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성당 게시판

어떤 모습으로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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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2-03-23 ㅣ No.1625

 

2002, 3, 24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태오 26,14-27,66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서, 성주간 첫째 날입니다. 우리는 성주간 동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으로 지상 생활의 마지막 한 주 동안에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를 경축합니다.

 

우리는 오늘 특별히 두 가지의 복음 말씀을 듣습니다. 이 두 가지 복음 말씀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단 며칠 사이에 이루어진 극적인, 그리고 상반되는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인파의 환호 속에 영광의 임금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과 바로 이 사람들의 모욕과 질시, 험담 속에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상반된 사건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개선 행렬이기보다는 십자가 죽음의 전주곡이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이라고 환호하던 군중들은 어느새 "바라빠를 놓아주고 그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군중들이 생각했던 평화와 영광은 곧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자신의 평화, 즉 권력과 이기심과 탐욕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함으로서 지탱되는 거짓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정의와 평등에 기초한 참 평화를 주러오신, 참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군중들은 서로 먹고 먹힘으로써 상처만이 가득한 자신들의 헛된 영광을 위해 나눔과 섬김으로써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영광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소란스러운 군중들의 틈바구니를 헤치고 예수님께서는 담담하게 당신의 길, 십자가 수난의 길, 죽음으로써만 가능한 참 생명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즐기는 무리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서럽게 목놓아 우는 사람들, 생사고락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등진 제자들이 이 길에 함께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의 길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모든 사람은 이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합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나눠서 지기 위해 함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못질을 하기 위해 망치를 들고 함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이야 십자가를 지던 말던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십자가 옆에 있다가 행여 자신도 십자가에 못 박힐까봐 두려워서 멀리서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길에 함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느냐?'라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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