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동성당 게시판

새 필통, 그리고 소박한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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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창 [wkdr] 쪽지 캡슐

2000-04-06 ㅣ No.1241

음~드디어 내가 필통을 새로 샀다.내가 아르바이트 하는 팬시뱅크에서

그렇게나 눈독 들이던 푸 클래식 필통을 드디어 사게 되었다.

검은색의 합성피지에 심플한 디자인을 가진 필통이다.

아시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필통은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

때 샀던 깡통 필통이다.올해로 이젠 딱 십년이 다 되었다.

새학기때 샀었으니깐.

항상 회합때 그걸 들고 다니면 다른 교사들이 새 필통을 사준다며

이야기 하곤 했다.그때마다 난 십년을 채운다며 사양했다.

흑,드디어 십년을 채웠다.

사실,말이 났으니 말이지 필통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약간

창피한 적도 많았다.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면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어

천천히 걸어가고(물론 거의 신경도 안썼지만)사람들이 많은 데서

그 필통을 꺼내기가 좀 쑥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나의 십년간의 역경을 함께 해준 필통이다.

그 말많던 중학교 시절,그래도 다시 일어서려는 고등학교 시절,

한창 기고만장하던 대학교 새내기시절,언제나 수업시간과 내 책상위에선

그 필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젠 그 필통을 나의 소박한 박스에 넣으려고 한다.

소박한 박스란 내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 물건을 모아놓은

박스다.

오늘 오랜만에 그 박스를 열어보았다.최근엔 왠일인지 그 박스를 열어보지

못했었다.그 만큼 옛것을 쉽게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박스를 열어보니 너무나 기분좋은 일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초등학교때 짝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는데,전학을 갔다.그런데 고백을

못해서 중학교때 주소를 알아내어 편지로 고백을 하였는데,

주소가 불분명해서 돌아왔다.그것때문에 엄마한테 들킨 적이 있었던 편지,

그게 그 안에 있었다.그리고,한창 뭔가를 모으기 유행하던 시절,모아두었던

카드,딱지,고무로 된 장난감,한 삼십개 정도되는 샤프심 각까지

모두 그 안에 조용히 있었다.여자한테 처음 받았던 그래서 너무나 기분좋았던

카드도 있었고,친구 진오가 어렸을때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보냈던 편지도 있었다.

그리고 초등부 주일학교 시절 피정때 썼던 롤링페이퍼도 뒤져보니

큰카 누나의 글씨가 새롭게 느껴졌다.

아무튼 그 소박한 박스를 열어보니 기분은 좋았다.

항상 우리가 스쳐가는 그 조그만한 것들이 먼 훗날 그렇게나 기분이 좋은지는

알고 있었지만 오늘 난 새삼 다시 깨달았다.

이걸 계속 모았다가 늙어서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물건도 이런데.함께 했던 사람들을 먼 훗날 사진으로 함께 했던 모습

역시 매우 기쁠것 같다.그렇게 생각하다 아쉬운것은 구구 교사들과 함께한

사진이 없다.제르도 세레나도 아마 나랑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육학년 졸업 피정 사진도 못 찍었다.흑~

아무튼 감회가 새로운 길창이였다.

필통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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