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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일]네 눈 속에 있는 들보 (루카 6,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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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3-03 ㅣ No.150

 

 

 


 

[연중 제8주일]네 눈 속에 있는 들보 (루카 6,39-45)

 

 

집회서의 저자는, 사람은 말로 평가된다며,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말라고 한다. (집회 27,4-7)
4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5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6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라고 한다. (1코린 15,54-58)
형제 여러분,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는 열매를 보면 안다고 하시며,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라고 하신다. (루카 6,39-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연중 제8주일: 다해: 언행의 중요성

지난 주일에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그로 하여금 하느님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문화를 이룩해 나가는 것에 대해 들었다. 이제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자신의 우리가 사용하는 언행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자신을 열어 보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나누는 도구 중 하나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한 마디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슬픔과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1독서: 집회 27,5-8: 열매로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1독서에서 말이 인격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말은 내면적 인간의 외적 표현이다. 말은 사람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나 말씨야말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재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속뜻을 드러내신 것이 말씀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말씀은 창조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시며,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니 우리가 하는 말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늘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독서: 1코린 15,54-58: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하라

사도 바오로께서는 부활의 희망이 주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 때문에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을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은 헛되지 않다고 하신다(58).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닮고 또 잘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행하지 않고 사탄의 말에 그 마음을 빼앗긴 결과 죄를 짓게 되었다. 잘못된 말과 거짓된 말을 받아들여 표현한 것이 죄가 되었고 죽게 되었다. 우리 마음의 창고가 악으로 가득 차 있어 거기에서 거짓된 말이나, 잘못된 말을 꺼내게 되면 그것은 죽음에로 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참된 좋은 말을 꺼내면 우리를 또 다른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사탄과 거짓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 주셨다. 이 거짓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우리의 마음에서 좋은 것을 꺼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말씀을 행할 때,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다. 그러기에 주님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고 사도 바오로께서는 말씀하신다. 이제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이라는 창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재고조사를 해보자. 재고조사를 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더럽힐 수 있는 악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좋은 것들을 잘 정리하여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좋은 것을 꺼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정리해 보자. 항상 좋은 열매를 꺼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마음의 정리를 통하여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서 있을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의 창고에서 무엇을 꺼낼 수 있을까?

복음: 루카 6,39-45: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입 밖으로 나온다.

오늘 복음은 평지설교의 결론 부분이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스승을 따라 행동하라고 가르치신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며 올바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또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쳐주는 것도 힘들다. 그러기에 먼저 자신의 삶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신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스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신은 큰 잘못을 범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남이 범하는 조그만 잘못도 참아주지 못하고 드러내려는 위선적인 면을 없애라고 하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 8,7)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위선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집에서 잘 기른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절대로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반대로 나쁜 나무는 즉 손질을 받지 못한 나무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열매를 맺는다(43). 나무가 어떤 지는 그 나무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아주 맛있는 무화과를 거둘 수 없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둘 수 없다(44). 이것은 우리가 판관 9,1-21에서 왕으로 선출된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담은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70명을 죽이고 왕이 되었을 때에 왕의 선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기서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 그리고 포도나무의 선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이 나무들은 자기의 소임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겠다고 하였다. “내 어찌 기름을 내지 않고, 이 훌륭한 과일을 내지 않고, 이 술을 내지 않고,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8-13)하고 왕의 자리를 사양했으나, 가시나무는 수락하여 왕이 되었고 그 가시나무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아비멜렉을 선출하여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은 멸망하였다는 기사가 있다(참조: 판관 9.22-57).

이제 이 비유는 사람에게 적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착하다면 좋은 나무와 같이 자기 마음의 좋은 보물창고에서 선을 내어놓을 것이다. 반대로 악한 사람은 그의 마음의 악한 창고에서 오직 악만 흘러나올 것이다(45; 참조: 마태 12,34-35). 사실 인격을 나타내는 마음은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통하여 말하게 되는 것이며, 선이나 악을 말한다면 그것은 각자 안에 담겨져 있는 창고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입은 인격의 도구이며, 행위에 있어서 전 인격을 가리킨다. 이것은 긍정적일 수 있거나 파괴적일 수 있다(45). 그러므로 좋은 나뭇가지에 시간에 맞추어 붙어있으면서 좋은 나무를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자녀들의 마음에 하느님 자신이 주시는 아주 귀한 보물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있어서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오늘 복음 대목은 루카 복음서의 ‘평지설교’의 뒷부분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오 복음의 ‘산상수훈’과 비교해 보면,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참된 행복을 포함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긴 담화문(마태 5-7장)인데 비해, 루카 복음에서는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어’ 특별히 제자들에게 주시는 상대적으로 짧은 가르침입니다. 거기에는 참된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가르침, 이렇게 크게 세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 중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기’에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야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빼낼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대목을 굳이 연결해 보자면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는 오늘 예수님 말씀과 연결해서 제1독서에서는 집회서의 한 구절을 들려줍니다.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과 집회서의 말씀은 단지 입조심, 말조심하라는 입단속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마음을 닦아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종종 선과 악이 충돌하기도 하고, 이기심과 박애의 마음이 갈등을 빚기도 하고, 좋은 의지가 게으름과 용기 없음에 눌려 씨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마음을 닦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여기에 단초를 줍니다. 선과 악이 부딪히고, 이기심과 박애로 엉켜있는 우리의 마음을 ‘선한 곳간’으로 가꾸는 작업은 단순히 ‘굳은 결심’과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어야 가능함을 말해줍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몸소 받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기에, 우리의 삶이 예수님으로 덧입혀지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할 때, 우리의 마음도 ‘선한 것을 내놓는 선한 곳간’으로 변해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서울교구 주보)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는 말의 중요성을 잘 설명합니다.

사람은 말을 통하여 수련되는데, 말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 생각,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이 드러납니다.
이처럼 말은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 주는데,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십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죄가 바로 죽음을 가져다 준 독침이며, 율법은 죄가 죄로 드러나게 만드는 구실을 한다고 강조합니다.

율법 앞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 곧 죽을 운명을 지닌 존재임이 드러나는데,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죄를 용서받아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비록, 썩는 몸, 죽는 몸을 지니고 있는 우리이지만, 그리스도 덕분에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죽지 않는 것을 입어 죄와 죽음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고, 주님의 일을 충실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만을 지적하는 위선자들을 나무라십니다.

자신도 그리스도 덕분에 구원받았으면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위선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위선자들의 입에서는 위선의 말이 나올 뿐입니다. 결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기 마련인데, 입으로 형제들을 비난하는 이는 악한 마음, 곧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위선자들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 곧 선한 말을 내어 놓습니다. 그런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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