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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의 올바른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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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곤 [paul51] 쪽지 캡슐

2014-10-09 ㅣ No.23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연도의 올바른 인식

    글 : 허윤석 신부 연도를 노래로 바치는 목적에 대하여 요즈음 신자들은 단지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로만 알고 바친다. 연도는 사실 더 우선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기도이다. 이러한 연도의 목적을 문헌을 통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가장 오래된 연도책이라고 할 수 있는 한문본 천주성교예규에서는 연도의 목적이 3가지임을 다음과 밝히고 있다.


    問: 葬喪?中念經足矣, 何必朗聲唱誦, 豈不屬於善樂 而與哀喪之禮 大不宜乎 문: 상사 때에 염경 기구만 하면 족하거늘 어찌 구태여 소리를 높이고 노래하여 외우느뇨? 이는 즐거워하는 모양 같아서 조상의 예에 크게 합치하지 않음이 아니냐


    答: 非也. 雖然誦經而不歌唱强可以爲足, 但唱經而誦之, 大有其故, 답: 아니다. 비록 노래 없이 경을 외워도 족하나 경을 노래하여 외우는 것은 그 까닭이 있다.


    一. 歌唱之音, 更擧吾思仰望主, 更斂吾心於內, 而更顯其所懷之大願, 蓋吾念經, 因爲特望切願救彼亡者, 然心之大願, 非以大聲而著, 難得其金也. 첫째, 노래하는 소리 더욱 우리의 생각을 들어 주께로 향하게 하고, 더욱 우리의 마음을 수렴케하고, 더욱 우리 마음에 큰 바라는 마음을 드러냄이요.


    二. 聖唱之音, 若有規則, 而爲虔心所擧, 卽能逐魔而?之, 蓋彼邪魔永憂永愁, 而不能聞聽神樂之音, 故而吾?朗聲誦唱經 둘째, 거룩한 노래의 소리만을 법대로 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하면 능히 마귀를 쫓느니, 대개 저 마귀는 항상 우수에 차 신락의 소리를 듣고 견디지 못함이요.


    三. 葬喪之際, 信輩所用歌唱之音, 亦有其憂矣. 然而不至過節, 蓋吾憂不似無望之徒, 所發之憂也. 셋째, 장사 때에 교우의 하는 소리는 또한 슬퍼하고 근심하는 소리니 그러나 과도히 못할지라. 대개 우리 근심은 바람없는 무리의 근심과 다르니라. 위의 세가지 목적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목적에서 우리의 생각을 들어 주께로 향하게 한다는 것은 미사때 우리가 사제께서 “마음을 드높이!”하시면 “주님께 올립니다!‘라고 응답하는 하느님을 향한 자기 봉헌의 전례정신이다. 연도의 내용은 시편의 참회 부분이며 구원을 요청하는 신앙고백이기에 연도는 남을 위해 바치기 이전에 자신의 죄와 참회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그래서 옛 구교우 신자들은 저녁기도 때 연도를 봉헌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연옥영혼들을 위한 대리기도 혹은 전대사를 위한 기도이전에 자신의 성찰하는 참회시편을 봉헌하는 성무일도의 개념이 더 가깝다.


    둘째 연도는 실제로 우리 안의 마귀의 유혹과 세속의 헛된 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 임종을 맞이 하는 이들은 평소때 보다 심한 악마의 유혹과 어둠에 싸인다고 한다. 성인 성녀들의 고백에도 잘 나와있다. 또한 심한 우울함이나 불안감이 밀려올 때 연도는 새로운 삶의 지평과 하느님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연도는 희망의 음악이며 치유의 선율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러한 연도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우울증이나 불안감을 갖고있는 신자와 냉담자들과 함께 연도를 통한 피정을 소규모로 하여본 결과는 매우 좋은 결과를 맺은바있었다.


    셋째는 이미 우리가 경험한 바 있다. 우리 천주교회의 장례식 분위기는 연도를 통해 죽음으로 생기는 좌절과 슬픔과 근심을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전환시킨다. 연도가 오선지 위의 서양악보에 적혀 통일되어있고 장례식장에 가면 본당이 새겨진 연도책이 영정앞에 있는 것이 오늘의 천주교 장례모습이다. 연도를 대하면서 우리가 가장 변화되어야 하는 기도는 바로 연도의 가장 큰 목적이 나 자신의 생각과 연도를 바치는 우리의 생각을 부활신앙으로 들어 올리고 이를 위한 자신의 매일을 삶을 반성하는 성찰이며 생활안에서 좌절과 어둠과 실패감과 죄의식이 우리의 영혼을 어둡게 할 때 이를 물리치는 빛의 소리라는 점이다. 필자가 이번 미국의 남가주 성령신앙대회에서 교포 2세3세들에게 연도를 강의하고 함께 배우면서 이들이 한국 가톨릭의 위대한 선율과 신앙에 대한 자긍심과 매력에 빠진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교포3세 청년이 필자에게 한말로 글을 맺는다. “신부님! 어떻게 200년전 우리 선조들이 이러한 부드럽고 아름다운 랩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순교시대에 말이지요? 그리고 저희가 영어로 요즈음 젊은이들을 위한 우리의 연도랩을 만들어 볼까요?” “물론! 물론이지!” 음악의 형태는 시대와 계층 문화에 따라 바뀐다. 그러나 그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연도의 가장 올바른 방법은 “나의 마음을 하느님께 드높이는 것이며 더불어 우리모두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높이는 것이다.” 나는 매일 연도를 바친다. 전편을 바치지 않고 부분부분 바친다. 그것이 나의 신앙과 마음의 평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성인들의 함자를 부르면서 일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행복인지? 삶이 힘들 때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리고 나의 죽음을 묵상하게하고 나의 죽음을 묵상할 때 생겨나는 차분함과 빛은 나의 생활에 활력이 된다. 이맛에 구교신자들은 연도를 했으리라! 연도를 매일하여서 내가 임종시에 나를 위한 연도를 내가 마지막으로 하여야 한다. 그래서 구교신자들은 연도를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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