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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한 [jelka] 쪽지 캡슐

2006-01-02 ㅣ No.1140

+ 찬미예수!

 

 

                     용서는 분명 덕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용서가 덕이 된다는 말에 얼마나 공감하고 계십니까?
이 말에 부정을 하고 싶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들 삶 안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덕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되기도 합니다.

 

상대가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나무라거나 창피를 주지 말고
오히려 조용히 만나서 이해될 수 있도록 타일러 보십시오.
만약 그가 내가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말을 듣게 된다면
나에겐 형제(자매) 하나를 얻은 셈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는 그를 생각하는
가식없는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애정없이 상대를 이해시키려 한다면
오히려 가식적인 행동이 드러나게 되므로
더욱 일을 그르치게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 세상은 웬만한 잘못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의 삶은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또 미움이 생겼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분명한 답은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미움을 참는다고 없어지겠습니까? 
미움은 분명 상대성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미움은 분명히 미워할 이유에서 발생되고
미운 짓을 했기 때문에 미움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 참는다고 그 미움이 없어지겠습니까?

용서는 마음먹기에 따라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 나 혼자서 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는 순간의 결정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생각하고 순간적으로 하는 용서는
더욱 자신을 괴롭히고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게 됩니다.

 

용서를 할 때는 분명히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을 하지 못하는데
나 혼자 내가 너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것은 상대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방관자일 뿐이지
상대를 진심으로 용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하니 용서하고자 생각할 때는
주님께서도 죄 지은자에게 깨달음을 주었듯이
상대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설혹 상대가 잘못을 느끼고 용서를 청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내 마음 속에서 털어 버리기까지는
많은 고통의 시간이 필요로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하는 순간에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어떠한 거론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하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때는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고통을 나의 고통과 비교하십시오.

 

용서한다는 자체는 그만큼 덕을 쌓는 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용서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용서는 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희생없이는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용서는 시간을 두고 쌓아야 하는 덕인 것입니다.

 

용서를 한낱 감정 차원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순간에 생긴 미움은 순간의 용서로 잊을 수 있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 미워한 것은 순간의 용서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세월 속에 쌓인 결과를 어찌 단 한번에
모든 것을 털어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용서는 미움이 쌓인 세월만큼 훈련과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훈련되어야만 작은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용서는 수없이 실천하여야 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용서가 몸에 배어나야
비로소 큰 용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자신의 덕을 쌓는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려고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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