도록 하라.  마치 내일이면 다시는 아

무 것도 못 만지게 될 사람처럼 모든 것을 만지며 그 촉감을 즐기도록 하라.  

마치 내일이면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게 될 사람처럼 그렇게 꽃의 향내를

맡고 음식의 냄새를 맡도록 하라."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리고에 들렀다가 떠나가

실 때 바르티매오라는 앞못보는 거지를 만나십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이

귀찮다는 듯 조용히 하라고 꾸지람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사회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대화의 기능을 잃게 합니다.  더 더욱 괴로운 것은 다른 이들과

이해와 통교를 할 수 없다는 소외감입니다.  소경은 인간 사회에서 단절된

사람입니다.  소외되고 유대감도 없는 고독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 가지고도 오해를 하고 오류를 범하는데 체험하지 않

은 것은 이해하거나 수용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바르

티매오 주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바르티매오

의 마음을 읽기보다는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그를 사람들에게서 더 격리시

키고 소외시키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체험하는 고통

은 소외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공동체로부터 단절되고 소외되었다는

것이 그들을 장애보다 더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바르티매

오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겉옷을 벗고 벌떡 일어나 예수

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는 위선이나 자존심 체면 등을 겉옷처럼 벗어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바르티매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숨기

지도 속이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비천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기에 예

수님께 자비를 간청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또 다른 불행은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더 악화되고 변화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우리의 비천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위선과 교만의 겉옷을

벗어버릴 때 우리는 삶의 눈을 뜰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당황해 하거나 자신 있게 나의 구원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할 때, 대개는 과거의 구원받은 경험(각자가 겪은 예수님 체

험)으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정작 오늘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믿음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앞 못보는 거지보다 더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소중히 보는 앞못보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소경인

바르티매오가 자신을 인정하고 드러내며 예수님께 구원을 얻었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인정하고 드러냄으로 우리도 구원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모두를 한 형제 자매로 인정하고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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