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마을버스의 추억

인쇄

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6-01-12 ㅣ No.495

 

1992년 10월에 서울 용산 본당에 주임 신부로 발령받고 사목할 때의 일입니다. 본당 부임할 때 아직 운전 면허가 없어서 외출을 하려면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지구의 신부님들은 자가용이 있어서 편리하게 이동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뭔가 문명에 뒤진 것 같기고 하고, 불편함 때문에 귀찮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나도 빨리 운전 배워서 신나게 다녀야지'하고 다짐을 했지만, 본당 일이 바빠 시간을 낼 수 없어서 그냥 계속 대중 교통을 이용하였습니다.

제가 있던 본당은 고지대에 위치한 관계로 마을 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노선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마을 버스 안에서 신자들을 만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처음에 신자들은 제가 사복을 하니까 잘 못알아 봤습니다. 주일에 수단 입은 모습만 보다가 복장이 바뀌니까 한 눈에 알아보지는 못한다고 하더군요. 나중에야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아서 생각해보니 본당 신부님이더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니까, 마을 버스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도 하고 몇마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신자들은 본당 신부가 자신들과 함께 마을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때에는 시간이 좀 나면 마을 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도보로 내려가 큰 거리에서 노선 버스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려 가는 길 가에서 상점을 하는 신자들도 하나 둘 씩 알게되고, 지나면서 인사도 건네고 안부도 묻고는 했지요. 제 차가 없으니 물건을 살려고 해도 걸어 내려가서 신자들 상점을 둘러보면서 사고는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 신자들의 생활을 직접 보고,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지요. 나중에는 아예 산보하면서 장사하는 신자들 집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참 정겨웠습니다.

2년 간 본당 생활을 마치고 떠날 무렵에는 운전 면허도 따고 제 차도 구입해서 예전처럼 걸어다니는 일이 많지 않아졌습니다. 편하게 이동하게 되었지만, 마을 버스 타면서 또는 걸어다니면서 신자들을 만나 얘기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었지요. 편안함이 좋기는 했지만 잃는 것도 있더라고요.

한 집에 여러 집이 세들어 살면, 불편하기는 해도 같은 세입자들끼리 생활을 나누면서 정이 든다고 합니다. 음식을 해도 서로 나누고, 걱정이 있으면 함께 염려해주기도 한다더군요. 그런데 그런 집 다 허물고 서민 아파트 지어서 입주하게 되면, 옆 집에 어떻게 사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편해지기는 했지만, 반면 정은 없어진 것이지요.

편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올 해에는 좀 불편해도 정겹게 사는 길을 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손희송 신부



211 1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