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퍼온글] 한 사제의 아름다운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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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 [kji716] 쪽지 캡슐

1999-09-05 ㅣ No.683

자유게시판 6768번 손희송님의 <한 사제의 아름다운 임종>을 옮겨 봅니다.  저희 본당

신부님이셨던 봉신부님에 대한 글이라서 함께 읽어 보았으면 합니다.

 

 어제 9월 3일 나의 동창이며 친구인 봉경종(세자 요한) 신부의 장례 미사가 있었다. 그는 미사후 용인에 있는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한여름의 불볕 더위를 뺨치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많은 신자들이 장례 미사가 거행된 명동 성당에 오셔서 기도해주셨고, 장지까지 오셔서 애도해주셨다. 사제는 신자들의 기도 덕분에 산다는 대주교님의 강론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내 친구 봉 신부는 성모 병원에서 10년 가까이 열심히 일 해 왔다. 신부가 본당을 떠나서 자신이 배운 것과는 상관 없는 병원 운영에 간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친구는 의욕을 갖고 활발하게 일을 했다. 그런데 강남 성모 병원 관리 실장으로 일하던 중 작년 8월 말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 백혈병에 걸리면 치유가 어렵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백혈병에 관해서는 여의도 성모 병원이 국내 최고라고 해서, 애써 희망을 가졌다. 봉신부는 자신과 맞는 타인 골수를 찾지 못해서 자가 골수를 이식 받았다. 처음엔 건강이 회복되는 듯 보였다. 작년 10월 한 마음 수련장에서 교구 피정 중에 그곳에서 요양하고 있는 그를 만나 여러 차례 1시간 가량 수련장 주위를 같이 산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봉신부는 올 6월 중순에 자가 골수 이식이 실패했다는 판명을 받았다. 동창들 몇이서 2차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입원해 있던 그를 찾았을 때, 그가 낙담하고 실망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위로의 말로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그 이후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급기야 8월 중순에 그는 병원에서의 치료를 중단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병원에서 본 그의 모습은 너무도 초췌했다. 평소에도 간이 좋지 않았는데, 백혈병으로 인해 걸린 폐렴을 치료하다가 간이 다 망가졌다. 그래서 눈에는 황달이 오고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했다. 방사선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은 다 빠져서 민둥머리가 됐고. 생명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몸이었다. 도저히 회생할 가능성이 없게 보였다. "마음 독하게 먹고 견뎌봐"라는 어정쩡한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와야 했다.

 

자신의 숙소인 강남 성모병원 사제관으로 돌아간 봉신부에게 동생 신부는 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 했다. 이젠 가망이 없으니 다시 입원하지 말고 죽음 준비를 하라는 말을 해야만 했다. 그 말을 듣고 봉신부는 가망이 없는 데 더 이상 의료진에게 수고를 끼칠 것은 없다고 말 했단다. 봉신부는 그날 일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어 놓았다. ’이젠 봉헌이다. 새로운 봉헌의 길을 잘 갈 수 있게 하느님, 도와 주소서. 아멘’. 이것이 4월부터 계속 써왔던 그의 병상 일기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그는 일기의 마지막을 ’아멘’으로 맺고 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운명이 비록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래도 순종하며 받아들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44세) 갑자기 찾아든 죽음의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쉬운 사람이 있을까? ’왜 이 나이에 제가 죽어야 합니까?’ ’당신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살려주십시요’, ’아직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데...’(그의 큰형은 7,8년 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둘째인 그가 죽으면 부모님은 아들 둘을 잃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아마도 그는 하느님께 이런 원망과 탄원을 수 없이 드렸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병상 일기에 보면 "부모님 보다는 오래 살아야 하는데..."라는 구절이 나온다.

 

봉신부는 임종 전 2주가량 죽음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케어를 받았다. 마침내 9월 1일 아침 일찍부터 임종의 기미가 엿보였다. 동생 신부는 이미 말은 할 수 없고 겨우 듣기만 하는 형에게 이렇게 당부했단다. "형, 하느님이 부르시면 ’예’하고 기쁘게 가". 오후 1시 20분경부터 가빠졌던 호흡이 차차 잦아들면서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봉신부는 마지막 숨을 길게 내 쉬면서 "예"하는 응답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지켜본 동생 신부의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친구 봉신부가 아주 사제답게 세상을 떠났구나, 정말 아름답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동생 신부의 권고를 듣고서 그가 자신의 죽음과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한 것을 마지막 숨을 내쉬기까지 지켰던것이다. 그런 그가 무척 자랑스럽고 고맙기까지 하다.

 

하느님께서 봉신부를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해주시고, 그의 손을 잡고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건너 자신의 품에 받아들이셨다. 한 동안 그의 빈자리가 아쉽겠지만, 믿음의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희망을 갖는다. 하느님께서는 봉신부를 더 이상 백혈병도, 무균실도, 방사선 치료, 고통도, 슬픔도, 눈물도 없는 그곳으로 인도하셨고, 언젠가 우리도 그곳에서 만갑게 그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그는 갔지만, 그가 나에게 남긴 아름다운 임종은 오래 동안 내 기억에서 향기롭게 남아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대로 죽는다는데...

 

그리고 그는 여의도 성모병원에 근무할 때 백혈병 치료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치유되기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봉신부는 병상에서, 자신이 살아난다면 백혈병 치료에 전적으로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단다. 또 자신의 죽음이 백혈병 치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혈 모세포를 수집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랬단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유지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자비하신 하느님, 제 친구 요한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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