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주님 승천 대축일]승천 (마르 16,15-20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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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5-13 ㅣ No.102

 

 

[주님 승천 대축일]승천 (마르 16,15-20ㄴ)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기리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교회는 이 주님 승천 대축일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째 되는 부활 제6주간 목요일에 지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신다.(사도 1,1-11).

1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다고 한다 (에페 1,17-23).

형제 여러분,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시고 승천하신다.(마르 16,15-20ㄴ).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주님승천대축일(5.28.홍보주일)

 

 주님 승천 대축일 제1독서(사도1,1~11)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눈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9~11)

 

사도행전 1장 9절에서 11절까지는 예수님의 승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신 후 성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명하신 인류 구속 사업을 완전히 마치신 후 다시 하늘 옥좌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심판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하늘 옥좌에서 계속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여기서 '보는 앞에서' 번역된 '블레폰톤'(bleponton)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보고 있을 때'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승천이 제자들이 보고 있을 때 이루어졌다는 것은 승천이 꾸며 낸 일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다. 

또한 '오르셨는데'에 해당하는 '에페르테'(eperthe; he was taken up)사도행전 1장 2절의 '승천하신'에 해당하는 '아넬렙테'(anelepthe)처럼 수동태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바로 예수님의 지상의 모든 활동을 기쁘게 여기신 성부 하느님의 장엄한 역사적 행위였다.

 

예수님께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인간이 되어 탄생하신 사실 만큼이나 신비한 일이었다 (루카 2,5~7). 

이 세상에 신비하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신비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셨고, 또한 재림 때에도 천군 천사와 함께 심판주로서 신비하게 오실 것이다.

 

한편, 루카복음 24장 50절과 51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제자들을 축복하는 대사제의 모습 제자들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모습으로 승천 기사를 다루었다.  사도행전 1장의 승천 기사 역사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루카 복음 24장 예배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9) 

직역하면 '구름이 그들의 눈(시야)으로부터 그를 붙잡아 데려갔다'이다. 성경에서 '구름' 예수님의 신적 권세를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된다.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의 변화(마르 9,7; 루카 9,34.35), 올리브산에서의 승천과 재림에 대한 말씀(마태26,64; 마르13,26)이라는 중요한 사건들에 있어서 구름과 함께 등장하시는 모습 과거 하느님께서 모세의 만남의 천막에 영광으로 임재하셨던 일을 상기시킨다(탈출40,35).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본문에서 '하늘' 물론 공중을 의미하지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반드시 장소적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라논'(uranon)의 원형 '우라노스'(uranos)는 신약 성경에서 272회나 사용된 단어로서 다양한 용례로 사용되었다.

천사들과(마태18,10; 에페3,15) 하느님의 옥좌(묵시11,13)가 있는 곳이며,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며(마르1,11; 히브12,25) 성령이 내려오는 곳이고(사도2,2; 마태3,16), 진노와 심판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루카17,29).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곳이다(히브8,1). 

이처럼 성경에서 '하늘' 하느님과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관련된 신학적 개념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승천의 의미는 장소적 이동의 개념을 넘어서 인간이 받는 제약이 없는 세계, 물리적 법칙이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초월한 차원(세계)에로의 이동을 말한다.

 

'그들이 ~유심히 바라보고'로 번역된 '아테니존테스'(atenizontes)는  '~에 눈을 고정시키다', '응시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테니조'(atenizo) 현재 능동태 분사 복수형으로서, '있는데'로 번역된 미완료 동사 '에산'(esan)과 더불어 '그들이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즉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워지고 구름 사이로 들어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잠시라도 그들의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보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흰 옷을 입은 두 사람'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히 천사들이다. 사실 흰 옷 차림은 천사들의 상징이기도 하다(마태28,3; 요한20,12). 

'흰'으로 번역된 '류카이스'(leukais)는 성경에서는 빛이 날 만큼 흰 상태나 광채가 나는 상태(마르9,3)를 나타내며, 주로 하느님이나 천사들의 신비스런 모습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마태17,2; 묵시1,14). 

천사들은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재림에 관한 사실까지 제자들에게 선포했다. 이처럼 루카는 예수님의 사적을 역사적 관점에서 철저히 기록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하느님의 아들되심을 보다 설득력있게 전하기 위하여 천사와 관련된 사건도 매우 자세하게 기록에 남겼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천사들이 제자들을 향해 부른 이 호칭은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제자들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망각하면, 갈릴래아의 일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요한 복음 7장 52절을 보면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날 수 없다고 단정할 정도그곳은 영적으로 소외된 지역이고 보잘것 없는 지방에 불과했다.

 천사들은 앞으로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땅끝까지 용감한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별볼일 없는 갈릴래아 촌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복음의 능력자가 될 것인가?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11) 

'쳐다보며'로 번역된 '엠블레폰테스'(emblepontes)현재분사로서  진행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어찌하여 너희는 계속해서 서서 '하늘을 향해 쳐다보고만 있느냐?'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라지고 없는 하늘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초대 교회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루카가 천사의 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교회 신도들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의 재림만 기다리며, 현실적인 이 땅에서의 하느님의 일과 사명을 소홀히 하는 자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육체를 입은 몸으로 구름과 함께 영광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듯이, '그대로'에 해당하는 '호 트로폰'(ho tropon; in like manner)처럼 육체를 입은 몸으로 큰 영광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재림하실 것을 가리킨다.

 

 

 주님 승천 대축일 복음(마르16,15~20)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5)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16장 15절보다 앞선 부분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불신앙적 모습으로 보여 주면서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6장 15절 이후부터는 이렇게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복음 전파의 명령을 받고, 능력있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부활의 종교이고, 그리스도교인들은 그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 부활을 증거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의무가 믿는 이들에게 수행하기 힘든 무거운 짐이 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기만 한다면,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6장 15절에서의 강조점복음 전파의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에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은 제자들을 중심한 유대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자들은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무지와 불신앙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제자들은 이방인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현존은 제자들의 무지와 불신앙을 깨뜨리기에 충분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는 순간에 기존의 무지와 불신앙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부터 깊이 구세주로 영접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대상에서 이방인들도 제한되어야 할 이유가 없음을 반증하고, 이방인들도 부활의 복음 앞에서 무지와 불신앙의 틀을 깨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 '온 세'으로 번역된 '톤 코스몬 하판타'(ton kosmon hapanta; all the world)'세상'(세계)을 뜻하는 '코스모스'(kosmos; world)'온', '모든 것'을 뜻하는 '하파스'(hapas)를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당대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상(세계) 뿐만 아니라 오고 가는 세대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을 가리킨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로 번역된 '파세 테 크티세이'(pase te ktisei; to every creature)는 보통 만민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복음이 어느 특정 지역과 민족에게 제한되지 않고,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함을 이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승천, 재림>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사도 1,8-9).”


예수님의 ‘승천’은 사람이 되시어 지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던 예수님께서

당신의 임무를 완수하시고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신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에페 4,9-1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 1,20-23).”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셨지만,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에 살아 계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승천’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일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당신의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신 일입니다.)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세상 모든 곳으로 가서 나의 증인이 되어라.”,

즉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니까 신앙인들은 당연히 실천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라는 말씀은,

신앙인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할 때,

성령을 통해서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선교활동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힘’으로 하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겉으로는 우리가 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일하시고, 우리는 그 일을 도와드릴 뿐입니다.)


마르코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승천과 그 뒤에 이루어진 제자들의 활동을

이렇게 요약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19-20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일은 제자들이 눈으로 보았지만,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신 일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셔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영광과 같은 영광을 누리신다고

믿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할 때, 예수님께서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을 통해서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는 말은,

제자들이 하는 일을 예수님께서 협력자로서 도와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제자들이 협력자로서 도와드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표징’은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기적은 사람이 일으키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예수님)께서 꼭 필요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일으키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0-11)”

여기서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자기들 곁을 떠나시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서

제자들이 인간적인 아쉬움, 서운함 같은 것을 느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루카복음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0-53).”

(더 이상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

제자들은 인간적으로는 아쉽고, 서운하고, 조금은 슬펐겠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제자들이 얻게 된 ‘큰 기쁨’ 자체가

약해지거나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라는 천사들의 말은,

뜻으로는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이고,

‘땅도’ 보라는 뜻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땅도 보라는 말은,

지상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도들과 신앙인들은, 또는 교회는,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이어받아서 계속 실행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

그리고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들...


예수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말은, 지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냈던 그 예수님이, 또 수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종말의 날에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테니 서운해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해도,

그날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만물의 주님으로, 또 심판관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려면, 각자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주님 승천 대축일
       (사도 1,1-11 /  에페 1,17-23 / 복음 마르 16,15-20ㄴ)

이제 겨우 다 되었다고, 안심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새로운 불안… 승천이라는 사건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극도의 슬픔과 좌절의 시간을 거쳐, 짙은 어둠의 시간을 뚫고 빛과 생명으로 오신 부활로 이제 겨우 희망을 품게 되었는데, 얼마 안가서 그 빛과 비전을 끊어버리는 듯한 멀어짐, 사라짐, 떠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러나 오늘 전례의 본문들은 예수님의 승천이 결코 떠남과 멀어짐으로 해석되어야 할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떤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고 그분의 현존을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함께하게 된 사건이라는 것,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 매 순간 언제나 함께 머무르시는 분을 모시게 된 은총을 충분히, 온 마음 다해 기뻐하고 축하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 본문의 맥락
오늘 복음과 독서는 마르코 복음의 결론과 사도행전의 시작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두 각각의 책 전체를 요약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처럼 중요한 본문들이 전하는 내용은, 예수님 지상 생활의 마지막이 곧 교회의 시작과 연계된다는 점입니다. 곧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와 가르침을 계속하는 것이 이제 새롭게 시작된 교회의 일이고 사명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행전 전체는 스테파노와 베드로, 바오로, 그 외의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어떻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전파되었는지, 그 선포의 여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마르코 복음의 결론 부분에 강조된 표현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말씀을 기조로 하여 구현된 역사입니다. 복음서의 마지막에 당부된 대로,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리고 그 증인이 되는 것, 이것이 초대 교회가 이해했던 자신들의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여정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구히 그들과 함께 계셨음을 증언하는 것이 사도행전과 서간의 내용들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님의 승천은 정확히 교회의 사명이 시작되는 지점과 맞물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 멀어짐, 그러나 시작
‘떠남’과 ‘시작’이라는 이중적 기능은 오늘 복음의 서두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승천이 ‘하늘에 오르심’을 목적에 둔 사건이라기보다, 제자들을 멀리 ‘파견’하시기 위한 의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차례로 알려줍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16,15)는 명령과, 예수님께서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그동안의 제한받던 존재 방식을 끝내시고 하늘로 오르시어 언제 어디서나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16,20) 동반하심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생활 동안 갈릴래아나 예루살렘의 시·공간에 머무시던 예수님은 이제 승천이라는 새로운 사건을 통해 그 어떤 장소적·시간적 제약도 받지 않으시는 존재로 거듭 현존하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사실은 교회 안에 언제나 함께 계신다는 약속은 오늘 복음의 17-18절을 통해 분명히 확인됩니다.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이는 교회가 하는 일이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일임을 증거하는 “표징”이 됩니다(20절 참조). 즉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함께 하시면서 교회의 선포와 사명을 통해 자신의 현존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표징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강력한 힘과 권위를 지니시는 것이었고, 이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16,19)고 묘사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늘”이라는 초월적 장소에 오르시고, 유다인들 전통에서 언제나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오른쪽”(주로 오른손잡이가 많으므로 오른쪽이 더 큰 힘을 가진다고 간주)에 계시게 되었으며, 더구나 “앉으셨다”고 함으로써 확고부동한 영광과 권위의 자리에 오르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 유기체적 공생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좌정하심은 제2독서에서도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인성(人性)은 이제 하느님의 권좌로 옮아가게 되며, 그 어떤 통치와 권력보다 더 강한 권한을 지니시게 됩니다.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되신 것인데(21절) 에페소서의 저자는 여기에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덧붙입니다.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다”(22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을 우리의 “머리”가 되게 하셨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23절) 있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은 이제 교회의 일로 이어지고, 제자들과 교회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 성령강림을 고대하며
우리가 그분과 한 유기체를 이룬다는 놀라운 사건은 사실 성령에 의해 가능해지는 신비입니다. 이에 대하여 제1독서는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승천은 이 세상으로부터의 멀어짐 혹은 떠나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로의 더 깊은 유착과 뿌리내림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신 것이고, 이 말씀대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성령강림’을 기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약속으로, 이제 주변의 사소한 불안과 두려움을 거두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똑똑히 깨닫게 되는 빛나는 초대의 시간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부재의 딜레마는, 단순히 오늘 전례의 본문들이 제작될 때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오늘날에도 시험과 도전이 되는 주제입니다. 누군가를 더 이상 보지 않고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가르침을 준수하며, 그가 원하는 삶을 온전히 구현하여 내 삶의 현장 안에 새로운 생명과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충실한 따름과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내 삶의 믿음과 질서를 뒤흔들어 놓는 가혹한 멀어짐이나 상실이라 해도, 그 치열한 슬픔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빛나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은총이요 초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나를 동반해주시는 유일한 존재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재와 현존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세상 끝까지 혼자 간다고 해도 결코 두렵거나 지치지 않고 그 빛나는 구원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 환한 빛이 흔들림 없이 투명하게 그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사명을 다 마치시고,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셨다는 뜻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기에 이제는 인간의 모습을 띠고 계시지 않습니다. 제1독서처럼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찾지 않아야 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하느님으로서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선과 악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생명과 사랑의 문화를 창조해 나가려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끝없이 세상을 타락시켜 나가는 악의 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간 생명을 경시하거나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대표적입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을 맞은 우리의 사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 스스로 예수님과 일치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생명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와 죽음의 문화에서 나오는 악취를 제대로 판별하게 해 주는 가치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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