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필독][영광] 교파教派 는, 1886년 이후 1895년 이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신도神道 용도의 신조어이다 2014_ 1666_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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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3 ㅣ No.2016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6.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이상, 게사자 주 끝)

 

1. 들어가면서

 

이번 글의 제2항은 또한, (i) 우리나라 한반도로부터 '질료적으로(materially), 즉, 생물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일본인들'이, 그러나 도대체 무슨 이유로, (ii) '형상적으로(formally), 즉, 영혼(soul)의 사고의 방식/사고의 틀에 있어, 얼마나 먼 이웃'일 수도 있는지를, 가능한 한 실증적 증거(positive evidences)들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ii)에 대하여 함께, 폭넓고 그리고 깊이있게, 고찰하고자 마련된 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 글은,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글들에 이어지는 글이기도 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4.htm <----- 필독 권고

[제목: 신교新教, 구교舊教, 예수교耶穌教, 예수성교 등 용어들의 출처와 기원 및 무지 때문에 발생한 착오와 왜곡 등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9-11-20]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5.htm <----- 필독 권고

[제목: 신약新約, 구약舊約 - 성경 겉표지 용어들의 최초 출처는 중국 개신교회 측의 한문본 1852년(신약성경), 1853년(구약성경) 대표역본들이다; 게시일자: 2019-11-21]

 

1-1. (문제점 1)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경시(輕視) 및 부재(不在)가 초래한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


1-1-1. 이제 좀 되었습니다만,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측에서 "기독교"라는 번역 용어가 오로지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을 가리키는 개신교회의 고유한 용어라고 알고 있기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였더니, 전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基督"(기독)라는 한자 번역 용어를 최초로 만든 당사자는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로서 중국 본토에 파견된 장 바쎄 신부님(1662-1707년)이며, 이분께서 1704년 경에 중국 본토 내에서 신약 성경을 처음부터, 즉, 마태오 복음서 제1장부터, 히브리서 제1장까지, 한문으로 번역하였는데, 자신이 번역한 바로 이 한문본 성경 본문에서, 영어로 "Jesus Christ"음역(音譯, transliteration)되는 표현을, 때로는 "야소기리사독"으로 음역(音譯)을 하다가, 그러나 때로는, 이것을 줄여서, 이들 여섯 글자들을 네 글자들로 줄여서, "야소기독"으로 번역을 한 것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최초로/처음으로 찾아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의 제4항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2-1707_장_바쎄/영국_보존본/화합복음서.htm <----- 클릭한 후에 제4항 필독 권고

 

그리고 이 발견과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기독(基督)이라는 가톨릭 고유의 한자 용어의 어원과 출처들, 그리스도와 기독의 어원 - 루카 복음서 2,11; 게시일자: 2015-12-25]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66.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우리나라 천주교회에서, 1910년에 발행된 "경항잡지", "보감", 제171호, 론셜에서, "천주교""긔독교"(즉, 기독교)라고 제1쪽에서 부르고 있고, 그리고 "이스라엘""고교백성"이라고 제2쪽에서 부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zine.cbck.or.kr/gallery/view.asp?seq=55375&path=070413181647&page=1 

 

1-1-2. 또한 이제 좀 되었습니다만,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측에서 "교회"(Church)라는 번역 용어가 오로지 "예배당"을 가리키는 개신교회의 고유한 용어라고 알고 있기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였더니, 전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어로 "Church"로 번역되는, "教會"(교회)라는 번역 용어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한문 문화권 내의 천주교회 안에서. 아무리 늦더라도, 개신교회 측의 첫 번째 선교사로서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이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파견된 해인 1807년보다 무려 약 153년 전인, 1640년 경에 이르면, 이미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교회(敎會)라는 가톨릭 고유의 한자 용어의 어원과 출처들; 게시일자: 2016-01-01]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68.htm <----- 필독 권고

 

1-1-3. 그리고 또한 이제 좀 되었습니다만,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 천주교회 측에서 "중보"(中保)라는 번역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이 용어가 오로지 개신교회의 고유한 용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였더니, 전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애 의하여 1640년 경에 저술된, "천주강생성경직해"가, 아무리 늦더라도, 1762년에 이르면 우리나라 조선에 이미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글[제목: 중보(中保) 라는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용어의 출처와 기원; 게시일자: 2017-11-01]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5.htm <----- 필독 권고

 

1-1-4. 일부 개신교 회(Protestant Church) 신자들이 자신들의 개신교 회(Protestant Church)를 두고서 "신교"(新教)라고 부르고 그리고 천주교회를 두고서 "구교"(舊教)라고 부르는 것을 굽히지 않고 계속하여 주장하는데, "신교"(新教)라는 용어가 개신교 회(Protestant Church)의 고유한 한자 용어인지를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였더니, 전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적으로, 개신교 회(Protestant Church) 측의 선교사가 중국 본토에 처음으로/최초로 입국한 해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1807년인 것은 주지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약 170년 전1636년에 이르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6년에 초간된 "천주강생성경직해" 등에서 이미 "신교"(新教)라는 용어가, 예를 들어, "유교"(儒教), "고교"(古)[모세에게 전해진 가르침, 즉, 유다주의(Judaism)] 등과 구분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가르침", , "천주교"(天主教, 천주의 가르침, Christianity)(*), , "천주성교"(天主聖教, 천주의 거룩한 가르침), , "예수성교"(耶穌聖教, 예수님의 거룩한 가르침), 즉, "성교(聖教, 거룩한 가르침)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도입되어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 안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래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신교新教, 구교舊教, 예수교耶穌教라는 천주교회의 용어들의 출처와 기원 및 무지 때문에 발생한 착오왜곡 등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9-11-20]의 제2-3항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4.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1-1: 왜냐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학습하는, 소위 말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하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바로 위의 제1-1항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종류의 문제점들은, 한문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이 아닌, 즉, 한자를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언어권에서는, 예를 들어, 지중해 지역 문화권 안에서는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1-2. (문제점 2)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경시(輕視) 및 부재(不在)가 초래한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


1-2-1. 다음에 발췌된 바를 읽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4.htm

(발췌 시작)

2-8. 다음에 발췌된 바는,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에 의하여 1822년에 초간된 "5거운부", 영중사전, 제292-293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2-1834_로버트_모리슨/5거운부_p2_ch03_영중사전_1822.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에 발췌된 바로부터 유관 부분 발췌 및 우리말 번역 시작)

New sect amongst the Mohamedans,

모하메트교인들 사이의 새 분파(new sect),

 

回敎

회교(回敎, 모하메트의 가르침) 중의 새 분파(new sect)

 

The new sect and the old one contended together.

새 분파(new sect)옛 분파(the old one)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新敎舊敎相爭

새 분파(new sect)옛 분파(the old one)가 함께 서로 다투었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1: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 그런데, "教"(교)의 의미를 "sect"(분파)라고 이해한 것은, 중국인이 아닌,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의 고유한 오류의 견해/개인적 주장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왜냐하면,

(i) 중국 본토의 등소평의 지원과 독려에 의하여 해마다 1,000명의 학자들이 18년간 작업하여 마련되어 1986년에 출판된"한어대사전"에, 그리고

(ii) 1962년에 대만에서 출판된 "중문대사전" 등에 

제시된 낱글자 "教"(교)의 의미에는 "sect"(분파, 교파)를 말한다는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教(교) 를 교회(教會, Church) 로 번역하는 것은 명백한 번역 오류이다; 게시일자: 2017-08-05]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49.htm <----- 필독 권고

(이상, 게시자 주 1-2-1 끝)


1866년(병인) 우리나라 조선에서 장기간 지속된 대규모의 매우 참혹한 병인박해 발생.


1868년 일본(日本)에서 명치유신(明治維新) 개시


1871년(명치 4년) 신도(神道)[즉, 신사신도(神社神道)]일본(日本)국교()가 됨


1-2-2. 다음은, 미국인인 James Curtis Hepburn(1815-1911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867년에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초간된 "화영어림집성", 즉, "Japanese and English Dictionary", 제344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위의 제1-2-1항에 발췌된,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오류의 견해를 수용하여,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1: https://archive.org/search.php?query=creator%3A%22Hepburn%2C+J.+C.+%28James+Curtis%29%2C+1815-1911%22 > 보라빛 표지를 클릭하면 확보되는 화면의 인터넷 주소 끝에 마우스의 끝을 가져다 놓고, /n8 을 입력한 후에, 엔터 키를 누를 것(주: 엔터 키 누르기를 여러 번 시도하여야 성공할 것임) > 본문이 확보되면, search inside에서 oshiye 를 키 워드로 입력하여 검색하면 다음의 주소가 등장할 것임: https://archive.org/details/japaneseenglishd00hepb/page/n344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5-1911_James_Curtis_Hepburn/1867_화영어림집성_fr_archive_org.pdf 

출처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5-1911_James_Curtis_Hepburn/1867_A_Japanese_and_English_Dictionary_with_a.pdf [주: 본문 검색 가능함]

(출처 1로부터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출처 4: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5-1911_James_Curtis_Hepburn/1873_japaneseenglishe00hepb.pdf 

(출처 4로부터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2: (1) Hepburn1867년 에 초간된 자신의 사전 "화영어림집성"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위의 제1-2-1항에 안내된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에 의하여 1822년에 초간된 "5거운부", 영중사전을 참조하였음은, 대단히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위의 제1-2-1항에 발췌된,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오류의 견해를 수용하여,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특히 위에 안내된 1867년 초판의 Hepburn의 사전 "화영어림집성"은, 당시의 일본어 단어들의 발음들을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였음에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이 사전의 출판 덕택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의 유럽인들이 일본어 발음을 학습하고 연구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제1-2-5항에 발췌된, 개신교회 측 선교사 Ambrose Daniel Gring(1849-1935)에 의하여 마련되어 1884년(명치 16년)에 일본에서 초간된 [따라서, 당시의 일본에 널리 배포되었을] "대역 한화영자서"(對譯 漢和英字書)(8천자), 제135쪽에서 동일한 일본어 표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요즈음의 일본어에서는 이러한 일본어 표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입니다.


(3) 띠리사. 19세기 중반의 일본어 표기와 발음을 연구하는 요즈음의 일본 문화 연구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생각되어, 아래의 게시자 주 1-2-5에 제시된 정보에 근거하여 10시간 이상의 시간을 들여 확보된 이들 자료들을 또한 제공해 드립니다.


(4) 다른 한편으로, 1867년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출판(梓行)된 "화영어림집성"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1880년일본 요코하마(YOKOHAMA)에서 C. Levy 출판사에 의하여 출판된 "한불자전"의 서문에 담긴 내용의 서술 방식과 수록된 표제어들에 대한 서술 방식 등을 서로 비교해보면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는데,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이들 두 사전들의 출판 년도들과 동일한 일본 요코하마(YOKOHAMA, 橫濱)에서 출판(梓行)되었음을 또한 고려할 때에, "한불자전"의 제반(諸般) 양식들이 "화영어림집성"의 제반(諸般)양식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1-2-2 끝)


1-2-3.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 


다음은, 미국 개신교회 장로파(Presbyterian) 소속의 선교사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중국 영파 소재 미화서관에서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漢英韻府"(한영운부), 제372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A_syllabic_dictionary_of_the_Chinese_lan_5방원음에_따라.pdf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wufangyuenyin00willrich_1889년_인쇄.pdf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특히 문제가 있는, 출처 미상의 부분의 발췌 및 우리말 번역 시작)

opinions, tenets; the people who hold them, a religious or political sect, for the Government prescribes the opinions and ritual of its subjects.


소신(所信, opinions)들, 주의(主義, tenets)들을 말하며; 그리고 그것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인, 어떤 경신적(religious) 혹은 정치적(political) 분파(sect)를 말하는데, 왜냐하면 정부(Government)가 그 대상(subjects)들의 소신(所信, opinions)들 및 의식(儀式)/의례(儀禮)(ritual)를 규정(規定)하기(prescribes) 때문이다.(*)


-----

(*) 번역자 주: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의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 해당 교(教)교주(主), 즉, Lord 혹은 Governer, 대신에, 정부(Government)가 바로 이 문장의 주어인 것이 커다란 문제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특정 교(教)교주(主), 즉, Lord 혹은 Governer의 가르침은 소위 말하는 해당 교(教)의 "經書"(경서)들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국가의 정부(Government)에 초법적이고 초월적인 권한(ahthority)을 인정하는 바로 이러한 납득불가인 기술 때문에 낱글자 "教"(교)"sect"(분파, 교파)를 의마한다는 주장은, 1868년에 개시된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에 "신도(神道)"를 신봉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 국가를 추구하였던 일본(日本) 이외의, 한문 문화권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가히 어불성설의 주장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아래의 제2항을 또한 읽도록 하라.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2-3: (1) 다음은,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가 자신의 저서인 "한영운부"의 낱글자들의 음운에 따른 배치/나열 시에 참조하였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五方元音"(5방원음)에서 발췌한 바인데, "5방원음"이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제시된 어불성설의 설명의 근거 문헌이 아님을 확인합니다:


출처 1: https://ctext.org/library.pl?if=gb&file=14041&page=146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01-1664_번등봉/5방원음_ho04_00553_0002.pdf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 다른 한편으로, 다음에 발췌된 바는, Samuel Wells Williams1874년에 자신의 저서인 "한영운부"를 출판한 직후인 1875년구약 성경 창세기신약 성경 마태오 복음서일본어로의 번역을 완료하였으나, 그러나, 이들이 출판되기 전에, 화재가 발생하여 이들의 원고들을 소실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amuel_Wells_Williams 

(발췌 시작)

[...]


In 1860, he was appointed chargé d'affaires for the United States in Beijing. He resigned his position on October 25, 1876, 43 years to the day that he first landed at Guangzhou in 1833. Around 1875, he completed a translation of the Book of Genesis and the Gospel of Matthew into Japanese, but the manuscripts were lost in a fire before they could be published.


He returned to the United States in 1877 and became the first Professor of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in the United States at Yale University.


[...]


1860년에 그는 북경 소재 미국을 위한 업무 담당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1833년에 중국 광주(Guangzhou)에 그가 처음 상륙하였던 바로 그날로부터 43년째인, 1876년 10월 25일자로 자신의 직위에서 물러났습니다. 1875년 경에, 그는 [구약 성경 모세오경 중의] 창세기 책 및 [신약 성경 중의] 마태오 복음서의 일본어로의 번역을 완료하였습니다만,(*) 그러나 이들이 출판되기 전에 화재로 인하여 이들의 원고들이 소실되었습니다.


그는 1877년에 미국으로 되돌아갔으며 그리고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미국 내에서 중국 언어 및 문헌에 대한 첫 번째 교수가 되었습니다.


-----

(*) 번역자 주: Samuel Wells Williams1874년에 자신의 저서인 "한영운부"를 출판한 직후인 1875년에, 특히 이들 두 책들을 또한 일본어로 번역한 이유에 대하여서는, 아래의 제2-4항에서 다루고자 한다.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따라서, Samuel Wells Williams1871년에 이미 신도(神道)가 그 국교인 제정일치 국가가 되어버린 일본에 선교/전교/복음화를 하기 위하여, 위에 발췌된 바와 같은 어불성설의 설명을 제시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다음에 안내된 정보들은, 개신교회 측의 미국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중국 영파 소재 미화서관에서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漢英韻府"(한영운부) 1903년(명치 36년)까지 초판 그대로 인쇄되어, 한문 문화권 안에 거의 30년 동안 널리 배포되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A_syllabic_dictionary_of_the_Chinese_lan_5방원음에_따라.pdf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wufangyuenyin00willrich_1889년_인쇄.pdf  

출처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syllabicdictiona00will_1896년판_부수_색인_등_제거됨.pdf 

출처 4: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wufangyuenyin00willrich_1903년_인쇄.pdf 

 

그리고 다음은,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漢英韻府"(한영운부)에 실린 단어들을 찾아보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1879년1904년에 각각 출판된, 이 한영사전의 색인(Index)들이다:

 

출처 5: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9_indextodrwilliam00acheiala.pdf

출처 6: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904_Hakka_Index_cu31924023344587.pdf  

(이상, 게시자 주 1-2-3 끝)


1-2-4.

1-2-4-1. 다음은, 개신교회 선교사 귀츨라프(1803-1851년) 의 협조자이기도 하였던, 직업이 의사이기도 하였던, 독일 개신교회 루터파 출신의 선교사, Lobscheid(1822-1893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그 초판이 1863년에 출판된, 1884년(명치 16년)일본에서 일본인에 의하여 증정(增訂)되어 출판된 [따라서, 당시의 일본에 널리 배포되었을],(*) "English and Chinese Dictionary"(增訂 英華字典), 제948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제시된 용례(examples)들에서, "異"(이교)"a denomination which dissents from an estalished church"로 번역하였고, "儒(유교)""the sect of the learned"로 번역하였으며 그리고 "道"(도교)"the Tau sect"로 번역하는 등, 위의 제1-2-1항에 발췌된,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오류의 견해를 수용하여,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2-1893_Lobscheid/1884_chinesedienglish00lobsrich_3자경_영어본_외.pdf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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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은 바로 위에 발췌된 영화사전의 판권이 표기된 페이지를 발췌한 것이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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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 다음은, 개신교회 선교사 귀츨라프(1803-1851년) 의 협조자이기도 하였던, 직업이 의사이기도 하였던, Lobscheid(1822-1893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그 초판이 1863년에 출판된, 1884년(명치 16년)일본에서 일본인에 의하여 증정(增訂)되어 출판된"English and Chinese Dictionary"(增訂 英華字典), 제371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영어 "denomination""分派"(분파) 혹은 "派"(교파)로 번역된 경우가 전혀 없음에 주목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2-1893_Lobscheid/1884_chinesedienglish00lobsrich_3자경_영어본_외.pdf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1-2-5. 다음은, 개신교회 측 선교사 Ambrose Daniel Gring(1849-1935)에 의하여 마련되어 1884년(명치 16년)에 일본에서 초간된 [따라서, 당시의 일본에 널리 배포되었을] "대역 한화영자서"(對譯 漢和英字書)(8천자), 제135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위의 제1-2-1항에 발췌된,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오류의 견해를 수용하여,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49-1935_Ambrose_Daniel_Gring/1884_eclecticchinesej00grinrich.pdf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5: (1) 바로 위에 발췌된, 1884년(명치 16년)에 일본에서 초간된 [따라서, 당시의 일본에 널리 배포되었을] "對譯 漢和英字書"(대역 한화영자서) 책의 입문(Introduction) 바로 직전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참고서적들의 목록이 있다. 특히 참고한 한영사전들 중에서 위의 제1-2-3항에 안내된,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Samuel Wells Williams"한영운부"가, "Williams' Syllable Chinese Dictionary"라는 제목으로, 제일 먼저 배치되어 있음에 주목하라: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 그런데,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는, 중국 영파 지역으로 파견된 미국 개신교회 측의 장로회파 소속의 선교사인 윌리엄 마틴(William Martin, 1827-1916년)에 의하여 1863년에 상해에서 초판 발행된 "The Analytical Reader"가 또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1778년 경에 우리나라 조선의 광암 이벽 성조(1754-1785년)에 의하여 작문된 한시(漢詩)인 "성교요지"가 이 책 "The Analytical Reader"에 그 제목이 삭제된 상태로 실려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demonstrate)하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최근 논문들/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바로 아래에 있는 첫 번째 글(1996.htm)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6.htm <-----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1.htm <-----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0.htm <-----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 권고

(이상, 게시자 주 1-2-4 끝)

 

1886년(명치 19년 1월) 일왕(日王)을 살아있는 신(god)으로 숭배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를 구체화하기 위한 "神道教規"(신도교규)일본(日本)에 제정/선포됨으로써, 이후 종교 간섭/통제/탄압의 법적 근거가 마련됨

 

1894년 우리나라 조선의 과거제도 폐지됨[주: 이로써 우리나라 조선에서 주자학(朱子學)/성리학(性理學)이 학문(學問)이리고 불리게 됨]

 

1894-1895년 청일전쟁(주: 일본이 승리함)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가 됨


1-2-6. 다음은, 1896년 일본 삼성당 발행"화영대사전" (An Unabridged Japanese - English Dictionary), 제1096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이 대사전에 수록된 한자 낱글자 "教"의 설명에서, "sect"(분파, 교파)를 말한다는 오류의 설명이 더 이상 제시되지 않았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96_화영대사전/1896_cu31924082117288.pdf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6: (1) 더 나아가, 위의 사전의 본문 전체에 대하여 "sect" 단어를 검색하면, "教派"(교파)라는 단어는 검색되지 않습니다. 지금 자적한 바를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위의 제1-2-2항에 유관 부분이 발췌된1867년에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초간된 James Curtis Hepburn(1815-1911년)"화영어림집성", 즉, "Japanese and English Dictionary" 등의 이전에 출판된 일영사전들의 결함(defects)들과 부족(deficiencies)들에 대하여 그 입문(Introduction)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1896년 일본 삼성당 발행"화영사전" (An Unabridged Japanese - English Dictionary)에는, "별파"(different sect, 제72쪽), "분파"(a religious sect, 제94쪽), "파"(sect, 제269쪽), "각파"(every sect, 제556쪽), "종파"(a sect of religion, 제1335쪽); 그리고 "교"(teaching, 제1096쪽), "개신"(new, 제1281쪽; 주: 오류의 번역), "신교"(new religion, Protestantism, 제1282쪽; 주: 오류의 번역) 등의 표현들은 수록되어 있으나, 그러나 유독 "教派"(교파)라는 표현은 수록되어 있지 않음을, 위의 사전의 본문 전체에 대하여 "sect" 단어를 검색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다른 한 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한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두 개 이상의 낱글자로 구성된, "教"(교)로 시작하는 한자 단어들은 대략 150개 정도로 꽤 많으나,

https://sou-yun.cn/QR.aspx?ct=%e6%95%88&c=%e6%95%99&qtype=2 


그러나 위의 "화영대사전"의 본문에 대하여 "oshie"로 검색을 해 보면, "教"(교)로 시작하는 한자 단어가 의외로 적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i) 낱글자 "教"(교)의 사용을 꺼리거나 혹은 (ii) 위의 게시자 주 1-2-5에서 보듯이, "옥편", "강희자전" 등의 한자사전들을 또한 사용함을 의미한다는 생각이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본글에서 위의 제1-2-1항부터 안내된 다수의 한자사전들을 추가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1-2-6 끝)


1904-1905년 러일전쟁(주: 일본이 승리함)

 

1906년 중국 청나라의 과거제도 폐지됨[주: 이로써 중국에서 주자학(朱子學)/성리학(性理學)이 학문(學問)이라고 불리게 됨]

 

1910년 한일합방

 

1-2-7. 다음은, 중국에 파견된 외교관(주: 중국 영파 지역의 영사)을 역임한 영국인인 Herbert Giles(1845-1935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892년에 그 초판이 중국 상해에서 발행된, 1912년 중판 "Chinese-English Dictionary", 권1, 제278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위의 제1-2-1항에 발췌된,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오류의 견해를 수용하여,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45-1935_Herbert_Giles/교_sects_in_1912_Giles_Chinese-English_dictionary_권1_제278-279쪽.pdf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1911년 손문중화민국 건립

 

1912년 중국 청나라 멸망

 

게시자 주 1-2: (1) 1807년과 그 이후에, 적어도 100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한문 문화권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저술들을 통하여 시종일관, 위의 제1-2-1항에 발췌된,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오류의 견해를 수용하여,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왔음을, 위의 제1-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한문 문화권 선교/전교/복음화에 천주교회 측보다 거의 220년 정도 늦게 참여한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이, 왜냐하면 위의 제1-1항에서 이미 지적한 바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전교/복음화에 있어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그러나 대단히 경솔한, 한 개의 손쉬운 방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3) 자연법적으로, 왜냐하면 한자 낱글자 "教"(교)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에는 "sect", 즉, "분파"의 의미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Because, there is no meaning of "sect" in the literal sense of the word "teaching".) 


따라서 그러한 주장을 계속하게 되면, "예수님의 가르침"(Christianity), 즉, "예수교", 즉, "천주교", 즉, "천주성교", , "예수성교"(耶穌聖教, 예수님의 거룩한 가르침), 즉, "성교", 즉, "총교", 즉, "은교", 즉, "신교"(新教)(*) 거룩함(Holiness)의 상실을 스스로 초래하여, 이 가르침의 선교/전교/복음화를 세속 안에서 야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세속 안에 있는[즉, 성별되지 아니한(non-consecraed))] 이 가르침의 대상들에게 바로 이 가르침에 대한 경시와 불신, 심지어, 조롱 등의 비 선교적/비 전교적/비 복음화적 결과들 오로지 야기함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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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들 표현들이 서로 논리적으로 등가인(logically equivalent) 것은 위의 제1-1-4항과 거기에 안내된 글을 꼭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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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어지는 제2항에서는, 바로 위의 제(3)항에서 지적한 바가 세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한 개의 용례(an example)로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다신교(多神教) 지역인 일본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1-2 끝)

 

2. (문제점 3) 하나의 연(緣, a condition)으로서 일본(日本)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에게 제공된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의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가 초래한 재앙(災殃, disasters)들인 (i) 신도(神道)의 위(偽) 조직화(組織化)(false structuralization), (ii) 만주사변(滿洲事變, 1931년), (iii) 중일전쟁(中日戰爭, 1937-1945년), (iv)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 1941-1945년), 그리고 (v) 핵무기(核武器)의 등장 및 피폭(被爆)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12월 30일]

2-0. 바로 아래에 발췌된 바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의 게시자 주 2-1: 제(3)항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발췌된 바에 있는 책 "Religions of the World"(세계의 경신[제계]들)은, 1960년대 중반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에 당시의 교황님의 요청에 의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담은 "Catholic Catechism"(가톨릭 교리서)를 출판하기도 하였던, 미국 예수회 소속의 Hardon 신부님(1914-2000년)의 저서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교회의 출판 검열을 거쳐 1963년에 초간된Hardon 신부님의 책 "Religions of the World"(세계의 경신[제계]들)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therealpresence.org/archives/Protestantism/Protestantism_019.htm 

 

이 책을 저술할 당시에 Hardon 신부님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Comparative Religion(비교종교학), Associate Professor(부교수)로 재직 중이셨습니다.

 

바로 위에 안내된 책 중에서, 일본의 신도(神道)에 대한 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으며,

http://www.therealpresence.org/archives/Protestantism/Protestantism_028.htm 

 

특히,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직후에, 일왕과 일본 정부에 의하여 어떠한 조치가 취하여졌는지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습니다:

 

(발췌 시작)

In years immediately preceding the war and during the conflict, Shinto ideology reigned supreme. Statements were issued to reassure the people of their divine ancestry and the heavenly mandates of the emperor. Then came the humiliating defeat of Japan in 1945 and with it disappeared by official proclamation the centuries old status of the emperor’s divinity and the more recent innovation of shrine Shinto.

 

태평양 전쟁 바로 직전의 해들과 이 전쟁 동안에, 신도(神道) 관념(Shinto idology)은 최고의 위력을 떨쳤습니다. 백성에게 그들의 신성적 선조(divine ancestry)와 이 제국의 천상 명령(heavenly mandates)들을 재확인하기 위한 성명서(statements)들이 발포되었습니다(were issued). 그런 다음에 1945년에 일본의 굴욕의 패배가 왔으며 그리고 이 패배와 함께 일본 정부의 유관 부서의 선포(official proclamation)에 의하여 일왕(日王)의 신성(神性, divinity)의, 몇 백년의 오래된(centuries old), 지위/신분(status)과 신사신도(神社神道, shrine Shinto)라는 더 최근의 제도(制度, innovation)가 사라졌습니다.

 

In his New Year’s message to the nation in 1946, the reigning emperor Hirohito declared, “The ties between Us and Our people have always stood upon mutual trust and affection. They do not depend upon mere legends and myths. They are not predicated upon the false conception that the emperor is divine and that the Japanese people are superior to other races and are fated to rule the world.” A few weeks earlier (December 15) State Shinto and all it stood for was abolished with the incisive statement that “the perversion of Shinto theory and beliefs into militaristic and ultra-nationalist propaganda” had plunged the Japanese nation into a tragic war.

 

당시의 군림하는 일왕 히로히토(Hirohito)는, 1946년에 이 나라 쪽의 그의 신년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우리들과 우리 백성 사이의 유대(ties)들은 상호(mutual) 신뢰 및 애정(trust and affection) 위에 항상 서 있었습니다. 이 유대들은 단지(merely) 전설(legends)들과 신화(myths)들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 유대들은 일왕이 신성하다는 그리고 일본 백성이 다른 인종들보다 우수하여 그리하여 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운명지워져 있다거짓 개념(false conception) 위에서 단언되지/단정되지(predicated) 않습니다."

 

몇 주 전(12월 15일)에 국가신도(國家神道, State Shinto)와 이 신도(神道)가 나타내는 모든 것들이, 다음과 같은, 통렬한 성명서(the incisive statement)와 함께 폐지되었습니다(was abolished): "군사 우선주의적인(militaristic) 그리고 극단의-국가주의자들의(ultra-nationalist) 선전(propaganda) 안쪽에 있는 신도(神道) 이론과 믿음(Shinto theory and beliefs)들곡해(perversion)"는 일본인들의 나라를 한 개의 비참한 전쟁(a tragic war) 안쪽으로 과거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이상, 2019년 12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2-1. 위의 제1-2항에서, 중국과 일본에 머물렀던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저술되어 출판된 일련의 사전들에 실린 한자 낱글자 "教"(교)의 의미를 1807년부터 1912년 경까지 거의100년의 긴 세월 동안, 그 출판 연도에 따라 내림차 순으로, 들여다 보았으며, 이 고찰의 결과를 위의 게시자 주 1-2: 제(1)항에, 다음에 발췌된 바와 같이, 요약 정리하여 기술하였습니다:

 

(위의 게시자 주 1-2: 제(1)항으로부터 발췌 시작)

1807년과 그 이후에, 적어도 100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한문 문화권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저술들을 통하여 시종일관, 위의 제1-2-1항에 발췌된,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오류의 견해를 수용하여,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왔음을, 위의 제1-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지적하고 있는 로버트 모리슨오류의 주장은, 또한 일본에거 그대로 전달되었음을, 위의 제1-2-2항, 제1-2-3항, 제1-2-4항, 그리고 제1-2-5항에서 매우 정밀하게 실증적으로(positively)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번 항에서 다루는 문제점과 관련하여, 특히, 제1-2-3항에서, 미국 개신교회 장로파 소속의 선교사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중국 영파 소재 미화서관에서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漢英韻府"(한영운부), 제372쪽에 제시되어 있는, 로버트 모리슨오류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시도하는, 어불성설의 주장을 반드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2.

2-2-1. 다른 한편으로, 다음에 발췌된 바는, 1868년에 개시된 일본의 명치유신 이후 191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일왕을 살아있는 신(god)으로 숭배하고자 하였던 일본 내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였는지에 대한, 우리 역사 넷 홈페이지 제공의, 역사적 사실들의 요약입니다:

 

출처: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51_0050_0010_0010 

(발췌 시작)

     [...] 일제는 서양 제국에게 자국이 문명국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하여 겉으로는 근대적인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도, 그들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성격상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神道(신도)‘天皇信仰’(천황신앙)을 축으로 한 祭政一致(제정일치)를 추구하였고,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배타적인 國家神道(국가신도)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또한 민중을 교화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종교와 교육을 국민 교화의 수단으로 생각함으로써 이를 철저히 국가가 통제·이용하는 전근대적인 종교정책(*1)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메이지정부가 전국에 걸쳐서 추진한 최초의 종교정책은 ‘神佛分離政策’(신불분리정책)이었다. 그 내용은 ‘神’과 ‘佛’을 같은 장소에 모시고 섬기는 것을 금지한 것으로, 사실은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神佛이 혼합되어 신도가 불교에 눌려 있었으므로 이를 분리시켜 신도를 장려하고 불교를 억압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신도국교화정책1868년부터 1871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추진되어 1871년에는 전국의 모든 神社(신사)를 국가의 종사로 하고 계층적 寺格制道를 마련하여 신사의 공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일본 황실의 조상신을 제사하는 이세징구(伊勢神宮)신사의 本宗으로 정하였다. 이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도 없지 않았지만, 이에 호응하여 수많은 불상들이 목이 잘리고, 사원의 경제적 기반이 삭감 위축되었으며, 불교의 信徒 조직인 檀家制度가 신사를 중심으로 한 氏子制度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신도 국교화정책이 국내외의 비판을 받게 되자 일본 정부는 1882년 神社神道(신사신도)를 국가의 제사로서 일반 종교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이른바 제사와 종교의 분리 조치를 취하였다. 즉 일본 정부는 “신사신도는 국가의 제사이며, 종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신사신도의 초종교적 절대우위를 확립하고, 그것을 교파신도(教派神道),·불교,·기독교(Christianity, 천주교/예수교) 등 일반 종교위에 군림하게 하였던 것이다.(*2)

 

그리하여 신사신도국가신도성을 확립하고 이를 통하여 타 종교를 지배 통제함(*3)과 동시에 신교의 자유, 정교분리론에 의한 국내외의 비판을 봉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217)東京辯護士會 編,≪靖國神社法案の問題点≫(東京:新敎出版社, 1976), 23쪽.

 

이어서 그들은 1889년 2월 발포한<대일본제국헌법>과 이듬해 10월에 반포한<교육에 관한 칙어>에서 천황의 절대적 권위와 국민의 복종과 충성의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국가신도의 교의를 법제적으로도 완성하였다.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는<제국헌법>제28조에서 “일본 臣民은 안녕 질서를 방해하지 않고 의무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信敎의 자유를 갖는다”(*4)고 규정하여 제한적 범위에서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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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1889년에 선포된 "대일본제국헌법" 전문과 그 해석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889_대일본제국헌법_digidepo_789063_PDF.pdf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889_대일본제국헌법_및_해석_digidepo_1081713_PDF.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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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1월에 일어난 이른바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불경사건’은 신앙의 자유라는 것이 국가적인 방침과 어긋날 때 어떠한 국가적·사회적 박해를 당하게 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 도쿄의 제일고등중학교 교원이었던 우치무라가 천황이 하사한 ‘교육칙어 봉독식’에서 칙어에 대해 최경례를 해야 할 때 잠시 망설였다는 이유로 불경한 사람으로 몰려 사회적 지탄을 받고, 교직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그 충격으로 부인까지 잃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일본 문부성은 1899년 8월<문부성 훈령>12호라는 것을 발령하여 ‘교육과 종교의 분리’라는 미명으로 학교교육에서 종교교육이나 종교의식을 행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면서도 정작 일본 정부는 학생들에게 ‘천황의 사진’이나<교육칙어>에 최경례를 하게 하고, 신사에서 거행되는 각종 애국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는가 하면, 수신·지리·국사(일본사)·국어(일본어) 교과서에 神道(신도)와 천황에 대한 신화와 종교적 내용을 넣어 편성하여, 국가신도의 교의 내지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주입하였던 것이다. 즉 신사신도는 사실상 일본의 국교였으며, 종교교육을 국가가 독점했던 것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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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890년에 선포된 "교육칙어" 전문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890_교육칙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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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도 부족하여 이미 1890년대 말부터 여러 종교단체를 더욱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른바 ‘종교법’을 만들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 즉 1898년 제14회 제국의회에<宗敎法案>을 상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종교법안의 성격은 “국가가 종교를 감독하여 사회질서의 안녕을 해치지 않고 또한 臣民의 의무를 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일 뿐 아니라 그 직무에 속한다”(*6)라고 하는 당시 수상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제안 설명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종교단체에 대한 국가의 감독과 통제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

 

     일본 정부는 국가신도 이외의 종교를 탄압만 하였던 것은 아니다. 이들 종교를 회유하고 이용하는 정책도 병행하고 있었다.(*7) 1912년 2월 내무차관 도코나미 타케지로(床次竹二郞)의 주선으로 내무대신 하라 타카시(原敬)는 신도·불교·기독교의 세 종교 대표자들을 초청하여 국민도덕 진흥에 대해서 종교계의 협력을 요청하는 회합을 가졌다. 이것은 ‘三敎會同’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회합에서 그들은 “一. 우리 각각은 그 교의를 발휘하여 皇運을 扶翼하여 더욱 더 국민도덕의 진흥을 도모할 것을 기한다. 一. 우리는 당국자가 종교를 존중해서 정치·종교 및 교육과의 관계를 융화하여 국운신장에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는 결의를 하였다. 이것은 정교유착이라고 할만큼 정치 권력에 의해서 종교가 이용당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일본 정부에 의한 종교계의 이용과 통제1940년대<종교단체법>체제하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9월에는 일본의 전종교계를 망라하여 그들의 이른바 大東亞共榮圈(대동아공영권) 건설에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 大日本戰時宗敎報國會(대일본전시종교보국회)를 결성하고, 당시 문부대신 니노미야 하루시게(二宮治重) 중장이 직접 그 회장을 맡았다. 이는 일본 정부가 ‘종교 교화 활동’을 완전히 군부의 통제하에 두고, 종교단체를 직접 통제·장악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제는 국가신도 내지 神社神道(신사신도)를 정점으로 하여, 그 하위에 교파신도(教派神道)불교, 기독교(Christianity, 천주교/예수교)를 국가의 공인종교로 삼고 국가 시책에 충실히 따르도록 통제·이용하면서,(*8) 그 외의 종교는 유사종교단체라 하여 불법화하고 경찰력을 동원하여 통제·탄압하였다. 그리고 공인종교라 하더라도 그들의 통치 방침에 비협조적이거나 위배될 때는 가차없이 탄압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신사신도를 국교로 한 여타 종교의 통제·이용 정책이 그들의 종교정책의 기조였으며, 조선총독부는 일본 본토에서 제정에 실패한 제반 종교 관련 법안들까지 일찍부터 총독의 직권으로 제정하여 더욱 가혹한 형태로 그것을 적용하였던 것이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2-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밑줄이 그어진 (*1), (*2), (*3), (*4), (*5), (*6), (*7), (*8) 모두의 근거가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바임을 반드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2-2-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 개의 신화인 신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작위적으로/인위적으로 한 개의 그 무엇으로 변모해 왔는가에 대한 글[제목: 일본의 종교: 신도]입니다. 바로 위의 제2-2-1항에 발췌된 바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신도_입문.htm <----- 필독 권고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한 글을 읽으면, 예를 들어, 일장기가 왜 일본의 국기인지에 대한 그 문화적 이유를, 그리고, 더 나아가, 일부 일본인들에게 일욱기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2-2-3. 그리스 신화처럼, 일본 열도의 한 개의 신화인, 따라서 교주(教主)가 없는 신도(神道)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와는 크게 다르게, 일본 바깥의 한문 문화권의 한문 문헌들에서 전혀 언급이 되지 않고 있어서, 그리고, 예를 들어, 시기적으로, 중국 당나라의 서안과 교역을 하고 있었던, 675년에 시작되는, 통일신라 등을 생각할 때에, 인류문화사에 있어 어느 민족의 고유한/독자적인(unique) 신화가 처음으로/최초로 등장하기에는 너무도 늦은 시기인 기원후 712년 경에 비로소 그야말로 그들만이 인정하는 일본의 문헌 한 개에서 처음으로/최초로 언급되고 있는, 그들만의 전설, 그들만이 인정하는 신화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월 27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김장현의 2009년 학위논문[제목: "습합신학으로서 일본신도사 연구"]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2009_김장현_습합신학으로서_일본신도사_연구_박사학위논문.pdf <----- 필독 권고

 

바로 위의 학위논문은, "원시신도"로부터 1868년 명치유신 이후에 "국가신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까지의 일본의 신도의 외형적 변화의 변천 과정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며, 바로 위의 제2-2-1항에 발췌된 바를 이해하는 데에 또한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국가신도"라는 용어의 의미와 관련하여, 일본제국주의자들이 1945년 8월 15일에 태평양전쟁 항복 이후에, 처음으로 분명하게 개념화된 용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위의 논문의 제81쪽 마지막 단락을 읽도록 하십시오.

[이상, 2020년 1월 27일자 내용 추가 끝]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있는 동영상 20:26에서,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들, 즉, 한반도 "도래족"이 아닌, 일본의 토착인들인 아이누(Ainu)인들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은, 신도(神道)[즉, 신사신도(神社神道)]일본(日本)국교()가 된, 1871년(명치 4년)이라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Q6cYEQUpBg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이 인정하는 한 개의 신화를 19세기 후반부에 들어와 구체적으로, (i) 교주(教主)가 없는 한 개의 신화인 신도(神道)를, 예를 들어, 교주가 있는 불교, 그리스도교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모종의 어떠한 작업들을 반드시 작위적으로/인위적으로/의도적으로 수행하여야 하였을 것이고, 그리고 또한 (ii) 교주(教主)가 없는 한 개의 신화인 신도(神道)를 예를 들어, 교주(教主)가 있는 불교, 그리스도교의 위에 놀려놓기 위하여서는 또한 반드시 모종의 어떠한 작업들을 반드시 작위적으로/인위적으로/의도적으로 수행하여야 하였을 것인데, 특히 이 시기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참으로 무모하게 수행한 바로 이 두 단계의 작업들이 위의 제2-2-1항에 발췌된 바에 있는 내용이며, 이에 대하여 이어지는 항들에서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3. 

2-3-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2-2-1항 (*2)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글[제목: 신도대교에 보이는 신도의 교단화 과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2005_신도대교에_보이는_신도의_교단화_과정_05inoue-kr.pdf  

 

특히,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논문의 제6-8쪽에는, 신도사무국 교약과목(教約科目)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왜냐하면 일본의 신화(神話, myth)를 기록한 5-6세기의 문헌들만 오로지 근거하기 때문에, 따라서 교주(教主)가 없기 때문에, 그 고유한 경서(經書) 자체가 없는 신도(神道)가 그 교육과정에 어떠한 한문본 문헌들을 학습하게 하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적에서, 특정 교(教)교주(主), 즉, Lord 혹은 Governer의 가르침은 소위 말하는 해당 교(教)의 "經書"(경서)들에 기록되어 있음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바로 위의 출처에 있는 논문의 제8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일본의 고전(古典), 국학자의 저작뿐만 아니라, 논어(論語), 장자사상(老荘思想), 그리고 기독교 관련서적도 학습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이 목표가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상세한 것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신도사무국의 설치가 신도교화의 태세를 빨리 정비할려고, 조직면에서도 교의면에서도 형식을 갖추어 가려는 의도가, 그 근본에 있다는 것은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2-3-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일본의 신도 체계가 얼마나 복합하게 얽혀있는지를 엿볼수 있게 하는 커다란 계통도인, 2019년에 마련된 "일본 신도 도통도"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2019_일본_신도_도통도.pdf

 

2-3-3. 위의 제2-2항에 발췌된 글과 제2-3-1항에 안내된 논문을 잘 읽어보면, 위의 제2-2항(*2)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의 신도가 다음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던 신사신도(神社神道), 즉, 국가신도(國家神道), 즉, 신도(神道) 아래에, 다음의 분파(sect)들이 속해 있음:

 

교파신도, 신도사무국(즉, 신도본국), 불교, 기독교(즉, 천주교/예수교)

 

그렇다면,

 

질문 1: 기독교(즉, 천주교/예수교)가 어떠한 이유 때문에 19세기 말기에 일본에서, 한문 문화권의 미풍양속인 "孝"(효, filial piety)를 근거로 내세우나, 그러나, 그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를 위하여 대단히 어설프게 제시된 근거일뿐이고, 사실은, 일왕(日王)을 살아있는 신(god)으로 우상 숭배하는, 샤머니즘(shamanism)의 한 종류인 신사신도(神社神道), 즉, 국가신도(國家神道), 즉, 신도(神道) 아래에 속하는 네 개의 분파(sect)들 중의 한 개로 전락(轉落)하게 되었을까요???

 

질문 1에 대한 답변: 왜냐하면,

 

(i) 위의 제1-2-1항에서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지적하였듯이, 개신교 회(Protestant Church) 측의 선교사로서 중국에 처음으로/최초로 파견되어 1807년에 중국 본토에 입국한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이 1807-1822년 기간의 성경의 번역 작업 중에 또한 마련하여 1822년에 초간한, "5거운부", 영중자전, 제292-293쪽에서 "教"(교)의 의미에 "sect"(분파)의 의미가 있다는 대한히 심각한 오류의 주장을 하였고, 그리고

 

(ii) 위의 제1-2-3항에서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지적하였듯이, 미국 개신교 회 장로파 소속의 선교사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중국 영파 소재 미화서관에서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漢英韻府"(한영운부), 제372쪽에서. 바로 이 오류의 주장의 근거로서, "왜냐하면 정부(Government)가 그 대상(subjects)들의 소신(所信, opinions)들 및 의식(儀式)/의례(儀禮)(ritual)를 규정(規定)하기(prescribes) 때문이다"라고,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가 대단히 잘못 정당화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기독교(즉, 천주교/예수교)가 신사신도(神社神道), 즉, 국가신도(國家神道) 의 하부 구조에 배치되었음을 알아차린 일본 소재 천주교회의 신부님들과 일본 소재 개신교회 측의 목회자들이 일본 정부에 이러한 배치가 잘못되었음을 항의하면, 일본 정부의 유관 부서는 그 즉시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i)(ii)를 문헌적 증거들로서 제시하면서, "그러한 주장들을 여러분들의 선배 선교사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그동안 해 왔던 것 아닙니까?" 라는 반문을, 조롱(scorn)의 한 형태로서, 대단히 진지하고 또 대단히 진솔하게 하면서, "이유 없습니다"와 함께 기각하였을 것이 분명하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생각에, "그렇치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한편으로, 천상교회에서 이러한 대화를 모두 듣고 계셨을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천주교, 즉, 예수교)의 교주이신 하느님이시고 또한 완미한(perfect)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슬프하셨을까요? 아니면, 어떠한 심정이셨을까요?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는, 바로 이것이 그러한 잘못된, 오류의, 주장들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발생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역사와 창조에 있어 그 드러내어짐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the glory of God), 즉, 신성적 영광(divine glory)거룩함(Holiness)의 상실의 문제의 한 결과임을 부디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질문 1에 대한 답변 끝)

 

질문 2: 그렇다면, 일본의 신도(神道)에는 신성적 거룩함(divine Holiness)이 없다는 것인지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대단히 안타깝게도, 예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성자 예수님의 영광(glory), 즉,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 즉, 성령/성신(the Holy Spirit)신도(神道)에는, 그 태생적 속성 바로 그 이유에 근거하여서는, 전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4. 이번 항은 게시자 주 1-2-3: 제(2)항에서 말씀드린 바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4-1. 우선적으로, 다음은 일본의 "천리교" 측 홈페이지에서 전해주는 당시의 상황입니다:

 

출처 1: http://www.marino.ne.jp/~rendaico/mikiron/nakayamamikikenkyu_70.htm 

출처 2: http://www.tenrikyo.kr/dulhana/18126 

(츌처 2로부터 발췌 시작)

18865에는 신도관장 대리 후루가와 도요미찌가 집터로 찾아와서 교조님의 측근들에게 5가지 조항을 담은 서류를 제출하고 강제로 각서를 쓰게 했습니다. 각서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 奉敎主神은 신도 교규에 따를 것.
- 창세이야기는 기기(記紀) 2()에 따를 것.

- 사람은 만물의 영장류이므로 물고기의 혼과 혼동해서는 안 될 것.

 

신앙중지명령에서 조금 완화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교리를 말할 수 없게 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포교활동을 금지시키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신도의 근원은 고사기(古事記, 712), 일본서기(日本書紀, 680-720년 완성)입니다. 이것을 통칭 기기(記紀)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일본국가창세설이 담겨있습니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4-1: 위의 제2-4-1항에 발췌된 바에서 말하는 "신도 교규"의 출처와 전문은 아래의 제2-5항에 안내되어 있습니다.

 

2-4-2. 그러니까, Samuel Wells Williams1874년에 자신의 저서인 "한영운부"를 출판한 직후인 1875년에, 특히 구약 성경 중의 창세기신약 성경 중의 마태오 복음서를 또한 일본어로 번역한 이유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바로 위의 제2-4-1항에서 말하는 일본국가의 창세설이 담겨있는 고사기(古事記, 712), 일본서기(日本書紀, 680-720년 완성)의 허구성을 바로잡기 위하여서였다는 생각입니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미국 개신교회 장로파 소속의 선교사이기도 한 Samuel Wells Williams는, 1874년에 초간된 자신의 저서인 "한영운부" 에 포함되어 있는 위의 제1-2-3항에서 필자가 이미 구체적으로 지적한,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의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의 문제를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정당화하려고 하였던 것 같은데['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의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 그러나 이들의 원고들은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결국에, 1886년(명치 19년 1월) 일왕(日王)을 살아있는 신(god)으로 숭배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를 구체화하기 위한 "神道教規"(신도교규)일본(日本)에 제정/선포되기 적어도 10여년 이전에 일본에 이미 전달된 것은 다만, 위의 제1-2-3항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던,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의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뿐이었던 것입니다.

 

이 지적과 관련하여 특히, 다음의 출처들에 접속하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1874년에 "한영운부"가 거의 30여년간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면서, 본문은 초판의 본문과 동일하게, 계속 출판되었음에 주목하십시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A_syllabic_dictionary_of_the_Chinese_lan_5방원음에_따라.pdf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wufangyuenyin00willrich_1889년_인쇄.pdf  

출처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syllabicdictiona00will_1896년판_부수_색인_등_제거됨.pdf 

출처 4: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wufangyuenyin00willrich_1903년_인쇄.pdf 

 

그리고 다음은,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漢英韻府"(한영운부)에 실린 단어들을 찾아보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1879년1904년에 각각 출판된, 이 한영사전의 색인(Index)들입니다:

 

출처 5: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9_indextodrwilliam00acheiala.pdf

출처 6: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904_Hakka_Index_cu31924023344587.pdf  

 

무슨 말씀인고 하면, Samuel Wells Williams 에 의하여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漢英韻府"(한영운부)에 수록된, 위의 제1-2-3항에서 필자가 이미 구체적으로 지적한,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의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의 문제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의 거의 30년이라는 한 세대의 기간 동안에, '1583년과 그 이후에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한문 문화권에 전달해준 학문(新學問), 즉, 실학(實學)'이 아니라, '1868년에 개시된 명치유신 이후부터 유럽의 독일과 영국 등에 유학을 다녀온 일본인 유학생들이 세속의 일본 사회에 전달하는, 따라서 성리학(性理學) 등의 기존의 한학(漢學)이 자동적으로 배척되는, 학문(學問)'을 학습하였던 당시의 일본의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자들의 사고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2-4-3. 위의 제1-2-3항과 바로 위의 제2-4-2항에서 말씀드린 역사적 사실들을 접하면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漢英韻府"(한영운부)에 수록된, 위의 제1-2-3항에서 필자가 이미 구체적으로 지적한,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의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의 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왜냐하면 "漢英韻府"(한영운부)의 초판이 명치 7년(1874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1860년부터 북경에서 미국을 위한 업무 담당자이기도 하였던 Samuel Wells Williams과 당시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 사이에, "그 본문 중에 그러한 '자가당착(自家撞着, a self-contradiction) II의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를 명기한 漢英韻府"(한영운부)의 출판"과 관련하여, 어떠한 정치적/외교젹 사전 밀약, 협약, 혹은 거래 등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역사학자들이 더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5.

2-5-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일본 국립 국회도서관 홈페이지 제공의 자료인, 1896년(명치 27년)에 출판된 "개정 신도교규 대전"을 읽을 수 있는데, 본문 제373쪽(page 200)에서 "神道禊派"(신도계파)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그러나, 여기서 "禊派"(계파)라는 용어는, 전후 문맥 안에서, "教派"(교파)라는 용어 대신에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896_개정_신도교규_대전_digidepo_815611_PDF.pdf

 

그리고 바로 위의 자료의 제155쪽"神道教規"(신도교규)로 불리는 자료가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 출처의 이 자료는 위의 제2-1항제2-2항, 그리고 제2-3-1항에 발췌된 바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며, 더 나아가, 일본의 신도 연구자들 모두에게 필수적인 자료라 생각되어 안내해 드립니다. 특히 국내의 신도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5-2. 그리고 추가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일본 국립 국회도서관 홈페이지 제공의 자료인, 1907년에 출판된 "신사신도 제식 원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07_신사신도_제식_원리_digidepo_926688_PDF.pdf  

 

2-5-3. 그리고 추가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일본 국립 국회도서관 홈페이지 제공의 자료인, 1937년에 출판된 "국체의 본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37_국체의_본의_digidepo_1880826_PDF.pdf  

 

2-5-4. 그리고 추가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일본 국립 국회도서관 홈페이지 제공의 자료인, 1944년에 출판된 "신사본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44_신사본의_digidepo_1040153_PDF.pdf  

 

2-6. 이번 항과 이어지는 제2-7항에서는, "教派"(교파)라는 용어가 1918년 이전일본에서 처음으로/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2-6-1. 다음은, DonaldMacGillvray(1862-1931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911년에 출판된, "A Mandarin-Romanized Dictionary of Chinese With Supplement of New Terms and Phrases, now current", 제3판, 제74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教派"(교파)라는 용어가 표제어로 실려있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62-1931_Donald_MacGillvray/1911년_제3판_englishchinesedi00tamtrich_제74쪽에_교파_없음.pdf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6-2. 다음은, DonaldMacGillvray(1862-1931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918년에 출판된 일영사전인, "A Mandarin-Romanized Dictionary of Chinese With Supplement of New Terms and Phrases, now current", 제4판, 제91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教派"(교파)라는 용어가 표제어로 실려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62-1931_Donald_MacGillvray/1918년_제4판_englishchinesedi00tamtrich_제91쪽에_교파_있음.pdf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6: 위의 제2-6-1항제2-6-2항에서 고찰한 바는, "教派"(교파)라는 용어가 1918년 이전에 처음으로/최초로 한문 문화권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나, 그러나 이 용어가 일본에서 처음으로/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입증하지 못함에 주목하라.

 

2-7. 이번 항에서 "教派"(교파)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처음으로/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연대순에 있어 내려가면서,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7-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2006년에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한한대사전", 권6, 제294-300쪽"教派"(교파)라는 용어가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2008_한한대사전/교_in_한한대사전_권6_제294-300쪽.pdf  

 

2-7-2.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 보듯이, 비록 1994년에 중국 본토에서 출판된 "한어대사전""教派"(교파)라는 용어가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기는 하나, 그러나 제시된 용례인 책 "中國佛教史"의 출판년도가 1980년대로서, 아래의 제2-7-5항에 제시된 "대한화사전"의 출판 년도 1950년대보다 더 늦기 때문에, 근거 자료로서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guoxuedashi.com/hydcd/211284y.html 

(발췌 시작)

教派  

 

某種宗教內部的派別。
 任繼愈《<中國佛教史>序》:“哲學有許多學派,宗教有許多教派,往往打出不同標志的旗幟以廣招徠。”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2: (1) 1994년에 중국에서 본토에서 초간된 "한어대사전"은, 일본의 고유한 문화를 옹호하기 위한 용도로 기획되어 1950년대에 일본에서 출판된 "대한화사전"의 문제점들의 보완과 1962년에 대만에서 출판된 "중문대사전"의 내용 보강/수정을 위하여 마련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2)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중국 본토에서 출판된 "한어대사전"의 경우에 있어 한가지 커다란 문제점은, 무신론과 유롤론 이데올로기인 세속의 공산주의 이념을 고수하는 중국 정부(Government)의 통제를 받고 있으면서 이 사전이 저술되었음에 있습니다. 이 지적은, 예를 들어"한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宗教"(종교)의 또다른 정의(definition)' C를 아래의 제2-7-5항에 안내된 "대한화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宗教"(종교)의 또다른 정의(definition)' B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에서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2-7-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62년에 대만에서 출판된 "중문대사전", 책4, 제915-922쪽에, "教派"(교파)라는 용어가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pundang/4/cb/1962_중문대사전/교_in_1962_중문대사전_책4_제6121-6128쪽.pdf 


게시자 주 2-7-3: (1) 1962년에 대만에서 출판된 "중문대사전"이, 일본의 고유한 문화를 옹호하기 위한 용도로 기획되어 1950년대에 일본에서 출판된 "대한화사전"의 문제점들을 보완하고자 마련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2) "중문대사전""教派"(교파)라는 용어가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각 종교(宗教), 즉, 우두머리 가르침마다 해당 교(教, 가르침)교주(主), 즉, Lord 혹은 Governer가 있으며, 따라서, 바로 이 교주(主)의 존재 때문에, "教"[교, 바로 이 교주(主) 가르침] 그 자체에는 분파(分派, sect)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니까, 만약에 어떤 자들이 교주(主) 자체가 없는 어떤 신화(a myth)를 한 개의 교(教, 가르침) 혹은 한 개의 종교(宗教, 우두머리 가르침)으로 둔갑을 시키고자 하는 작위적/자의적/의도적 경우가 아니라면, 아래의 제2-7-5항에서와 같은 그러한 수준의, 자기모순을 야기하는, 용어 정의(definition) B의 도입 자체가 결코 시도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7-3 끝)

 

2-7-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50년대에 일본에서 출판된 "대한화사전", 권5, 제505쪽에, "教派"(교파)라는 용어가, 아무런 용례 혹은 출처의 제시 없이, 다만 "종교(宗教)의 분파(分派)"라고 정의되어(is defined)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50년대_대한화사전/분파_in_대한화사전_권5_제505쪽.pdf  

 

게시자 주 2-7-4: 따라서, 이것으로부터, 일본에 "宗教"(종교)라는 용어가 사용된 시점 이후에 "分派"(분파)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이것을 실증적으로 입증/고증하는 구체적인 용례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일본에서 1868년에 개시된 명치유신 직후부터 불과 50여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神道"(신도)를 모든 가르침 위에 들어올리기 위한 작위적이고 자의적인 그리고 의도적인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용어들이 필요에 의하여 그야말로 임의적으로, 일본 정부의 유관 부서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도입되어 사용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7-4 끝)

 

2-7-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50년대에 일본에서 출판된 "대한화사전", 권3, 제956쪽에, '한 분이신 초월자 하느님 쪽으로 경신 행위(exercise of religion)'를 의미하는 번역 용어가 결코 아닌, "宗教"(종교)라는 용어가, 아무런 용례 혹은 출처의 제시 없이, 실려있음으로부터, 이 용어가 1950년대 이전에 일본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50년대_대한화사전/종교_in_대한화사전_권3_제956쪽.pdf  

(발췌 시작)

宗敎

 

人生に超越した崇高, 偉大なる絶對, 卽ち神や佛を敬畏する感じから, これを崇拜信仰して祭祀を行ひ, それよつて慰藉, 安心, 幸福を得て以て人生の缺陷を補はんとする機能.

 

古來, その敎義, 行事等の相違によつて種種の宗敎が有る. 今日に於てに, 佛敎, キリスト敎, マホメット敎が世界の三大宗敎として最も勢力を有する.

 

[수용된] 종교(宗敎) [정의(definition) C](*0)

 

인생(人生)에 있어 초월(超越)하는 숭고(崇高), 위대(偉大)한 절대(絶對)를, 즉, 신(神, god)이나 혹은 부처(佛, Buddha)를, 경외(敬畏)하는 느낌(感, feeling)으로부터,(*1) 이를 숭배(崇拜), 신앙(信仰)하고 제사(祭祀)를 지내며,(*2) 그것으로써 위로(慰藉), 안심(安心), 행복(幸福)을 얻으면서 인생(人生)의 결함(缺陷)을 보충하고자 하는 기능(機能, function)을 말합니다.(*3)

 

옛날부터, 그 교의(敎義, dogma), 행사(行事, event) 등의 서로 다름(相違)에 따라 여러 종류의 종교(宗敎)가 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 불교(佛敎, Buddhism), 그리스도교(Christianity), 마호메트교가 세계의 3대 종교들로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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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24-02-04]

(*0) 번역자 주: (1) 바로 이 정의(definition)를 가지는 "宗敎"(종교)라는 일본식 한자 단어가, 아무리 늦더라도 1899년(명치 32년)에 이르면, 일본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은, 아래에 있는, 제2-7-7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2)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영(spirit)인 신(神, god)은, 전후 문맥 안에서, 즉, 7세기 말부터 8세기 초에 처음으로 기록된고사기(古事記, 712), 일본서기(日本書紀, 680-720년 완성)에 포함되어 있는 일본의 신화들인, 일본 열도의 창조 신화 중에 등장하는 잡신(gods)들의 존재들을 인정하는 일본 문화권 안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이들 사이의 운행 질서도 주관하시는 한분이신 하느님(God, 천주)결코 의미하지 않음에, 반드시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3) 다른 한편으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얀센주의자인 장 바쎄 신부(1662-1707년)는, 일찌기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이들 사이의 운행 질서도 주관하시는 한분이신 하느님(God)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로서 중국 본토에서 잘 정착되어 사용되고 있었던 천주(天主)라는 단어를, [그동안의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활동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예를 들어 귀신(鬼神), 잡신(雜神)에서처럼 전통적 한문 문화권에서 영(spirit)을 나타내는 한자 낱글자 신(神)으로, 작위적으로/자의적으로/의도적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신약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아무리 빠르더라도 "만물시원"이 장 바쎄 신부에 의하여 저술된 1700년 이후에 그리고 아무리 늦더라도 장 바쎄 신부가 신약 성경을 처음부터 히브리서 1장까지 중국어로 번역하였던 해인 1704년 직전에 진행하였고,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측 선교사들이, 장 바쎄 신부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신약 성경의 지대한 영향 아래에서, 아편 전쟁 직후인1850년 초반부터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일찍부터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도입된 하느님(God)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인 천주(天主)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하지 않고, 이 용어를 다른 한자 단어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여, 소위 말하는, "상제(上帝)판" 대표역본 성경[영국 장로파] 그리고 "신()판" 대표역본 성경[미국 장로파]이 각각 출판되었고, 그리고 특히 "신()판" 대표역본 성경이, 일본에서 1886년(명치 19년 1월) 일왕(日王)을 살아있는 신(god)으로 숭배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를 구체화하기 위한 "神道教規"(신도교규)를 인정한, 그리하여 신사참배를 인정한, 미국 개신교회 측 장로파 선교사들에 의하여, 일본에 전달되었음은 또한 잘 얄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더 자새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6.htm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神道教規"(신도교규)에서 사용된 낱글자 "神"은, 어떠한 경우에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이들 사이의 운행 질서도 주관하시는 한분이신 하느님(God)을 나타내는 단어가 결코 아님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2024-02-04일자 내용 추가 끝]

 

(*1) 번역자 주: (1) 여기서 한문 문화권 내에 처음으로/최초로 도입되고 있는 바로 이 개념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독일의 개신교회 측의 신학자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의 책 "Christian Faith"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한 개의 주장(claim), "느낌으로서 경신"(religion as feeling)[정의(definition) B]을 대폭 수용하였다는 생각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이 개념을 한문 문화권에 처음으로/최초로 도입한 자(들)는, 1868년에 개시된 명치유신 이후에, 일본 정부의 국비 장학생으로서 유럽의 어느 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그리고 아래의 제2-6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아무리 늦더라도, 1918년 이전에 본국인 일본으로 귀국한, 일본의 유학생(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2) 번역자 주: [주의 사항 한 개] 그리고, 만약에 바로 여기에 서술된 "宗教"(종교)의 정의(definition)를 받아들이면, 예를 들어, "개신교"(Protestantism)는, 왜냐하면 희생 제물을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가 전혀 없기 때문에, "宗教"(종교)애 포함되지 않음을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3) 게시자 주: 여기서 "종교"를 "... 하는 기능(機能, function)"이라고 정의한(define) 것도 또한, '한 분이신 초월자 하느님 쪽으로 경신 행위'를 이 용어의 의미를 정의하는 문장(defining statement) 중에서 제외시키고자 의도적으로 고안된, 인간 중심주의적 한 시도일 것이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 중의 Defining "religion" 소제목 아래의 글을 또한 잠조하라:

https://en.wikipedia.org/wiki/Religious_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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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2-7-5: (1) 위의 "대한화사전", 권3, 제956쪽에 표제어로 제시된 "宗教"(종교)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C와,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教(교) 를 무작정, 1869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역어, 종교(宗教, religion) 로 번역하는 것은 명백한 번역 오류이다; 게시일자: 2017=-8-01]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한 분이신 초월자 하느님 쪽으로 경신 행위(exercise of religion)'를 의미하는 번역 용어로서의 "宗教"(종교)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AA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47.htm <----- 필독 권고

 

(2) 바로 위의 제(1)항의 요청을 강력하게 권고드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1918년 이전의 일본의 어용학자들이, 한 분이신 초월자 하느님 쪽으로의 경신 행위가 전혀 없는 일본의 세속의(secular) 신도(神道)한 분이신 초월자 하느님 쪽으로의 경신 행위가 있는 가르침(), 즉, 그리스도교(Christianity)보다 더 높이 들어올리기 위하여, 바로 위의 (ii)에서 이미 말씀드린, 1869년(명치 2년) 당시의 일본 정부가 독일과의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처음으로 도입한 한 개의 번역 용어인, 따라서 그 의미가 '한 분이신 초월자 하느님 쪽으로 "경신 행위"(exercise of religion)'인, "宗教"(종교)정의(definition) AA로부터, 일본 정부의 어용학자들이 행한, 과도한[inordinate, 즉, 이성(reason)의 판단의 범위들/한계들(limits)을 넘어서는]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의 한 결과로서 한 잘못된 추상화/일반화(a false generalization)를 도출하여, 그리하여 그 결과, 그 도출된 바를 작위적으로/자의적으로/의도적으로 정식화하여(formulate) 확보한, 바로 위의 (i)에서 이미 안내해 드린 '"宗教"(종교)의 또다른 정의(definition) C'를, (iii) 1918년 이전의 일본 정부가, 그 마지막 단계로서, 드디어 세속의 인간(secular human beings)들의 보편적 사고의 방식/사고의 틀 안에까지 주입하려고(infuse) 대단히 적극적으로 시도하였음을,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바로 위의 제(2)항에서 필자가 지적한 바를 읽고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분들께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질문 2에 대한 답변)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9.htm <----- 필독 권고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대중 신심??? piety와 devotion(s)의 차이점; 게시일자: 2015-02-28]은, 서로 다른 개념들을 나타내는 용어들인 "faith", "devotion", "piety" 이들 셋 모두가 일본에서 신도(神道) 용어인 "신심(信心)"으로 잘못 번역되었고, 그리고 이러한 번역 오류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달되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우리말본 교황 문헌들 등에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글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7-5 끝)

 

2-7-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40년 출판된, "신사독본"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40_신사독본_digidepo_1085713_PDF.pdf  

  

2-7-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22년 일본 문부성 종교국에 의하여 편찬되어 출판된, "종교법규" 전문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책의 제201쪽(page 240)"教"(종교)라는 용어가, 아무리 늦더라도, 1899년(명치 32년)에 이르면 사용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22_종교법규_제3쪽(p39)에_교파_용어_사용(1895년_명치28년)_있음_shukyohoki00japa.pdf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과 세 번째 열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7: (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教"(종교)라는 용어의 의미가, "종교법규"의 전후 문맥 안에서, 위의 게시자 주 2-7-5에서 말씀드린 애초의 번역 용어로서의 정의(definition) AA의 의미인 '한 분이신 초월자 하느님 쪽으로 "경신 행위"(exercise of religion)'가 아니라, 일본의 신도(神道) 용도로, 즉, 위의 제2-7-5항에 발췌 된 "대한화사전"에 제시된 또다른 정의(definition) C의 의미 혹은 이와 등가의 의미로, 이미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7-8.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22년 일본 문부성 종교국에 의하여 편찬되어 출판된, "종교법규" 전문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책의 제3쪽(page 39)"神道各教派"(신도 각 교파) 그리고 제4쪽"佛道各宗派"(불도 각 종파)라는 용어들이 각각 병행하는 구조로, 아무리 늦더라도, 1895년(명치 28년)에 이르면 사용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22_종교법규_제3쪽(p39)에_교파_용어_사용(1895년_명치28년)_있음_shukyohoki00japa.pdf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 맟 왼쪽에서 다섯 번째 열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8: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教派"(교파)라는 용어가, 전후 문맥 안에서, 일본의 신도(神道)의 고유한 용어로서 이미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7-9.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16년(대정 5년) 일본 문부성 종교국에 의하여 편찬되어 출판된, "종교요람"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16_종교요람_digidepo_943591_PDF.pdf  

 

특히 바로 위에 안내된 책의 제115쪽에,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新教中長老派"(신교 중 장로파)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9: 위의 제1-2-3항에서 말씀드린 선교사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가 또한 미국 개신교회 장로파(Presbyterian) 소속임에 주목하라.

 

2-7-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15년(대정 4년)에 출판된, "신도교전"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15_신도교전.pdf  

 

2-7-11.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14년(대정 3년)에 출판된, "신도정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712_일본_신도/1914_신도정의.pdf  

 

2-7-1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hinese Text Project 홈페이지 제공의 한문 문화권의 대단히 방대한 분량의 한문 문헌들에 대한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 "教派"(교파)가 한문 문화권의 대단히 방대한 분량의 한문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https://ctext.org/pre-qin-and-han?searchu=%E6%95%99%E6%B4%BE 0

https://ctext.org/post-han?searchu=%E6%95%99%E6%B4%BE 0  

 

3. 이 글의 결과들

 

지금까지 위의 제1항 제2항에서 고찰한 바들 중에서,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教(교) 를 무작정, 1869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역어, 종교(宗教, religion) 로 번역하는 것은 명백한 번역 오류이다; 게시일자: 2017=-8-01]제3-3항에 있는 (이 글의 결론 5)'와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47.htm <----- 필독 권고

(ii) 위의 게시자 주 1-2-5 직후에 말씀드린, 1886년(명치 19년 1월) 일왕(日王)을 살아있는 신(god)으로 숭배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를 구체화하기 위한 "神道教規"(신도교규)일본(日本)에 제정/선포됨으로써, 이후 종교 간섭/통제/탄압의 법적 근거가 마련됨,

(iii) 위의 제2-6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 그리고

(iv) 위의 제2-7-1항부터 제2-7-12항까지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1. (이 글의 결론 1) "教派(교파)"라는 단어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1886년(명치 19년) 이후에, 그러나, 아무리 늦더라도 1895(명치 28년) 이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져 사용되기 시작한, 일본의 신도(神道) 용도의 한 개의 신조어임을, 이 글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2. (이 글의 결론 2) "宗教(종교)"라는 단어가, 위의 게시자 주 2-7-5에서 말씀드린 애초의 번역 용어로서의 정의(definition) AA의 의미인 '한 분이신 초월자 하느님 쪽으로 "경신 행위"(exercise of religion)'가 아니라, 일본의 신도(神道) 용도로, 즉, 위의 제2-7-5항에 발췌 된 "대한화사전"에 제시된 또다른 정의(definition) C의 의미 혹은 이와 등가의 의미로, 아무리 늦더라도 1899(명치 32년)에 이르면, 또한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이 글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2: 이번 글의 유의미함은, 이 글의 시작 부분의 게시자 주 (2)에서 말씀드린, 필자가 독자적으로 마련한 빅 데이터 분석법을 사용하여, 단지 위의 두 개의 결론들 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을 실증적인 사료들에 근거하여 입증/고증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위의 제2항에서 그 대부분을 안내해 드린, 다수의 신뢰할 수 있는 실증적인(positive) 사료들의 발굴에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들 사료들의 발굴에 따른 결과들인 아래에 있는 (이 글의 결론 3)(이 글의 결론 4)를 살펴보십시오.

 

특별히, 오늘을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사고의 틀, 즉, 영혼의 모습들의 한 측면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본글에서 발굴된 유관 자료들이, 일본의 신도(神道)의 현재의 체계화에 관심이 있는 국내의 연구자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3. (이 글의 결론 3) 위의 (문제점 3), 즉, 제1-2-3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한 바에 의하여, 미국 개신교회 장로파 소속의 선교사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중국 영파 소재 미화서관에서 1874년(명치 7년)에 초간된, "漢英韻府"(한영운부), 제372쪽에 제시된, 해당 국가의 정부(Government)에 초법적이고 초월적인 권한(ahthority)을 인정하는 바로 이러한 납득불가인 기술 때문에 낱글자 "教"(교)"sect"(분파, 교파)를 의마한다는 주장은,(*) 1868년에 개시된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에 "신도(神道)"를 신봉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 국가를 추구하였던 일본(日本)의 군국주의자들에게 일개 피조물인 일왕(日王)을 살아있는 신(god)으로 숭배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어불성설의 정당성을 제공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

(*) 게시자 주: 이 주장이 잘못된 주장임은, 예를 들어, 위의 제1-2-6항을 참조하라.

-----

 

게시자 주 3-3: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3)에서 지적하고 있는 일개 피조물인 일왕(日王)을 살아있는 신(god)으로 숭배하는 신도(神道)의 작위적/자의적/의도적 위(偽) 정당화(正當化)(false justification의 결과들로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웃 나라들과, 예를 들어, (i) 청일전쟁(1894-1895년), (ii) 러일전쟁(1904-1905년), (iii) 한일합방(1910년), (iv) 만주사변(1931년) 및 괴뢰 국가인 만주국 설립(1932-1945년), (v) 중일전쟁(1937-1945년), (vi) 태평양전쟁(1941-1945년), 그리고 (vii) 원자폭탄의 출현피폭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참혹한 전쟁(wars)들을 일으켰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3-4. (이 글의 결론 4) 위의 (문제점 2), 즉, 제1-2-1항제1-2-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한 바에 의하여,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에 의하여 1822년에 초간된 "5거운부", 영중사전, 제292-293쪽에 제시된, 한자 낱글자 "教"(교)"sect", 즉, "분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납득블가의 기술 때문에, 그 결과로서 결국에, 위의 (이 글의 결로 3)에서 지적한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결코 수용될 수 없는 문제가 일본에서 발생하여씀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5. (이 글의 결론 5) 위의 게시자 주 1-2-2 , 제(4)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1880년일본 요코하마(YOKOHAMA)에서 출판된 "한불자전"의 제반(諸般) 양식들이, 즉, 서문에 담긴 내용의 서술 방식과 표제어들에 대한 서술 방식 등이, 1867년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출판(梓行)된 "화영어림집성"의 그것들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그리고 일부 설명들도 요약하여 따르고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6.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5)의 한 개의 따름 정리(a corollary)로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6) 1867년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출판(梓行)된 "화영어림집성"1880년일본 요코하마(YOKOHAMA)에서 출판된 "한불자전", 이들 둘 다에서 인쇄된 영어 활자체들과 프랑스어 활자체들, 그리고 인쇄된 이들 활자체들 사이의 간격 등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였을 때에, 이들 둘 다가 일본 요코하마(橫濱) 소재 동일한 출판사, C. Levy에서 출판(梓行)되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 (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으로 그리고 최초로, 한문본 천주교회 문헌들 및 개신교회 문헌들 중의 천주교회 용어들의 출처들와 기원들을 실증적인(positive) 입증/고증하는 연구들을 몸소 수행하여 찾아내어 이곳 게시판(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에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바로 이 작업에 포함되는 본글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도출된 결과들에 이어지는 연구 과제(Research Projects)들로서, 다음의 과제들을 제안합니다:

 

(i) 과제 A: "한불자전"(1880년)에 수록된 표제어들의 설명들 중에서, "화영어림집성"(1867년)에 수록된 동일한 표제어들의 설명들을, (i) 그대로, 혹은 (ii) 요약하여, 따르고 있는 모든 표제어들을 구체적으로 찾아내고 또 이들 표제어들의 설명들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들이 있는지까지도 상호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는 작업. 특히, 이 작업에는 예를 들어, 위의 제2-7-5항의 각주에서처럼, 그 출처와 기원 등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

 

(ii) 과제 B: 아래에 제시한 과제 C과제 D 둘 다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선행되어야 하는 한 개의 과제(Project)로서, 일본의 고유한 문화를 옹호하기 위한 용도로 기획되어 1950년대에 일본에서 출판된 "대한화사전"에 수록된 표제어들 중에서 일본 문화에 고유한 단어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대한화사전"의 표제어들과 "중문대사전"의 표제어들, 그리고 "한어대사전"의 표제어들을 상호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는 작업. 특히, 이 작업에는 "대한화사전"에 표제어들로서 처음으로/최초로 수록된 단어들의 경우에, 예를 들어, 위의 제2-7-5항의 각주에서처럼, 그 출처와 기원 등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

 

(iii) 과제 C: 아래에 제시한 과제 D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선행되어야 하는 한 개의 과제(Project)로서, 일본의 고유한 신도(神道) 문화를 옹호하고 형식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하여 일본 정부에 의하여 출판된 문헌들, 예를 들어, 위의 제2-5-4항에 안내된 1944년(소화 19년)에 출판된 "신사본의", 위의 제2-7-6항에 안내된 1940년(소화 15년)에 출판된 "신사독본", 위의 제2-5-3항에 안내된 1937년(소화 12년)에 출판된 "국체의 본의", 위의 제2-7-7항에 안내된 1922년(대정 11년)에 출판된 "종교법규", 위의 제2-7-9항에 안내된 1916년(대정 5년)에 출판된 "종교요람", 제2-7-10항에 안내된 1915년(대정 4년)에 출판된 "신도교정", 제2-7-11항에 안내된 1914년(대정 3년)에 출판된 "신도정의", 위의 제2-5-2항에 안내된 1907년(명치 40년)에 출판된 "신사신도 제식 원리", 위의 제2-5-1항에 안내된 1896년(명치 27년)에 출판된 "개정 신도교규 대전"[주: 이 책의 제155쪽1886년에 선포된 "신도교규"가 포함되어 있음], 위의 제2-2-1항에 안내된 1890년(명치 23년)에 선포된 "교육칙어"와 1889년(명치 22년)에 선포된 "대일본제국헌법" 등의 문헌들 사이에서, 일본의 신도(神道) 용도로 사용되어 온 기존의 용어들 중의 일부가, 일본 정부 내 유관 부서 소속의 공무원들에 의하여, 새롭게 정의되어(defined) 도입된 어떤 용어들로, 논리적 등가인 관계로 혹은 논리적 포함관계 안에서, 교체되었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한, 이들 문헌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 사이의 철저하고 정밀한 상호 비교/검토 및 분석 작업. 특히, 이 작업에는 이들 문헌들에서 처음으로/최초로 사용된 단어들의 경우에, 예를 들어, 위의 제2-7-5항의 각주에서처럼, 그 출처와 기원 등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

 

(iv) 과제 D; 예를 들어, 1945년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영한사전"(English-Korean Dictionary)들에 수록된 표제어들의 설명들의 거의 모두가 "영일사전"(English-Japan Dictionary)에 수록된 동일한 표제어들에 제시된 일본어 문장들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출판한 것들이라는 것은 주지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 중인 대다수의 "영한사전"들, 대다수의 "국어사전"들, 민중서림 발행의 "한한대자전" 등의 한자자전들 및 한자사전들, "가톨릭대사전""한민족대백과사전", "표준국어대사전" 등에 실려있는 표제어들과 이들의 설명문들 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 모두의 출처와 어원을 찾아내어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리고 이들 출처들과 어원들을 이들 사전들의 본문 중에 추가하는 작업. 특히, 이 작업에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으로 그리고 최초로 실증적인(positive) 입증/고증 작업들을 몸소 수행하여 찾아내어 이곳 게시판(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에 기록으로 남긴, 한문본 천주교회 문헌들 및 개신교회 문헌들 중의 천주교회 용어들의 출처들와 기원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임.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본글에 이어지는, 12 개의 결론들을 도출하는, 글/논문[제목: religion 이라는 한 개의 용어의 그리스도교 전통적 정의(the definition)와 19세기초의 한 근대주의자의 정의(a definition)의 차이점; 게시일자: 2019-12-19]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이상, 게시자 주 3 끝)

 

작성 중입니다 

 

참고 자료들:  

https://www.etymonline.com/search?q=sect 

https://www.etymonline.com/search?q=denomination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고향집에서 삽작문을 바라보며 오매불망(寤寐不忘)

몰래 먼 길 떠난 철부지 아들이 돌아오기를

평생을 기다리셨던

할배, 할매의 애끊는 슬픔을 되새기며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담아

이 글을 토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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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120시간 (자료 조사 및 분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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