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08년 5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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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08-07-28 ㅣ No.71

 

Allocucio - May,  2008

베데 맥그레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레지오와 성삼위

   지난 5월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보내며 교본에서 의미있게 잘 기술된 제7장 레지오 단원과 성삼위를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많은 카톨릭 신자들은 삼위일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려고 힘쓰거나  또는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범위내에서라도 그 유사한 형상들을 찾아보는 노력을 하기 이전에 당연하게 삼위일체를 받아 들여 그를 사랑하고 그에 의한 삶을 살아 가고는 합니다. 레지오의 여러 모임중에도 우리는 수도 없이 성호를 긋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하루에도 몇 번씩 성호를 그으며 강복을 빕니다.  성호를 긋는 것은  우리 믿음의 가장 중심적인 진리인 삼위일체의 신비, 그리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모든 진리들을 가장 단순하게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천주 성부의 이름으로는 하느님께서 그의 아드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어 살다가 우리를 위해 돌아 가시게 하신 그 깊은 사랑을 우리가 기억하게 합니다. 성자의 이름으로는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를 무한한 열정으로 사랑하신다고 선포하셨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물론 우리를 성화시켜 구원하시는 이 모든 하느님의 사업은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세상의 모든 피조물 특히 우리 인간의 존재를 보살피는 성령으로 어울어진 사랑이십니다.


최근에 저는 여러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루르드로 성지순례를 처음으로 가서 성모님께서 루르드에서 하신 행동과 말씀에 대하여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 발현하시어 성모님은 벨라뎃다에게 성호를 긋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시고는 그 후 나타나실 때마다 같이 성호를 함께 그으셨습니다. 성모님의 지상에서나, 또는 지금 천상에서의 삶은 성삼위의 깊은 삶속에 묻혀 지내시며 우리에게 성모님을 닮은 삶을 살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교본 제7장 레지오 단원과 성삼위는 루르드에서 성모님이 보내신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제7장 전체를 전부 읽어 드리고 싶지만 시간상 교본에 있는 몽포르의 성 루드비꼬 마리아성인의 말씀만 인용하겠습니다.: ‘성모 마리아께 대한 우리들의 신심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에게 몸소 주신 바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즉, 천주 성부께서는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에게 보내셨고, 지금도 계속 보내고 계신다.  또한 천주 성부께서는 성모 마리아에 의해서만 당신의 자녀들을 만들어 내시며 당신의 은총을 내려 주신다. 성자께서도 성령과 온전히 일치하고 계신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만 오늘 날도 매일 탄생하시고, 각 영혼들 안에서 새롭게 나타나시며, 오직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만 자신의 공로와 은총을 분배하신다. 성령께서도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시며, 성모 마리아에 의해서만 신비체의 지체를 만드시고, 당신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신다. 이와 같이 천주 성삼께서 여러 가지 길로 확실한 표본을 보여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성모 마리아를 무시하거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 천주 성삼께 일치하려 하거나,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하여 스스로 성모 마리아의 소유물이 되지 않고서 천주 성삼께 봉사하겠다고 하니, 우리의 눈이 어두운 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마리아 :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40)


최근에 에델 퀸이 직접 쓰거나 또는 그녀에 대해 쓴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가 좋아 하던 신약의 말씀은 요한 복음의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과 사도 바오로 서간의 ‘우리는 그 분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을 같이 합쳐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생활속에 멋진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에델 퀸은 ‘우리는 하느님 안에 살며 하느님은 무한한 사랑이시다’ 라는 점을 묵상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 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성삼위의 신비였습니다. 그는 많은 모임과 여러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신을 통하여 바쁜 나날을 지내면서도 그녀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소중히 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였습니다.  묵상 노트에 그는 계속적으로 다음의 결심을 적고 있습니다. : ‘힘든 일속에서나 외부활동의 의무안에서도 영혼안에 계신 성삼위를  공경하도록 노력하여라.’ 또 다음과 같은 글도 있었습니다. : ‘성모님과 일치하여 그분과 함께 하십시오-오늘 하루 모든 활동중에 우리 영혼안에 머무르시는 그분을 사랑하시고, 또 그분이 지상에 계실 때에 하신 일들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내 생각에는 에델 퀸은 하느님께서 우리 레지오에게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힘을 주시고, 우리안에 성삼위를 모시고 사는 신비를 체험하게 하기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신도 사도직에 봉사하기를 원한다면 하느님의 현존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실천없이는 우리는 일상 생활안에서 피상적이고 천박해 져서 단지 공허한 사도직 활동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에델 퀸의 시복시성 청원자이신 안셀름 모이니한 신부님이 쓰신 ‘성삼위 안에서의 삶’이란 소책자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삼위일체 대축일을 묵상하며, 다시한번 성모님께 우리 안에 계신 성삼위를 향한 지극한 봉헌에 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내려 주실 것을 기원합시다. 성모님과 모든 성인들의 신비와 우리 레지오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단원들의 신비를 위하여  그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도록 끊임없이 기도 합시다.


[추신] 번역을 위한 설명

이 훈화는 꼰칠리움 월례회의가 열린 5월 3째주 일요일인 5월 18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하신 훈화로 제일 처음 시작 부분이 본문에는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임으로 당연하게 교본에서 의미있게 잘 기술된 제7장 레지오 단원과 성삼위를 읽고 묵상하겠습니다.” 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2개월이 지난 7월호에 나가면서 이 문장은 어색할 것 같아 위와 같이 고쳐보았습니다. 본문을 따르고  마지막에 (이 훈화는 5월 18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하신 훈화입니다) 라고 써도 되겠는데 그것은 편집실에서 잘 판단해서 하십시오. 만일에 오늘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면 맨 마지막 문단 시작 글도 본문에 따라 다음과 같이 고쳐져야 합니다.

“금년은 아름다운 5월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한 오늘,  다시한번 성모님께 우리 안에 계신 성삼위를 향한 지극한 봉헌에 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내려 주실 것을 기원합시다.” 로 고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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