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인터넷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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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0-06-24 ㅣ No.134

어쩌다보니 생활성서 7월호에 글을 하나 쓰게 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책이 나왔다고 하니, 게시판에 올립니다. 심심할 때 한 번 읽어보십시오.

 

 

가톨릭인터넷 GoodNews와 함께 시작된 인터넷과의 만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이 말도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1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10년에 한 번 변하는 강산도 어지럽건만 1년이 다르게 변모하는 세상은 어지럽다 못해 두렵기도 합니다.

 

"인터넷!" 1년이 얼마나 긴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인터넷"이란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지만, 그 성장 속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최근 몇 년간 인터넷 이용자수가 매년 거의 배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얼떨결에 만난 인터넷

 

1989년 신학과 4학년 때 "커뮤니케이션 신학과 현대의 복음선교"라는 주제로 학사논문을 썼습니다.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가진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복음화'에 대한 관심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하느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인간에게 늘 말씀을 건네시는 존재로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람이 되신 영원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로 절정에 이르렀고, 커뮤니케이션의 회복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결렬된 하느님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회복시켜 주셨고, 회복된 커뮤니케이션 공동체인 교회를 이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인간을 고립과 소외에서 해방시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친교를 맺도록 설계된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서 본질적으로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복음화의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의 글까지 끌어들인 이유는 제 자신 안에서 경험한 변화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당시 논문지도 신부님께서 꽤 앞선 주제라고 칭찬도 해주셨지만, 그 논문 어디에도 '인터넷'이란 단어는 있지 않았습니다. 또 알지도 못했습니다. 컴퓨터 또한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지금은 생소해진, 그러나 당시에는 '최첨단'이었던 전자타자기로 작성했습니다. 대학원에 복학한 1992년에 처음으로 286 컴퓨터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시집간 딸도 아닌데 집 기둥뿌리 하나를 뽑아가며 간신히 구입했습니다. 그 무렵 신학교에도 컴퓨터 바람이 불면서 컴퓨터실이 생기고, 이를 관리할 컴퓨터반이 생겼는데, 컴퓨터를 잘 다루던 동창과 함께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컴퓨터가 들어오면 책상 정리하고, 나르고 전선 끌어다가 연결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1994년 신부가 되고 2년 뒤 두 번째 본당에 와서도 인터넷이나 통신에 대해서 별 관심없이 살았습니다. 가끔 청년들이 MNSP(성 바오로 선교네트) 게시판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보지 않고 통신으로만 만나는 것이 낯설어 차일피일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성탄절에 서울대교구 종합정보화 1단계 작업이 완료되고, 이어 2단계 사업으로 각 본당에 LAN을 구축하면서 저 역시 처음으로 인터넷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1998년 6월께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막상 인터넷에 들어가서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필요한 교회관련 자료를 찾아보려 해도 마땅히 쓸만한 내용도 없고, 결국 신문이나 잡지 등을 기웃거릴 뿐이었습니다. 그 해 9월 20일 "가톨릭인터넷 GoodNews"(www.catholic.or.kr)가 개통되면서 인터넷과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쉬운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도배"라는 것도 가끔 하지만, 처음 글을 올리기까지는 근 5개월 정도의 관망기가 있었습니다.

 

 

선교의 새로운 장

 

GoodNews는 말 그대로 기쁜 소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Off-line으로 대변되는 본당신자와 조금은 다른 On-line 상의 신자 공동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조회수가 그리 많지 않은 가입인사란을 꼭 보게 됩니다. 그곳에서 어렵지 않게 오랫동안 신앙생활에서 멀어져 있던 이들의 사연을 접하곤 합니다.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발견하고 한편 놀라면서 한편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모습은 세상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선교의 새물결을 실감토록 합니다.

 

또다른 즐거움은 현재 인터넷의 주이용자라 할 수 있는, 반면 신앙생활에 가장 소홀하기 쉬운 10대에서 30대까지의 등장입니다. 사실 본당사목을 하면서 학업과 직장생활에 밀려 때로는 본의 아니게 신앙생활에 소홀해지는 젊은층을 많이 보게 됩니다. 현대사회는 우리를 너무나 바쁘게 합니다. 생활과 성공을 위해 바삐 달려가는 이들에게 신앙생활은 흔히 다음의 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신앙과 생활이 온전히 일치하지 못하는 슬픈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신앙과의 만남은 그들에게 신앙과 생활이 별개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터넷은 그들에게는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함께 하게 된 띠 동호회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한참 사회생활의 기초를 내리기 위해 분주한 20대 중반입니다. 물론 회원 중에는 이미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다소는 신앙에 소홀했던 젊은이들이 이러한 모임을 통해 적어도 '신앙'이란 두 글자를 접할 수 있는 현실이 희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만약 이러한 계기가 없었다면 그들에게 '신앙'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고민하게 될 문제로 지나쳐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잔잔한 생활 이야기와 작은 나눔들이 오가면서 보다 건설적인 신앙생활의 실천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은 본당사목과 인터넷이 상호보완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물론 신앙은 On-line 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ff-line으로 교회가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대상들에게 신앙에 대한 관심과 의식을 일깨워줌은 On-line 선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적인 것은 On-line 모임이 정기적인 Off-line 모임을 요구하고, 그러한 모임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만남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아직 신앙을 갖지 않은 모든이들에게 그들과 친숙한 언어로 다가설 수 있음은 세상을 복음화해야 할 교회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만남을 향하여

 

올해 초 개인 홈페이지(내친김에 선전까지 fr.catholic.or.kr/jhs)를 하나 만들고, 가톨릭 관련 웹사이트를 돌아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곳이 생기고 또 성장하는 모습에 놀라곤 합니다. 최근에 "인터넷이 가정과 공동체 형성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신문기사를 접했습니다.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동창모임을 갖는데, 동창 홈페이지가 생긴 후 실제 공감하는 부분이나 모이는 인원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 동창중에 나이 지긋한 형님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동창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저 역시 새로운 변화에 참 더디게 따라갔지만, 여전히 기성세대의 상당수는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시대의 변화에 무관심 또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현실입니다. 무턱대고 시대의 변화만 쫓을 필요는 없지만, 변화하는 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여지는 필요하리라 봅니다.

 

교회의 미래는 청소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미래를 교육하고 선도할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습니다. 신앙에 정진하며 교회에 헌신해 온 기성세대들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나의 자녀와 우리의 미래가 인터넷과 함께 성장할 때 그에 대한 적절한 관심과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땅끝'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컴퓨터는 적절한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그저 고철덩어리일 뿐입니다. 인터넷 또한 내용이 없으면 인적없는 길일뿐입니다. 내가 과연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알고 보면 참 많이 있습니다. 자녀를 교육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역경을 헤쳐가면서 쌓아온 수많은 "노하우(Knowhow)"가 있습니다. 단지 정리되지 않고 나눠지지 않고 자신안에 그냥 묻혀있을 뿐입니다. 요즘은 조금만 노력하면 배울 수 있는 길도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값진 경험이 복음화의 값진 거름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나눔의 길에 친숙해지면 "커뮤티케이션 네트워크"인 교회 또한 세상을 향해 열린 공동체로서 본연의 사명에 보다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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