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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107: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24 - 명가의 비밀, 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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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09 ㅣ No.365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07)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24) - 명가의 비밀, 룻

주님께서 네가 행한 바를 갚아 주실 것이다

 

■ 그녀가 누구지?

남성 가부장적인 사고가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중동권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구약 성경은 세 명의 여성에게 그런 영광을 부여하였다. 바로 룻, 유딧, 그리고 에스테르다. 이 중에서도 유딧과 에스테르는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과 야훼신앙 수호에 몸을 던져 영웅적인 역할을 감당했기에 명분을 인정해줄 만하다.

하지만 룻의 경우는 좀 다르다. 룻기 전체의 흐름을 보면 그냥 한 가정의 이야기 일뿐이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연출되는 찡한 가족애에 대한 구연(口演)문학이라 할까.

그렇다면, 왜 룻기가 당당히 성경의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을까. 이는 룻이 결과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성왕 다윗의 고조할머니가 되기 때문이었다. 족보를 중히 여겼던 유다인들에게 “그녀가 누구지?”, “어떻게 한 모압 여인이 다윗의 조상이 되었단 말인가?” 하는 물음 뒤에 숨겨진 하느님의 예지는 주목받을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다시 궁금해진다. “룻, 그녀가 누구지?”


■ 그 시어미에 그 며느리

룻기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여기서는 나오미가 주인공이다. 그녀에게 엘리멜렉이라는 남편이 있었는데, 이들이 베들레헴 지역을 덮친 극심한 기근을 피해 자녀 둘을 데리고 모압이라는 곳으로 이주한다. 이곳은 이방지역이었다.

그곳에서 남편이 죽고, 아들 둘 다 결혼한 다음 자식도 못 낳고 또 죽는다. 그러니 누구만 남는가?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참으로 기구한 팔자의 여인들이다. 그런데 나오미는 신식 시어머니였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 새로 시집가거라. 나는 내 길을 찾아 고향으로 가련다.”

이 말을 다른 며느리 오르파는 반기지만, 룻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곧바로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룻 1,16-17).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다. 남편의 어머니와 겨레에 대한 충절을 넘어, 유일신 하느님에 대한 지혜어린 신앙의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 룻의 ‘고엘’, 보아즈

결국 나오미가 룻을 받아들인다.

“그래, 정 그렇다면 함께 가자.”

막상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보니, 그곳은 기근이 끝나서 저마다 생계는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들은 하루하루를 끼니걱정으로 지내야 할 형편이다.

이 시절 과부들의 사정은 이미 끝난 것이었다. 농경사회다 보니 노동력이 없는 여인들은 남편이 죽으면 살 길이 없다. 그래서 생긴 법이 수혼법이다. 이는 레위기 25장에 나오는데, 이 법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인류문화유산으로 여겨도 손색없을 만큼 귀한 보물이다.

수혼법은 가장이 유고를 당한 한 집안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가까운 친척이 도와줘야 한다는 실용적인 규정이다. 곧, 할 수 없이 여성이 가장역할을 하는 집안에 살인 사건이 났을 때, 채무로 인해 노예로 팔릴 처지가 되었을 때, 생계곤란에 처했을 때 등등의 경우에 가까운 친척이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수혼법은 한 집안에 대가 끊겼을 때도 적용된다. 그럴 경우, 친척 가운데 누가 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서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주어야 한다.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은 ‘고엘’이라고 부른다. 고엘은 속량자라는 뜻이다.

이것이 룻의 고엘이 될 보아즈를 등장시키는 배경이 된다.

베들레헴으로 돌아 간 어느 날, 룻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남의 집 밀밭에 가서 밀 이삭을 줍는다. 바로 그때 그 땅의 주인 ‘보아즈’가 나타난다. 그는 심성이 좋은 사람. 그가 보니 웬 낯선 이방 여인이 와 있는데, 참 사정이 딱해 보인다. 그래서 더 가지고 가라며 호의를 베푼다. 그랬더니 룻이 집에 가서 나오미에게 이야기를 한다.

“어떤 분이 있는데, 그분이 아주 훌륭하고 좋으신 분이에요.”

“그분이 바로 너의 고엘이 되실 분이다.”

이제 나오미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룻에게 수혼법의 취지를 가르쳐주며, 코치한다. 보아즈 역시 룻에게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친척 중 순번이 밀렸다. 그러니 앞 순번의 남자에게 공개적으로 의사를 물어 ‘거절’의 뜻을 확증하는 수순을 거쳐야 했다.

룻을 마음에 두었던 보아즈는 지혜롭게 이 절차를 밟는다. 룻을 아내로 맞이하는 상황을 부담스럽게 설명하여 앞 순번의 남자로부터 “내가 왜 괜히…, 부담스럽게 왜 그래” 하며 회피하는 답변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리하여 보아즈는 룻을 합법적인 아내로 취하게 된다.

그런데 룻의 무엇이 보아즈를 사로잡았을까? 당사자인 보아즈 자신의 증언이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주님께서 네가 행한 바를 갚아 주실 것이다. 네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신하려고 왔으니, 그분께서 너에게 충만히 보상해 주시기를 빈다”(룻 2,11-12).

그렇다면 보아즈는 또 어떤 사람인가? 시어머니 나오미의 칭송이다.

“그분은 산 이들과 죽은 이들에 대한 당신의 자애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주님께 복을 받을 것이다”(룻 2,20).

이 구절은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반어법을 동원하여 “그분이 야훼께 복을 받지 못하면, 누가 복을 받겠느냐?”라고 번역되어 있다. 최상의 극찬이다. “야훼 하느님의 복을 누려 마땅한 사람!” 이것이 다윗의 3대 윗조상 룻과 보아즈의 한 문장 프로필이다. 곱씹어보면 결국 명가(名家)의 비밀인 셈이다.

어찌 야훼께서 갚아주시지 않으리.
사별한 남편의 어머니, 일편단심으로 따르고
천지에 퍼진 야훼 하느님 명성, 명민심상으로 흠숭하고,
궁벽한 시댁살이 야훼의 날개 아래 둥지를 튼,
이 갸륵한 모압 여인,
어찌 야훼께서 모른 체 하시리.

그가 아니라면 누가 복을 받으리.
날마다 식솔들에게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룻 2,4)를 빌어주는 그,
배곯은 이방인에게 먹거리를 베풀고 융숭히 대접하는 그,
그런 지극 선량(善良)이 아니라면
그 누가 복을 받으리.

옳거니! 모두가 한 통속이로구나.
가련한 이방 여인에게 ‘고엘’이 되어준 보아즈나,
사실상 남남인 시어머니를 일부종사(一夫從死)로 모신 룻이나,
지나가는 길손을 육식진미로 환대한 아브라함이나,
결국 그 순정의 종착역은 야훼 하느님 마음이었으니.

아멘, 아멘! 그리하여 모두가 한 통속이로구나.
스치는 인연을 통해 하느님을 뫼시는 횡재를 누려,
“너는 복이 될 것이다”(창세 12,2).
자손대대로 유효한 약속을 받은 주인공이기는
모두가 한 통속이로구나.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3월 8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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