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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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1-02-24 ㅣ No.1547

                       연중 제8주일(다해. 2001. 2. 25)

                                                 제1독서 : 집회 27, 4 ∼ 7

                                                 제2독서 : 1고린 15, 54∼58

                                                 복   음 : 루가 6, 39 ∼ 4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우리 서로의 관계를 나쁘게 하는 대부분의 원인은 한 마디의 말에 있습니다.  그가 나에게 던진 말 한마디가 가슴에 화살처럼 박혀서 두고두고 곱씹으며 그에 대한 나쁜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 반대로 내가 무심코 한 말 한 마디가 어느 누군가의 마음에 독침처럼 박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 왠지 두렵습니다 /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 둥근 것 모난 것 / 밝은 것 어두운 것 /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 / 그러나 말이 없이는 /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 허락하신 주여 /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 한 마디의 말을 위해 /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 언제나 진실하고 / 언제나 때에 맞고 /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 하찮은 농담이라도 /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 좀더 겸허하고 / 좀더 인내롭고 / 좀더 분별 있는 /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 아멘 "

 

  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말에는 큰 힘이 있어서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압니다.  성서는 말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말은 곧 인격 그 자체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며 말이 아닌 것은 하질 말아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에서도 "말은 사람의 마음속을 드러낸다.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말아라.  사람은 그의 말로 평가된다"라고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주변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말의 진정성은 그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말만 잘한다"는 말은 하나의 욕설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말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말없음, 곧 침묵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침묵의 시간을 견디어냅니다.  침묵을 접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침묵의 시간은 말을 듣는 시간입니다.  자연과 초자연으로부터, 역사와 사회로부터, 그리고 자기 내면으로부터 전해오는 말을 듣는 시간입니다.  듣지 않고 하는 말은 빈말, 공허함입니다.

  우리 속담에는 "뭣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도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에 흠없는 사람 없고 티없는 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남을 판단하는 일에 주의해야 하며, 우리의 사적인 감정이나 단순한 느낌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정말 말과 판단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입으로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우선적으로 하며, 다른 이들을 말하기보다는 우선은 자신을 돌아보고 말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부모의 생각과 의지를 강요하기보다 자녀의 소리를 자녀의 생각을 자녀의 어려움을 인내와 눈 높이로 들어주도록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가져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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