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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의 영성" - 안셀름 그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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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호 [kgh0727] 쪽지 캡슐

2006-12-06 ㅣ No.7187

andrew:예전에 "아래로부터의 영성"이란 책을 추천 받았는데요.

 

이 책의 좋지 못한 점이나, 가려 읽을 부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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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안셀름 그륀 은 ..읽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빛나는 구름 | 2006·11·16 01:44 | HIT : 265 |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이지만 도움이 되셨음 합니다.

독일 베네딕도회 출신인 안셀름 그륀의 저서들은 국내에 매우도 널리 퍼진 책입니다만 그 분의 책은 부족한 저로썬 읽지 않으시면 싶습니다.

그러한 서적은 "아시아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으로 유명한 교황청과 크게 대립한 뉴에이지 종교다원주의 영성 1998년 발표의 '아시아 성령론'과 관련이 밀접한 학자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현재 독일 가톨릭 교회는 가장 반교황청 현대주의가 극심한 지역 중의 하나인데요. 국내의 경우도 독일 유학파 사제들 거의 태반이 반교황청 사상학파를 이루어 반발하는 중이기에 교황님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안셀름 그륀은 심리학자인데 교황청의 뉴에이지로써 진단한 [칼 융의 심리학]까지를 포용하고 있습니다.

안셀름 그륀은 처음 등단 당시, 이단시비로써 교회의 정통학자들에게 큰 반발을 샀던 분인데요..현재 현대주의 종교다원주의 쪽 학자들과 분야 사이에 널리 인기있는 분입니다...

(예를 들어 뉴에이지 향심기도 쪽에서도 스승으로 여기고 있는 분일 수 밖에 없구요..)

최근 십여년 사이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온 안셀름 그륀은..그러나 그의 서적을 읽게 될수록, 정통적 관상이나 교리에서 벗어나는데 문을 열게 되고, 거부감이나 이질감 없이 점차 현대 심리학과 타종교적 결합에 점차 심취하게 된다고 여겨집니다..

(베네딕도 16세 평전 참조하시면 참으로 좋습니다.)

쓰고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물론..이미 국내에 널리 홍보되어 있고 인기리에 심지어 성모님 자녀들에게까지도 이제는 널리 퍼져가는 중이라는 실정은 이미 알고 있구요..

안셀름 그륀은..만약 단지 그가 한 사람의 심리학자로써 라면은..물론 인간이 자신의 자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여 그를 통한 세상에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도하는 점에선 비종교적 관점에선 물론 매우도 훌륭한 면모는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오히려 어느 선까진 많은 도움을 느끼는 이들도 종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 신자가 단지 그것만으로 만족하여 그 책을 긍정하기엔. 그 책엔 안셀름 그륀의 저서엔 궁극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한 심리학적 자아 긍정이라는 것이 미치는 범주가 과연 예수님이 주시는 그리스도교적 은총을 통한 무엇.. 즉 온전한 그리스도교적 진리.영성.신관, 세계관.자아관으로 우리를 올바로 이어주는 것인가 아니면, 결국 우리를 이방 종교적 성향으로의 이탈로 유도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불교등의 타종교 신자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를 그러한 여러 부분들.. 그러나

믿음 안에 기독교적 해석에서는 크나큰 문제를 야기하는 그런 문제들 때문에 결국, 이 심리학자의 다양한 영성들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더욱 큰 문제는..이런한 방식으론 우리가 인간학적 존재론 철학의 범주에선 머무를 순 있으나, 참된 기독교적 기도로는 전혀 넘어가질 못하고 가톨릭 종교 서적으로써 마땅할 필수조건의 큰 은총을 오히려 엄청나게 저해한다는 것입니다..

그 한가지 예로 고해성사 교리에 대한 그륀의 이해만을 봐도 자비의 예수님의 성령의 참된 은총과는 참으로 이질적 인간심리학적 다른 관점

(화해성사의 개념과 주체, 성령의 영신적 관점들..죄 사함의 신비체적 사제권, 기독교적 빠스카 죄와 용서 개념에 대한 왜곡. 선과 악의 대립을 무효화 시킴) 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특히

국내에서 안셀름 그륀은 "참 소중한 나" "아래로부터의 영성"이란 책으로 은연중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에 문을 열게 하는 책을 출판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국내에 분도 출판사등 교황청을 거부하여 등을진 출판사를 중심으로 크게 홍보되어 왔습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안셀름 그륀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특히 [참된 자아] [참된 나]라고 불리는 뉴에이지 개념(이 '참된 자아'개념은 교황청 뉴에이지 문헌에서 뉴에이지라고 경고했습니다)에 쉽사리 동화되게 됩니다.

(정통교리인 향주삼덕, 자기멸시의 신(神)중심적 가치관이 아닌 휴머니즘 사상으로 치우치게 합니다.)

물론 어떤 이는 심리적 치유를 얻었다고도 말을 하지만..그러나 아쉽게도 그러한 중에 우리는 어느새 종교다원적 성향하에 내가 점차 옮겨가 있는걸 발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참으로 우려되는 책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안셀름 그륀 책들의 문제점은, 그리 쉽사리 일반 신자들이 분별해내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구요.

(교황청이 공식문서로써 우려한 토마스머튼, 에크하르트, 앤소니 드멜로 신부의 경우도 그처럼, 분별이 쉽지 않은 경우의 이들입니다)

다시금 요약드리자면

안셀름 그륀은 종교다원주의의 영성에 속한다고 알구요.

성경해석도 그래서 다분히 종교 다원주의적 심층 심리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종교다원적 견해는 심지어, 세상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이들(타종교인)에게 성경이란 그들 나름의 타종교인으로서의 해석으로서 종교혼합적 그런 의미가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적 견해를 전파하는데 큰 몫을 한 분이라 압니다.

그러나 참된 성경해석은..반드시 성경 그 자체를 자유로이 누구든 주관적으로 해석해선 안되는 것이오며...반드시 그리스도의 신자들의 하나된 믿음 안에서 성전(거룩한 전통),

교도권의 이 세가지의 일관된 정통 유일무이한 가르침.

가톨릭교리서의 한가지 해석에 따라 읽히고 올바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교황청도 이를 교회 문헌으로 발표하였습니다.

그외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라는 서적 참조)

1998년 아시아 교회가 선언했던 안타까운 뉴에이지 신학과 그 사상에 대해 알아보시면 도움되실 듯 하네요.

안셀름 그륀이 말하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이란 1998년 교황청이 종교다원주의라고 크게 경고한 뉴에이지설..바로 아시아 주교회의 신학자들이 그때 1998년에 창조하여 발표한 (예수님 중심성을 도외시한) 뉴에이지적 성령론인 "아래로부터의 성령론"과도 서로 같은 맥락이겠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종교다원주의적 삼위일체 이단설과 깊숙히 관련되고 있습니다.(삼위일체 중, 삼위의 하느님이신 성령께서는 `일위 성부에게서뿐 아니라 이위 예수님께로부터도 발원하시는 분이다'라는 정통적 삼위일체교리 교회 가르침에 대해, 결국 불순명으로 부정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바로..뉴에이지를 나누는 큰 분기점입니다.) - 참조서적. 주바티칸 대사 홈페이지 성염대사 뉴에이지신학 강연록. 그외.. 국내학자들의 그릇된 토착화 관련서적, 정종휴 교수 번역 현교황님의 올바른 토착화 이론 서적들.

요즘 게시판에 현각스님의 글등 종교다원주의 쪽을 하시는 분들이 여기를 방문하시는걸 알게 됐기에 혹시 부족한 저와 다른 의견 계신 분 있으실까 생각도 됩니다만..그러한 분들께 그저 너그러운 이해를 청해봅니다..

빛나는 구름 참조가 되실 문헌 -베네딕도 16세 평전 중에서-

[라칭거는 동양의 영성과 서양의 철학적 상대론이 결합하는 것을 경고한다.

이 결합은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명확한 발언을 회피한다.

이는 마치 객관적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 더욱 계몽된 것처럼 인식시킴으로써 상대론에게 정신적인 위엄을 제공해 준다고 라칭거는 말한다.]- 나아가 동양영성과 결합된 심층 심리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라칭거는 문화를 진리로 부터 가로막는 문화 상대론 이야 말로 "우리시대의 가장 중대한 문제" 라고 일컫는다.]

[보편적 주장을 포기한 후 남는 것은 성서의 전통 중에서 정선된 요소들이지 성경 자체에 대한 믿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의 오만하고 무례한 사례로 선교가 인식되어, 좋은것과 적절한 것이 사라져 버린다."]

아래는 베네딕독 16세 평전의 부분 발췌입니다.

 

라칭거는 흔히 반복되어 등장하는 '토착화(inculturation)'라는 전문용어가 문화를 빼앗긴 종교(그리스도교)가 신앙과 관계없는 문화(예를 들어 아시아의 문화)를 만난다고 암시하기 때문에 사실상 잘못된 명칭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하나의 문화라는 확신이 그것을 개조하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라칭거는 우려를 표명한다. 라칭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은 스스로를 역사에 속박시켰다. 그리고 역사는 또한 이제 그의 것이며 우리는 이를 벗어 던질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빼앗고 다른 몸을 그에게 부여하다는 의미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 강생의 의식을 되풀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라칭거는 문화를 진리로 부터 가로막는 문화 상대론 이야 말로 "우리시대의 가장 중대한 문제" 라고 일컫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실천이 진리를 대체하여 종교의 축을 흔들어 놓은 이유이다.

우리는 무엇이 진리인지는 알수 없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말해 성경에서 비롯된 단어를 세속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의미로 돌려 사용한 '하느님 나라(kingdom)'로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믿음보다는 행동의 차원에서 이렇듯 통일을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교로부터 그 내용적인 측면을 고갈시키는 것"이라고 라칭거는 말한다.

"교회 본위, 그리스도 본위, 하느님 본위의 모든 것들이 모든 종교의 임무가 되어버린 '하느님 나라' 중심주의에 밀려버리고, 모든 관점과 기준이 그에 맞춰지게 되어 버렸다."

이에 덧붙여 라칭거는 예수회신부 자크 뒤피의 연주를 각주에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이는 뒤피에게 곤경을 의미하는 최초의 징조였고, 실제로 5년후 그는 라칭거의 신앙교리성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된다.

라칭거는 또한 상대론의 교의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선교활동, 즉 개종활동을 약화시킨다고 비난한다.

"스스로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의 오만하고 무례한 사례로 선교가 인식되어, 좋은것과 적절한 것이 사라져 버린다."

라칭거는 동양의 영성과 서양의 철학적 상대론이 결합하는 것을 경고한다.

이 결합은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명확한 발언을 회피한다.

이는 마치 객관적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 더욱 계몽된 것처럼 인식시킴으로써 상대론에게 정신적인 위엄을 제공해 준다고 라칭거는 말한다.

그는 힌두교측의 예로 20세기 사상가 라다크리슈난 Radhakrishnan 을 제시한다.

가톨릭측의 예로는 라이몬 파니카 Raimon Panikkar 신부를 언급한다.

그리스도론의 신조들은 가역적이지 않다는 파니카의 주장(예를 들어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는 단지 예수만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 라칭거는 이러한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불교나 힌두교등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그리리스도를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칭거는 오늘날의 상황이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었지만 이교도의 신앙이 여전히 종교상의 선택권으로 남아 있던 4세기말과 비교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교를 무력으로 진압하는데 실패하면서, 심마쿠스 Symmachus, 율리아누스와 같은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신조를 '단지 신에게 향하는 많은 길들 가운데 하나로서만 보게 함으로써'그리스도교 신앙의 골자를 들어내 버리려 하였다고 라칭거는 말한다.

"오직 하나의 길을 감으로써 그렇게 위대한 신비를 계승할 수는 없다."

심마쿠스는 승리의 여신상을 복원시키자고 원로원에 탄원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교부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보편적 주장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고 라칭거는 말한다.

"보편적 주장을 포기한 후 남는 것은 성서의 전통 중에서 정선된 요소들이지 성경 자체에 대한 믿음은 아니기 때문이다.(중략) 이러한 근본적인 결정이 없다면 그리스도교 신앙도 없다."

교부들이 '사원'들을 인수하여 그것들을 '교회'로 바꾸거나 이교도의 조상들을 '성인의 초상화를 위한 기초로 활용한 것'은 이들이 토착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교도의 조상을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한 것은 종교의 상대적 철학이 아니었다. 사실상 종교의 상대적 철학은 처음부터 이교도의 조상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06·11·16 02:06

andrew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추천해 주시던데. 신부님들꼐서도 저는 잘 모르지만 "심리학 영성" 이란 주제로 강론을 하십니다.

도무지 저로선 그분의 강론을 이해 할 수 없답니다.

신앙이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신앙이 되어 예수님을 위한 희생과 보속은 안중에도 없답니다..

앞으로의 교회가 어찌될지,, 성모님께서 말씀하신것 처럼 참으로 기도하고 기도해야 할 때 인것 같습니다. 자세한 설명 정말 감사드리구요. 앞으로도 쭉~부탁드립니다. "빛나는 구름"님의글 정말 잘 읽고 있어요^^

 

평화~*

06·11·16 18:50

히야친타 저도 저희 본당 신부님의 추천도서 중에서 불교 관련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속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성령을 만나고 주님을 진심으로 만났다면 법정스님책이나 뭐 그런것들이 그렇게 의미가 있게 다가 왔을까?

싶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양들도 깨어 있어야 하고, 기도를 해 주어야 하고 ,목자들에게 무조건 순명하기 보다 좀더 거룩한 순명을 할때인것 같아요.

목자들이 자꾸 세속적으로 치우쳐지는 것도 목자들 탓이 아니라 사탄의 음모이겠지요?

06·11·17 10:53

박로사 빛나는 구름님의 정보에는 열정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히야친따님의 댓글을 읽으니 우리나라 교회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불교 교리 자체가 사탄이 하와를 홀릴때 썼던 그 말과 하등 다를게 없는데(선악과를 먹으면 하느님이 될수 있다,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신)가 될수 있다)... 그 좋고 달콤한 말(법정스님의 책이나 다른 뉴에이지적 책들)들의 향연속에 하느님이 안계시는 공허함을 안다면 그런 책들은 절대 권하지 않으셨을텐데... 더욱더 기도를 많이 해야겠어요..ㅜㅜ

06·11·18 03:08

남현우 안셀름 그륀은 융의 심층심리학을 오랫동안 전공한 베네딕토회 사제입니다. 융의 심리학의 전공한것 자체가 잘못이라기 보다, 그의 영성이 융의 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아래로부터의 영성, 내안의 샘은 심리에서 말하는 자아의 개념들을 이름만 바꾸어 대체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음은 안셀름 그륀과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그륀신부: “인간의 내면에 이미 성령의 샘과 같은 것이 내재돼 있어서 자기 자신과 투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샘이 이들 안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두꺼운 콘트리트 벽이 이들과 샘을 가로막고있습니다.”

-‘내 안의 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나요?

그륀신부 : “수도자가 기도하려고 하면 먼저 자신의 생각과 갈망이 등장합니다.그는 이런 생각과 갈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것들과 화해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것들을 변화시키시도록 드러내놓아야 하지요.”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말이 불교의 선과 비슷하게 들립니다.

그륀신부 : “저 역시 과거 선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묵상을 새로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묵상은 불교의 참선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동방교회 전통 중에 ‘예수기도’가 있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 숨을 들이쉬면서 ‘예수님’, 숨을 내쉬면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반복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목표는 말에 집착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잠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의 선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륀신부 :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차이가 있어요. 불교에서는 자기 안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욕망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저는 ‘사라진다’대신에 ‘화해하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어요. 욕망 속에는 하느님을 향한 동경이 들어있습니다. 즉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에는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바램이, 성에 대한 욕망에는 자신을 초월해 남과 하나가 되려는 바램이 들어있어요. 욕망이 없어지면 삶은 활력을 잃게 됩니다. 욕망과 우리는 등돌리는 관계가 아니라 대화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성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어떤 것인가요?

그륀신부 : “심리학적으로 참된 관계를 이끌어 갈 능력이 부족할 때 남녀는 급하게 성관계로 직행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건강한 남녀 관계는 천천히 만들어집니다.”

06·11·22 19:03

大Theresa 그러면 '예수기도'라는 것은 해서는 안되는 건가요? 주로 어떤 때 바치는 기도인지요?

06·11·26 20:59

빛나는 구름 찬미 예수 마리아 요셉

안녕하세요. 예수기도에 대해서는 따로 올려 드렸습니다.

로사님이 언급하셨던 부분...불교개념과 원죄(선악과)와의 관련성은 교회의 위대한 교부들의 신학과 관련이 있답니다.. 교황님도 불교 쪽의 이론이 궁극엔 뉴에이지에 큰 역할을 하리라 예언적으로 우려하셨으니까요... (차동엽 신부님, 박도식 신부님 책에도 창세기 첫범죄 부분을 다루며 인간 교만,원죄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안셀름 그륀은 성경해석에 있어 타종교 개방 뉴에이지영성을 주장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뉴에이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교의 참된 성경해석은 '믿음' 을 전제로 한 오직 하나의 진리와 하나의 해석 밖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대에 등장한 해석학 개념이란 사실, 현대주의의 산물 아닌지요..

이 부분 문제를 교황님께선 [보편적 주장을 포기한 후 남는 것은 성서의 전통 중에서 정선된 요소들이지 성경 자체에 대한 믿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개탄하셨으니 말입니다...

 

 

http://peace.new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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