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2013년 政治는 없고 政爭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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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2-31 ㅣ No.10113

고성국/정치평론가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대선이 끝나자 정치(政治)도 사라져 버렸다. 후보들이 소리높여 외쳤던 국민통합도 민생도 찾아볼 수 없고, 민주주의의 기본인 승복과 존중도 찾아볼 수 없다. 조악한 구호정치, 조잡한 선동정치에 편가르기 정치공학과 정쟁(政爭)만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1년 간의 한국정치를 ‘정치 부재(不在)’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치 부재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국민이다. 국회가 ‘개점 휴업’ 상태에 빠지고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득권층은 어떻게든 버텨나갈 수 있다. 올해 할 투자 내년에 하면 되고, 해외여행 한번 미루면 된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과 긴급한 법률적 구조가 절실한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이 기나긴 정치 부재의 시간은 고통 그 자체다. 정치 부재가 ‘민생(民生) 부재’로 이어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정치 위기’가 시작된다.

2013년은 정치 위기가 심상찮게 노출된 시기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주의의 기본장치인 선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금껏 없었다. 선거 때마다 이런저런 시비가 없잖았고, 선거 후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흑색선전 때문에 ‘억울하게 졌다’는 동정 여론이 한때 형성된 적도 있었지만 이처럼 노골적이고도 광범위하게 선거 불복의 정서가 확산된 적은 없었다. 대선 후보들이 금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개표 직후 패배를 인정하고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하면 더 이상 선거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 성숙된 정치문화를 후보들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지지하는 후보가 승복한다는데 그 누가 불복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대선 불복 분위기는 본질적으로 퇴행적이며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재 증거다.

‘제도권 정치의 부재’ 상황은 필연적으로 제도권 밖 정치를 활성화시킨다. 신부가 과격한 정치 발언을 하고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며 노조와 시민단체가 깃발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은 그들의 주장과 요구가 제도권 정치의 틀 속에서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올 한 해 흔들림없이 ‘법과 원칙’을 고수해 온 결과가 정치 부재와 정치 위기라면 아무리 ‘법과 원칙’이 옳고 필요한 일이라 해도 그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전화 소통’으로 ‘불통 논란’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면 소통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는 신년 기자회견을 주목하는 이유다.

새누리당이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여당 노릇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존재감 부재’에 시달려 온 과반수 집권당이 해야 할 일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국민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대통령과 정부에 전하면 된다. 그 어려웠던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이겼는지를 돌아보면 새누리당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분명해질 것이다.

대선 프레임으로 정국을 운영한다고 대선에서 이기는 게 아니다. 대선 주자들이 뛴다고 해서 대선 정국이 조기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야권 주자들은 때를 잘못 택했다. 이렇게 일찍, 이토록 준비 없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정치 위기를 해소하는 데 이 세 가지 모두가 필요한 건 아니다. 대통령의 행동은 그 자체만으로 정치 위기를 해소하고 국면을 전환할 수 있다. 반면에 여당과 야당의 행동은 상대방의 반응을 촉발시키고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대통령의 행동을 통한 정치 위기 해소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고 가장 크게 기대하는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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