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잠자리 되어 날고 싶대요, 北에 계신 엄마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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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4-01-01 ㅣ No.10116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양승원 채널A PD(37)는 지난 1년간 서울에 있는 집보다 경기 안산에 위치한 탈북청소년공동체 ‘우리집’에 더 오래 머물렀다. 김신혁 군(8)을 만나기 위해서다. 신혁이는 지난해 초 방영된 채널A 다큐멘터리 ‘특별취재 탈북’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꽃제비 소년. 양 PD는 2012년 11월 신혁이의 탈북 여정에 동행한 이 다큐의 연출자다. 그는 한 달 후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온 후 신혁이를 다시 만나 그로부터 1년간의 정착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원래 남한 생활은 초반 두 달 정도 찍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우리집’의 마석훈 대표가 ‘최소 1년은 지켜봐야 탈북자 아이들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옳았죠.”

그 사이 신혁이는 많이 변했다. 100cm에 불과했던 키는 1년 새에 20cm 이상 컸고, 몸의 부기도 빠졌다. 몇 달 전까지 경찰관이 꿈이라고 말했던 아이는 이제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한다. 양 PD는 “겉으로는 남한 아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낯선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얼마 전 임진각에 갔는데 신혁이가 ‘잠자리가 되어 북한에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 좀 놀랐어요. 북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있는 줄 알았는데 헤어진 엄마나 친구에 대한 그리움도 남아 있었던 거죠.”

신혁이를 목말 태운 양승원 PD. 1일 방송되는 채널A ‘신년 특별기획, 신혁이’의 한 장면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위해 1년간 촬영한 분량이 5시간짜리 테이프 120개가 넘는다. 채널A 제공

촬영을 진행하며 신혁이와 정도 많이 들었다. 신혁이는 양 PD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유달리 따른다. 양 PD 역시 신혁이에게 “마치 핏줄 같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다만 애틋함이 커질수록 촬영은 쉽지 않았다.

“신혁이가 여전히 한글을 잘 못써요. 한글 공부 안 하겠다고 짜증을 내는데 왜 이렇게 속상한지…. 평소의 저라면 개의치 않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을 텐데, 결국 촬영을 중단하고 아이를 어르고 달랬죠. 촬영하러 갔다가 하루 종일 아이와 놀다 온 날도 많아요.”

양 PD는 “신혁이와 만나면서 상처 받은 아이 한 명이 여러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자신 역시 많이 달라졌다.

“신혁이를 통해 탈북자 문제나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됐죠. 무엇보다 내가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게 좋아요. 쇼핑을 할 때 자꾸 아이 옷이나 장난감에 눈이 가요. 물론 여자 친구는 좀 싫어하지만요.”

신혁이의 1년 정착기를 담은 ‘신년 특별기획, 신혁이’는 새해 첫날 오후 9시 50분부터 2부 연속으로 방송된다. 양 PD는 “앞으로도 신혁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년 같은 밀착취재는 아니겠지만, 어른이 될 때까지 자라는 모습을 틈틈이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에요. 언젠가 신혁이가 사춘기를 겪을 때 의지가 되는 삼촌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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