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성당 게시판

[기다립니다] 300원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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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agneskim] 쪽지 캡슐

2000-03-28 ㅣ No.303

 

+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Per la gloria di Dio)

 

 

제 생활이 이상하게 지난 월요일부터 약간씩 꼬이고 있어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5호선 종로3가 역에서 저만 보면 커피 마시게 300원만 달라는 어떤 할아버지가 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드렸거든요 (사실 한 30초 정도 망설이다 지갑을 꺼냈죠~)

 

그런데 지난 월요일에도 그 할아버지가 들어오는 열차를 타려고 준비하고 있는 저에게

  "학생 (아~ 이 말은 정말 듣기 좋았어요~ 아가씨도 아니고 학생이라니.... ^^) 커피 마시게 300원만 줘~"

 

처음 달라고 하실 때와는 달리 너무도 당당하게 큰 소리로 말하는 그 할아버지도 이상하고~ (사실 이 할아버지가 뭐~ 돈 맡겨 놓으셨나~ 왜 이러셔~ 라는 생각이 더 컸어요~) 주위에서 저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이상야릇하고~

그래서 제가 한 말씀 드렸죠~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자꾸 저한테만 달라 그러세요? (한 5초 동안 아무 말 없다가~) 지금 열차 들어오니까 다음에 드릴께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화를 내시며 "아~ 빨리~" 하시는 거예요~ 어머나 세상에~

 

  "할아버지~ 지금 지갑이 가방 깊이 있는데 저 지금 차 타야 되요~"

하면서 제가 목소리를 높이니까 할아버지는 그냥 계시더라고요~

 

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려서 제가 타려고 하자

  "잘 가~ 아가씨" (으잉~ 아깐 학생이라 더니 어느새 아가씨??) 하시면서 뒤로 돌아 가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안되어 보이는 겁니다.

 

문제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이상하게 일이 꼬인다는 거예요~

전에는 하지도 않았던 실수를 계속하고 또 잘~ 지내던 사람들과도 잦은 마찰이 있고 음~ 짜증도 나면서 또 왜 그렇게 일은 꼬이는지~

 

그리고, 이~상~하게 기도할 때마다 그 할아버지 생각이 나요~

저는 매번 주님께 뭐 해달라 뭐 해달라 기도하는데 그 때마다 주님께서 제게

’희정이 너는 왜 나한테만 달라고 하니 지금 나 바쁘다~’

라고 하시지는 않으실 까~ 하고 떨리기도 하고... (물론 사랑 많은 주님께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미리 아시고 우리가 바라기도 전에 이미 손을 써 놓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요~)

 

그 할아버지가 제게 "빨리~"라고 했던 것처럼 저도 주님께서 뭔가를 "빨리~" 해결해 주시길 바라면서도 저는 제가 줄 수 있는 가난한 노인의 소박한 모닝커피 맛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을 제 큰~ 소리 한 방에 날려 버렸으니까요~

 

월요일이후 그 할아버지 뒷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300원을 꺼내기 쉽게 가방 앞 주머니에 갖고 다니는데 통 그 할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어요~

제 가방 앞에 있는 300원은 아침 출근길이나 오후에 학교를 향해 달릴 때면 늘 짤랑거립니다.

언제쯤 이게 주인의 손을 찾아가 주인의 마음에 따뜻한 커피 향으로 남을지~

 

저는 요~ 그 할아버지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매일 연습합니다.

   "할아버지~ 제가 300원 드린 다고 했죠?"

   "할아버지~ 어디 갔다 오셨어요? 이 300원 드릴려고 매일 갖고 다녔어요~"

   "여기요~"

아님 그냥 말없이 드릴까~

 

그런데 자꾸 제 가슴속에서 이런 말을 권하네요~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오늘은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

 

음~ 사순절이니까 그냥 희생하자~ 이런 생각이 아니고요~  

아침 출근길에 저보다는 연륜의 길을 훨~씬~ 길게 닦아 놓으신 분과 커피 한 잔 해도 좋을 것 같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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