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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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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순 [hsbaik] 쪽지 캡슐

2003-03-21 ㅣ No.2425

  안녕하세요? 바쁘다는 핑계로 손님으로만 있다가 처음으로 몇 자 적어 봅니다.

저는 백혜순 세실리아 이고요, 2남1녀를 둔 엄마입니다.

올해 큰아들이 중학교에 입학을 했지요.

아들놈이 찬찬하지 못하고 책에만 파묻혀 있어서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제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들친구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전화내용인즉 아이가 학교에서 교장선생님께 혼났다는 데, 알고 있느냐고요.

가슴이 철렁했지요. 얼굴은 화끈거리고, 숨이 막혀왔습니다.

 

  전날 교실에서, 쉬는시간에 두 명의 아이들이 동전을 가지고 따먹기를 하는 것을

호기심에 옆에서 지켜보다가 교실을 순회하던 교장선생님께 들켜서 같이 혼났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지않았다고 말씀드리니까 거짓말 한다고 잘못한 아이들보다

더 많이 뺨을 맞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아이들한테 사실을 듣고나서도 교장선생님은

옆에서 구경한 것도 잘못이라며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얘기를 듣고있자니, 얼마나 화가나는지.

오랫동안 교직에 있었던 분이, 아이들이 한짓이 얼마나 나쁜 일이길래

뺨을 때려가면서 야단을 치셨는지, 그것도 여자아이들 보는앞에서

그것이 과연 올바른 훈육방법인지....머리칼이 치솟더라구요.

 

  이런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건지 머리가 혼란스럽더군요.

당장 생각으로는, 그런 선생밑에서 교육은 무슨놈의 교육이냐.

그냥 나뒀다가는 그런일들이 관행으로 되어버릴 것이고, 그 속에 있는 아이들은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키울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괜히 섣부르게 나섰다가는 아이에게 후환만 될 것이 뻔한 일이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런사실을 확대, 문제시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렵게 장만한 집인데 이사를 해서라도 전학을 시켜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강남이나 목동의 엄마들은 똘똘뭉쳐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간다는데

이곳에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에 더욱더 내 자신이 화가 났습니다.

 

  남편이 얘기를 듣고는, 자기는 잘못이 없는데 억울하다며 어른들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나중에 알았어도 사과할 줄 모른다며 울먹이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은 자기잘못이 없어도 감수해야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몇일전 대구지하철 화재사건하며, 매스컴을 통해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몇년 소송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얘기하며, 예를 들어가며..억울해도 그냥 귀막고 입막고

이번일을 기회로 더욱더 조심해서 행동하고 자기일에 매진하여 된사람 난사람이 되라고.

예수님을 생각해 보라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도 못자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기도했지요.

지혜를 주셔서 슬기롭게 이 일을 처리하게 해달라고요.

서로 감정도 상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이러한 일이 관행이 되지않게

학부모의 의견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을 차분하게 생각해 봤지요.

그러니까 불같던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더군요.

잘못한 사람한테 "너 잘못했지" 하고 따지면 그 자리를 빠져나가기 위해서

오히려 화를 내고 권위로써 제압하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어요.

 

  그래서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학교에 찾아가 교장선생님 면담을

요청했어요. 그리고 나서 무조건 용서를 청했어요. 아직 미성년자라 아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부모가 대신 용서를 청해야 되지 않겠느냐고요.

오해를 받게끔 한것도 잘못이고, 변명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잘못을 했다고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학교에서 행해지는 일에 부모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 못마땅해

하시는 눈치이던 선생님도,  

추락된 교육현실의 어려움과 교육기강을 확립하려다 보니 너무 과했던 자기행동에 실수를 인정하고 후회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번일로 꿈많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한 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가벼운 걸음으로 집을 향했답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어디에서 큰소리칠 수 있겠습니까? 항상 집밖에만 내보내면

무슨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무사히 집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알런지.

항상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기도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무런 죄도 없으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주님의 고통과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항상 저희와 함께 하시면서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반강제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해 주신 함광숙 베로니카 자매님께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표합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오늘 아침에도 아들놈이 전날 체육을 하고 나서는 체육복을 그냥 입고 교복은 봉투에 넣어 운동장에 놨두고 집에와서는 아침에 교복을 찾아대는 걸, 뒤통수에 대고 교장선생님께

걸리지 말고 잘 찾아보라고 소리질러서 학교에 보냈답니다. 교복을 찾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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