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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기다림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예의(사순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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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4-03-16 ㅣ No.4294

사순 제 3 주일                                                           2004. 3. 14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시 한 수 음미하며 복음으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발췌한 시는 ’둘을 위해서 하나는 버려야 합니다’ 라는 고은 시인의 시입니다.

...         

둘이 만남을 시작하면서부터

혼자 생활했던 모습들은 변해가야 합니다.

하나만의 공간이 아닌 둘만의 공간을 위하여

하나만이 필요했던 공간에서의 어느 것은 / 때로 버려져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되어

누군가는 끊임없이 괴로워하게 됩니다.

...

그렇습니다 / 버려야 할 나의 것들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 사람은 떠나야 했고 / 난 돌아서서 울어야 했습니다...

 

사랑은 나와 너의 깊은 만남을, 나와 너의 깊은 관계 맺음을 말합니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 안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에서 서로간의 기본적인 예의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예의는 사랑하는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니까 네가 싫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달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이기심의 표현일 뿐이며 그래서 가끔 참을 수 없는 폭력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의 욕심들, 나의 잘못된 습관들을

과감하게 던져버릴 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니까 함께 살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이혼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나의 근본적인 변화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그렇기에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이 현세 씨의 유명한 만화가 있습니다.

만화 속 주인공 까치 오 혜성은 엄지를 죽도록 사랑하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예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도 해당됩니다.

신앙 생활이란 하느님과의 만남이요, 하느님과 관계 맺고 사는 삶입니다.

그 만남이 깊고, 그 관계맺음이 깊은 것을 다른 말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라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을 반복해서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까치가 엄지에게 한 말을 하느님께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좋아하는 일이라면 저는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얼마나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계신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나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아버지, 제 뜻 아닌 당신의 뜻을 이루십시오!"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밖에서 다른 여자와 놀아나면서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밖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면서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마침내 잘못된 관계를 정리하고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려 남편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남편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려 아내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끝나고 가정은 파괴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더디기만 한 우리 발걸음을 가없이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놀라운 인내로 끝없이 기다려 주시는 분!

기다림의 하느님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마음이 급한 우리들은 인내하지 못해 이렇게 소리칩니다.

"이 나무는 3년 째 열매를 맺지 못하니 잘라 버립시다.

쓸데없이 땅만 썩일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포도원 지기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 나무를 금년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하루 일과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가정으로 달려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우리도 하느님께로 달려갑니다.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일을 성서는 회개라고 말합니다.

사순절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시간이고 그래서 사순절을 은총의 시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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