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6/19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7-06-19 ㅣ No.3310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6/19

 

세상에서 잘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쩌면 각종 특혜와 지원을 잘 찾아서 남 몰래 선점하고 뛰어난 처세술로 내 앞길을 발견해 나가고 개척해 나가는 길입니다. 어디로 가면 성공가도가 열리고,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를 알고 선점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잘하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 부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사회적으로 루저라고도 부르기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39.42) 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아주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고서는 참 어색하게 들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기쁘기 보다는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이치에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도 살 수 있을까?’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독서에서 말합니다.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2코린 6,6-10)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선택의 귀로에 섭니다. 하느님과 진리의 말씀을 선택할 것인지, 세상물정과 처세술을 선택할 것인지. 오늘 바보같이 보이는 선하고 고지식한 이들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영원한 평화와 약삭빠르고 성공한 사람들 안에 담겨있는 현세적이고 불안한 쾌락이 어떻게 다를지도 느끼게 해줍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지, 아니면 현세적인 탐욕과 허망한 미래를 향한 소모적인 무한경쟁으로 긴장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 내려주시는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